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헤랑가르 성에 오르려면 온통 파란색 벽으로 도배되어있는 건물들 사이사이를 지나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하며, 총 7개의 문을 통과해야만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7개의 문은 각각의 사연을 담고 있다.
특히 성의 네 번째 문인 로하 폴 (Loha Pol) 은 문 옆 벽면에 새겨진 사티의 흔적 때문에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곳이다.
사티(suttee)는 인도의 오랜 악습의 흔적이다.
사티란 남편이 아내를 두고 먼저 죽으면 남편을 화장할 때 아내도 함께 불구덩이에 들어가 그 명을 끝내는 굉장히 잔인한 힌두교의 풍습이다. (이런 행위는 풍습이라기 보단 악습이다.)
사티를 표현한 그림(죽은 남편의 주검을 껴안은 채 불구덩이에 뛰어든 아내)
비윤리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이러한 의식이 사실 인도인들에겐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되려 이러한 여성을 인도에서는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인식하기도 하고, 특정 지역에서 사티가 이루어질 경우 그 지역은 인도 내 관광지로 유명해지기도 한다.
미개한 풍습인 사티를 행하는 내면의 이유는 바로 여신으로의 승격에 있다. 사티를 행하면 그 아내는 여신으로 승격이 되어 사원이 지어지며 막대한 기부금을 받게 된다.
이렇다 보니 집안 가족들은 똘똘 뭉쳐 사티를 기어코 강습하고, 과부를 강제로 불구덩이에 넣어 산 사람에게 환각제를 먹이거나 기둥에 묶어 두어 불구덩이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잔인한 짓을 한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사티는 불타기까지 굉장한 시간이 걸리고 약 10시간이 넘도록 과부는 불속에서 재가 되어간다.
이러한 사티의 악습은 약 2000여 년간 이어져왔고,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기 1815년, 인도 사회 종교 개혁자 Raja Rammohan Roy의 노력으로 살인적인 이 악습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사티는 아직 '멸절'된 것이 아니며, 지금도 시골 마을 곳곳에서는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메헤랑가르 성 로하 폴 (Loha Pol) 문에 새겨진 불 속으로 뛰어들기 전 31명의 과부들의 손자국
사실 여행을 할 당시만 해도 '사티'는 그저 열녀의 상징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여행을 정리하는 지금, 그것의 잔혹함을 알게 되었고 축소시키면 축소시켰지 한치의 과장이나 거짓 없이 글을 풀어냈다.
나는 여행지로서 인도를 너무 좋아하지만 그들의 미개한 문화마저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티'는 반드시 근절해야 할 악습 중의 악습이며 종교의 풍습을 빙자한 돈에 눈이 먼 인간의 추악한 행태일 뿐이다.
사티의 흔적을 제외하곤 메헤랑가르 성 곳곳은 완벽했다.
우리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해 메헤랑가르 성을 올랐고, 가파른 언덕을 요리조리 다니며 어렵지 않게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피리를 불며 뱀을 부르는 할아버지, 더위에 지쳐 길에서 단잠을 취하는 아저씨, 가는 길을 알려주는 오지랖 넓은 청년들,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들, 술래잡기를 하는지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아이들까지.
인도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했고, 알아들을 수 없는 힌디어들을 조잘조잘 거리며 우리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외국인을 향한 거리낌 없는 그들의 순수한 손길, 눈길. 더 많이 보고 싶었고 내가 알고 있던 인도의 모습이다.
특히 아이들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우리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달려들기도 일쑤였다. 똘망똘망한 눈을 뜨고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데 어찌나 귀엽고 예뻐 보이던지.
연신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데 잠시나마 연예인이 된 듯한 기분도 받았다. (그때를 시초로 연예인 놀이는 인도 전역을 여행하며 끊이지 않았다.)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며 메헤랑가르성 투어
피리 부는 할아버지(좌) 메헤랑가르 성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본 블루시티 (중) 카메라를 손에 든 한국인이 신기한 인도 아이들(우)
메헤랑가르 성 투어를 마치고 우린 전날 먹었던 오믈렛 샵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가 점심을 먹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자스완트 타다.
메헤랑가르 성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또 다른 관광지인데 흰 대리석으로 지어진 묘지로 조드푸르의 타지마할로 불리는 곳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자스완트 타다였지만 자스완트 타다 가는 길이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 같아서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메헤랑가르 성과 자스완트 타다의 갈림길(좌) 자스완트 타다 입장료 Rs.30(우)
(우) 저 멀리 보이는 하얀 건물이 자스완트 타다. 멀리서 바라보는 자스완트 타다가 더 멋있다.
한국과는 동떨어진 현실감 없는 풍광을 바라보며 우리는 지금의 기분을 공유하고, 영양가 없는 농담들을 나누며 제대로 여행의 기분을 만끽했다.
하루 종일 걷고 조잘조잘 수다를 떨며 돌아다닌 우린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당을 정하는 데에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행지에 오기 전 맛집 리스트를 찾아보진 않았고, 가끔 여행 가이드북에 소개된 맛집을 가거나(몇 년 된 가이드북인 탓에 사라진 식당도 꽤 있었다.) 근처에 보이는 끌리는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저녁으로 우리가 선택한 식당은 '미드타운'이라는 나름대로 고급스러운 현지 레스토랑이다.
인도 현지물가 치고는 금액이 조금 있던 편. 탈리 2개와 라씨 2개를 시켰고 음식을 보니기분이 좋아졌다.
탈리 (Thali) 란 둥근 쟁반에 여러 음식을 담아 먹는 형태의 음식을 말한다. 쉽게 플래터라 생각하면 되고, 미드타운의 탈리에는 인도식 쌀밥, 짜파티, 난, 그리고 각종 카레들이 푸짐히 담겨 있었다. 탈리는 현지인들의 주식이기도 하며 향신료가 강한 커리 외에는 외국인들도 쉽게 먹을 수 있다.
갓 구워 나온 짜파티를 쭉 찢어 커리에 푹 찍어 먹으면 인도 음식의 시작이다.
탈리 하나, 라씨 한 잔
이렇게 식사를 하고 계산한 식비는 1인 Rs. 100. 원화로 약 2,000원.
최근에 인도음식이 그리워 한국에서 인도 음식점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난 세트를 먹으니 20,000원은 족히 했던 것의 1/10 가격이다.
푸짐하고 착한 값의 저녁을 먹고 우리는 숙소로 향하기 전 해외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코스인 전통시장을 구경했다.
개인적으로 해외여행을 가면 전통시장은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편이다. 관광지에서는 볼 수 없던 다양한 음식들이 즐비하고 그 지역에서 인기 있는 것, 다양한 연령대의 현지인들, 살아있는 그들의 표정과 말투를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알록달록 인도 전통 옷인 사리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 사다르 바자르
사다르 바자르는 전통시장보단 길가에 자리를 펴놓고 이것저것 판매하는 벼룩시장에 가까웠다.
옷, 신발, 액세서리는 물론 가전제품, 청과물, 육류, 향신료, 꽃, 음료 등 없는 것 빼곤 다 있는 그야말로 만물시장이었다.
빈손으로 돌아가기 아쉬워 우리는 사이좋게 한 손에 라씨 한 잔 씩을 들고 시장을 나갔다.
사다르 바자르를 마지막으로 조드푸르에서의 이틀간의 일정이 끝이 났다.
개인지 소인지 구분할 수 없는 길거리 동물들, 갓 구운 오믈렛, 사티(suttee)에 숨겨진 인도의 악습,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연신 손을 흔드는 인도 아이들, 동화 속에서 나올법한 자스완트 타다의 풍경, 카메라 셔터를 자극하는 알록달록한 전통시장, 맛있는 탈리 정식까지.
<김종욱 찾기>의 배경지인 조드푸르는 첫 여행지로 완벽했고 감동과 슬픔, 즐거움 모든 것이 함축되어있는 그런 곳이었다.
인도는 우리에게 복잡한 생각을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오늘 뭐 입지, 오늘 뭐 먹지, 오늘은 어디서 자지, 화장실은 어떻게 해결하지, 목이 마른데 물은 어디서 사지.
우리는 매일 매시간 당면한 이러한 1차원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에 힘을 썼고 그 덕에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오롯이 지금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