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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Apr 30. 2021

제주 생활,
기록하다 그리고 기억하다

일상의 기록이 취미가 되어버린 하루들


다채로운 삶을 엿볼 수 있어, 평소 빌리브에서 발행하는 콘텐츠를 즐겨보는 나에게 빌리브로부터 질문이 왔다.


 “푹 빠진 취미 생활을 공유해 주실 수 있나요?”


나는 그래서 취미이자 현재 삶이기도 한 나의 제주 생활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정착기


어느새 두 달 차를 넘어서고 있는 제주 생활이다.

내가 눈을 뜨기 전 제일 먼저 귀가 아침을 맞이한다. 아침의 밝은 기운을 받아 새들의 지저귐이 내 귓속으로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눈을 뜬다.

고개를 돌려 왼쪽을 향해 창밖에 비치는 밖의 색온도를 점검한다.

밝기에 따라 시간은 대충 가늠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복잡한 도시에 있을 때에는 잠에서 잠깐 깨어 창 밖을 보아도 무감각하고 이내 시계를 보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 바빴다면, 여기에서는 눈을 뜨면 바로 침구를 정리하고 마당으로 나가 풍경 하나하나를 눈과 귀와 피부로 담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 스스로 더욱 건강해진 느낌이다.

 

어디에 있건 먹고 살 걱정을 하는 건 매한가지 이지만, 그래도 크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여기서는 눈을 뜨면 움직이고, 눈을 감으면 잠을 푹 잔다는 것이다. 이 원초적인 행동이 삶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점이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10년을 고민하고 알아보고 다녀가기를 반복했다.

언젠가는 제주에서 살 거라는 막연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올해 초 살던 집이 계약이 만료되었고 나는 또 집을 구해야 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번이 아니면 안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서 살아야겠다."

 

무작정 내려간다는 표현보다는 그래도 프리랜서라는 비교적 자유로운 직업을 갖고 있기에 내릴 수 있었던, 마치 보험 하나를 갖고 마음의 안정이 되고 나서야 결정할 수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꽤 많이 걸린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은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에 있는 자그마한 동네이다.

 

첫 제주도 생활을 여기로 잡은 이유 중 하나는 제주시보다는 서귀포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또 너무 바닷가보다는 적당히 산도 있는 곳에 살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제주도에 오면 자주 묵었던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또 이렇게 오려고 하니깐, 운명인지 모르겠지만 한참 집을 구하고 잠깐 인사나 할 겸 게스트하우스에 들러서 간단한 인사 후 지금 내려 오려고 집 알아보고 있다고 말하니 마침 옆집이 계약만료로 나갈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말끝 나기 무섭게 그럼 나가게 되면 바로 연락 좀 부탁드린다고, 바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다.

오래된 건물, 단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집도 생각보다 더 많이 노후 된... 그래서 청소와 정리로 한 달을 보냈지만, 복잡한 마음도 함께 정리하고 청소가 되었던, 짧은 시간이지만 그만큼 빠르게 정이든 집이 됐다.





일상 기록

직업이 사진 찍고, 편집 디자인 하는 것이기에 평소에는 사진을 잘 찍지 않았다. 마치 업무가 아닌 이상 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일이 어느 순간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특히나 도시에 살았을 때에는 더욱이 밖에 나가는 일도 없었기에 사진과 카메라는 어떤 업무와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늘 가방 안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곳에 오고 난 후부터는 자꾸 카메라를 들게 되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눈에 보이는 풍경을 담아내고 있었다. 일이 아닌 정말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취미가 된 것이다.

 

어떻게 되면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이지만 그 하루를 기록함으로써, 별 볼 일 없는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마법 같은 일 말이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한번 보고, 바람의 나부끼며 소리를 내는 팜파스와, 넓은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나무의 싱그러움, 켜켜이 쌓여있는 돌담에 자리 잡은 담쟁이 등,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사소한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일상 기록과 함께 소소한 산책의 즐거움도 함께 누리고 있다.

실상 금전적으로는 여유롭진 않지만, 심리적으로 나에게 여유와 함께 안정감을 찾아 주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건강하고 힘 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쩌면, 심리적 여유의 풍족함이 일을 취미로 만들어줬는지 모르겠다.





같이 산다는 것




가 사는 집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2층 건물과 단층 건물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다. 그중 단층건물이 반으로 나뉘어 있고, 그중 하나를 내가 사용하고 있다. 내 반쪽에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맞은편 2층 건물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나는 손님에서 이웃이 되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마주 보고 인사를 하고, 가끔 밥, 간식 등을 같이 먹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사장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2층 건물 중 1층(공용공간)을 편안하게 이용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공용공간에는 세 마리의 래브라도 리트리버와 고양이가 한 마리 같이 살고 있다. 고양이는 집 앞 돌담에서 구조되어 이름도 돌담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너무너무 귀여운 이 친구들에게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내려가 안부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틈틈이 아침마다 공간 청소도 함께하며 아침을 맞이한다. 일종의 공간을 이용하는 사용료를 나는 스스로 청소로 지불하고 있다.





아이들은 밤사이 찌뿌드드했던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고 나는 그사이 커피믹스 한잔을 마시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내가 이 공간을 사랑하는 이유는 잘 가꿔진 화분들이 정갈하고 이쁘게 정리되어 마치 화원 카페에 와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거기에 내가 사랑하는 반려동물들도 함께 있으니 이만큼 나에게 더 완벽한 쉼의 공간은 없을 듯하다.




짤막한 커피타임이 끝나면, 내 운동도 할 겸, 아이들 운동도 할 겸 넓은 마당에 나와 공놀이를 즐긴다. 어느새 익숙한 일상처럼 된 하루의 시작이다. 내가 청소를 끝마치고 커피 한 잔을 다 할 때쯤이면 깜별, 새별, 귤은 어느새 문 앞에서 꼬리를 흔들면서, 올라가자는 눈빛을 보낸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상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준 제주사진집 사장님에게 매번 고마운 마음이 든다.

 

글을 쓴 김에 그렇게 좋아하시는 생도넛 하나를 사다 드려야겠다.





초보 목수



청소가 끝난 집안은 넓고 휑하다. 침대도 없고 세면대도 없고 냉장고, 주방 선반조차 없다. 필요한 모든 걸 사기엔 너무 돈이 아까웠다. 그리고 얼마나 살지 모르기에 최소한만 갖추며 살기로 했다. 먼저 지저분한 곳을 하얀색 페인트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방 3개 거실, 화장실이 있는 30평 조금 안 되는 공간이다. 제일 큰방은 문짝조차 없기에 그냥 컴퓨터 및 작업 공간으로 쓰고 나머지 방 2개 중 하나는 내 방, 하나는 게스트룸으로 정했다. 역시나 여긴 아직 기름보일러를 많이 사용한다. 나는 기름값을 조금이나 아끼고자 최소한으로 돌리고 살기로 했다. 바닥은 차갑지만, 슬리퍼로 찬기를 잊고 살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바닥 냉기 올라오는 건 막을 수 없기에 잠 잘 때 고민이었다. 이미 토퍼가 있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래서 옆집 사장님과 잠깐의 얘기 끝에 침대 프레임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초보 목수가 되었다. 장비와 조언은 거의 프로 수준의 목공 실력을 갖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도와주기로 하였고, 목재는 인근 모슬포에서 공수해서 작업했다. 총 자재값만 16만 원이 들었는데, 새로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




그렇게 나의 첫 작품인 내방과 게스트룸에 쓰일 침대 프레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여기서 끝난 것 아니다. 침대 만들고 남은 자재들이 많았기에 남은 자재로 요리하기에 너무 좁은 싱크대 조리대를 대신해 식탁 겸 조리대와 주방 선반 그리고 의자까지 제작하기로 했다.

 

빠르진 않지만 하나씩 내 손으로 만들어가는 재미와 기쁨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소소하지만 해낼 수 있다는 성취감과 만족도는 누가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침대 프레임이 이어 어느새 조리대까지 완성한 지금, 나는 내 손을 직접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취미가 생겨났다.





나만 알고 싶은 집



가끔 바람을 쐬고 싶을 때 집에서 걷거나 차를 이용해서 화순금모래해변을 다녀오곤 하는데, 짧은 코스에도 가끔 생각나거나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때 들르는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더 리트리브'라는 카페이고 다른 곳은 '한가네 식당'이다.

 



먼저 더 리트리브를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게스트하우스에 처음 머물렀을 때 사장님의 추천으로 가게 된 게 시작이었다. 지금은 우리 동네가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여행자였기에 현지인이 소개해주는 카페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었다.





나무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넓은 공간에 널찍하게 띄어진 테이블들 그리고 잔잔하게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에 나는 이미 단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주에 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들르는 방앗간이 되었고, 주민이 된 지금은 산책길에 가끔 들러서 차 한잔하며, 여유를 부리는 집 앞 나만 알고 싶은 카페가 되었다.




하지만, 카페는 이미 커피 맛이며 분위기 또한 방송에도 공간이 나와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지만, 그래도 그 분위기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한결같아서 좋다.


원래는 리얼 초콜릿을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그 메뉴가 빠졌다고 한다. 너무나 아쉽고 아쉬웠지만 그래도 커피 맛이 너무 좋기에 커피로 위안 삼았다. 사장님의 감성으로 꾸며진 카페 내부와 분위기 그리고 로스팅 기에서 볶아져 나오는 커피들의 향기가 적당히 배어든 공간은 글을 쓰거나 잠시 여유를 부릴 때마다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는 반려견과 반려묘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참, 여기는 반려동물과 함께 올 수 있다.




이사 오고 한 달 동안 청소하느라 제대로 된 집기가 없었을 때 식사는 어쩔 수 없이 동네 식당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저렴하고 맛있는 곳을 찾게 되었는데, 거의 한 달쯤 되었을 때 우연히 찾은 식당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제주에 와서 느낀 점은 식당에서 사 먹기에 금액들이 다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관광지이긴 하나 혼자 사는 나에게는 저렴하면서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백반집 같은 곳이 필요 했기 때문이다.



가격부터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튀김돔베정식이 7,000원, 흑돼지 김치찌개 7,000원 등 1인이 식사하기에 너무 적당한 가격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대표메뉴인 튀김돔베정식을 시켰는데 음식이 나오고 다시 한번 놀랐다. 정말 정갈한 세팅에 여러 종류의 반찬과 양념게장과 쌈까지 한 상 거하게 나왔다.


더 리트리브에서 느낀 감정을 다시 한번 여기서 느꼈다. 나는 이미 단골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정말로 나는 냉장고를 사기전까지 틈만 나면 식당에 가서 식사하게 되었다.



제주 시골에서 잘 찾아보기 힘든 정갈함과 사장님 두 분의 따뜻한 웃음과 친절함과 계절별, 음식별로 바뀌는 반찬들을 먹고 나면 저절로 집밥과 함께 건강함도 같이 먹는 느낌이었다.

 

이미 올레길 걷는 사람들에게 소소하게 맛집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루에 장을 두 번 보시는데 손님이 많으실 때에는 점심에 빨리 마무리 하고 두 분이서 도망 아닌 도망을 간다고 했다. 뭔가 알콩달콩 가족같은 느낌이다. 이제는 그 전처럼 자주 가진 못해도 친구들과 누가 밥집 알려달라고 하면 제일먼저 소개시켜주는 장소가 되었다.





비우고 싶을때




개인적으로 나는 바다 보다는 산을 좋아해서 그동안 산을 많이 다녔었다. 숲 속에 있노라면 뭔가 몸과 마음의 노폐물들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금자리를 택한 것도 주변에 나무와 산이 우선 보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거실 창문을 열면 팜파스를 지나 먼바다가 보인다. 바다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내려오고 얼마 안 되었을 때 개인적으로 머리가 복잡한 일이 생겨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래서 무작정 차를 끌고 바닷가로 향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바다가 보고 싶었나 보다.








바다는 가까이서 보면 거친 파도만 보이지만 멀리 보면 잔잔한 물결만 보인다.

우두커니 먼 바다만 얼마나 바라봤는지 모르겠다. 거칠었던 마음이 어느샌가 파도에 밀려 찬찬하게 가라앉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차분히 내려앉았다.

 

이젠 마음이 요동칠 때에 나도 모르게 집 앞 바다를 찾게 된다.

몇 초 몇 분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는 동안 그냥 우두커니 바라본다.

제주에 와서 점점 성장함을 느낀다. 능력이 아닌 마음의 성장 말이다.






이제는

자연이 주는 모든 것들을 보며,

흐름의 따라 흘러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순리를 이해하려는 마음 말이다.






제주에 이주하고 약 두 달 반 동안 있으면서 개인적인 생활과 좋았던 것들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빌리브 홈페이지에서(https://bit.ly/3bBia7q) 정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발행 중이니 다양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나보고 싶으신 독자 분들은 방문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본 포스팅은 신세계건설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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