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_에서_기록 .1
제주에서 지내면서 분기별로 찾는 갤러리가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 그리고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다.
그 중 내게 사진으로 제일 영향을 많이 받았던 작가이자 제주를 보고 싶을 때마다 찾는 장소는 두모악은 김영갑 작가가 2005년 5월 29일 작고하기 전까지 손수 만든 공간이다.
그렇기에 두모악을 찾을 때면 마치, 그의 손길과 생각 그리고 그가 담고자 했던 제주의 소박함과 삶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김영갑이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된 건 사진을 처음 시작하고 나서 집에서 우연히 본 신문에서이다.어린 나는 집에 있어도 인식조차 하지 않았던 신물을 우연히 펼쳤는데, 그 안에 담담한 표정의 김영갑 작가의 얼굴과 전시 일정이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날의 하루였지만, 나도 모르는 끌림을 느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도 졸업 전시를 준비하던 때에 다시 작가의 사진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게 빠지게 되었다.
그때도, 지금도 내가 제일 먼저 좋아하는 작가와 갤러리를 뽑는다면, 단연 고 김영갑 작가와 두모악을 뽑는다.어쩌면 그의 사진을 닮고 싶기도 했고, 그의 삶이 엿보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언젠간 제주에 살아야겠다는 막연함이 생겼고, 그렇게 나는 조금 시간이 많이 흘른 뒤에 제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2025년 6월 29일 김영갑 작가가 작고한 지 20년하고 1개월이 되었다.
날씨가 좋아 어디를 갈지 고민하던 중 마음이 뒤숭숭한 나를 발견하고 고민도 없이 차를 끌고 이동했다.
휴대전화에서는 연신 경고 알람이 정기적으로 울렸다.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두모악을 가는 내내 나는 마치 쉼을 청하러 가는 사람처럼 설레고 편안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더위의 열기는 온데간데없었다.
갤러리를 몇 번이나 찾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십여 년도 훌쩍 더 전부터 다니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예전엔 입장을 하게 되면, 작가의 사진엽서를 한 장씩 주었다. 그래서 예전의 나는 여행하는 사흘 동안 갤러리를 찾아 엽서를 받았다. 이제는 매표소에 상주직원이 대신 키오스크 기계가 대체되어 있다.
작년엔 갤러리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듦과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등의 문제로 몇 개월간 운영을 중단하기도 했었는데 다행스럽게 몇 개월이 흘러 다시 운영하게 되었다. 아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두모악' 그리고 김영갑 작가를 그리워하는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을 것 같다.
주차하고, 익숙한 문을 지나 작가의 정원을 지나 갤러리에 도착했다.
향기 은행에 기록된 많은 이야기가 한곳에 모였다.
수북하게 쌓인 한 줄들이 모여서 글이 되어 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이 켜켜이 쌓여 어느덧 자연스럽게 쌓인 제주의 돌담처럼 보인다.
작가의 작품들과 함께 어우러짐이 너무 자연스럽다. 그렇게 제주에 빠져 작업하면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어색했던 작가는 그가 가꾼 장소에서 지금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오랜 시간 다녔지만, 한 번도 글 한 줄을 남겨본 적이 없다. 사실 딱히 어떤 말을 써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작가의 사진만 봐도 좋았다. 이번에도 나는 남기지 않았다.
작가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여주던 공간은 작품 수장고가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모악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작의 조그마한 방은 언제나 늘 같이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 조그마한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 사이로 보이는 공간에는 20여 년 전 그를 기억할 수 있도록 변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책상에 작은 꽃바구니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스무 번의 오월을 기억합니다."
시간이 지나 그가 사랑했던 사진과 공간은 남았지만, 정작 작가는 그곳에 없다. 대신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채워나간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루게릭이라는 병이지만, 당시만 해도 낯서디 낯선 병명이었다. 제주의 들과 오름을 거침없이 다니던 작가의 육체가 너무나 고되었던 모양이었다.
작가는 에세이에서 '그간 본인의 사진을 많이 보지 못했는데, 병 때문에 마음껏 볼 수 있다.' 했다.
사진가에게 사진 찍는 즐거움과 행복을 빼앗아 간 병이지만, 어쩌면 자신이 기록한 제주를 천천히 볼 수 있게 유일한 시간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여러 해 두모악을 다니면서 오름과 제주 풍경에만 집중했었다.
나는 그의 사진을 제대로 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어느 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오름을 보던 중 희미하게 사람들의 형체 같은 게 보였다. 그렇게 나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았다.
그간 놓쳤던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 나섰다.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작가가 단순히 오름만을 기록한 것이 아닌 척박한 중산간에서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담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풍경 특성상 장노출과 다중노출을 사용할 일이 많아,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내가 보지 못했다. 풍경인 줄만 알았던 사진들은 제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로부터 나는 시간을 내어서 한 작품 한 작품 꼼꼼하게 보기 시작했다.
밭에 약을 치는 사람, 밭을 가는 사람, 수확하는 사람 등
각자의 시간 속에 삶을 살아내는 그 시절 제주도 사람들이다.
두모악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폐허가 된 조그만 삼달리 학교를 작가는 손수 고쳐 갤러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작았던 공간은 조금씩 점점 넓어진다.
학교 옆에는 가장 자연과 가깝게 공간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사랑했던 오름을 옮겨 두었다.
작가는 이어도를 기억하면서 제주도가 점점 그 모습을 잃어 개발되는 걸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 본모습을 잃어가기 전 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사랑했던 이어도를 말이다.
안녕하세요. 혜윰입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되었네요.
요즘 다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그간 놓았던 카메라를 드니 제주도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네요. 기록하다 보니 제주도의 사진이 어느 정도 모였네요. 그래서 제주도를 다니며 기록했던 순간을 사진과 함께 연재할까 합니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기록하고 남기겠습니다.
제주도 글의 첫 번째는 바로 제주를 사랑한 사진작가이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고 김영갑 작가님의 '두모악'으로 시작했습니다.하나씩 채워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