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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니 Aug 11. 2020

이해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해

우리는 부처가 아니에요.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 데로만 살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산다는 건 다 그런 거야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여행스케치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中' ♬♪


노래를 들을 때는 두 분류로 나뉜다.

가사를 듣는 사람. 그리고 멜로디를 듣는 사람.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보다 멜로디를 듣는 사람이다.

가사에 대한 공감보단 멜로디에 끌리는 노래가 어쩐지 나를 더 자극한다.


그런 나에게 여행스케치의 '산다는 건 다 그런 거 아니겠니'는 가사가 나를 자극해 내 플레이리스트에 정착된 몇 안 되는 노래 중 하나이다.




참 그런 것 같다.

살다 보면 원하는 데로만 살아지지 않고, 나의 생각으론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참 많다.

또 그래서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고백하건대 나와 남편은 결혼 준비 기간에 적지 않게 싸웠다.

함께 행복하게 살자는 궁극적인 목표는 같았으나 서로가 결혼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있었고 우리는 각자가 꿈꾸는 결혼을 함께 만들어 가기를 바랐을 뿐이다.

 

나는 이것을 원하고 너는 저것을 원하고. 내 생각엔 이게 맞지만 너의 생각엔 저게 맞고.


네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난 이해할 수 없어.


대부분 이런 레퍼토리였다.


내가 너를 이해하지 못하고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감정싸움을 하게 되고 상대에 대한 미움의 불씨를 켜게 된다.


'이해되지 않아.'
'이해가 안가.'


우리는 이 말을 너무 사랑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미 각자의 잣대로 이해의 기준을 세워놓고 모든 걸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내 생각의 기준과 다르게 흘러갈 때 '이해되지 않아'라고 마냥 치부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요즘 나에겐 하루에도 몇 번씩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낮잠을 잤는데도 또 졸리고, 기분 좋게 잠에 들어도 악몽을 꾸기도 하고 방금까지 우울했는데 돌아서니 또 행복하고.

밥을 먹었는데 배가 고프기도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배가 부르기도 하고.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려 하면 정말 끝도 없는듯하다.


'잤는데 또 졸리네? 왜 이러지?'가 아닌, '잤는데 또 졸려. 자야겠어.'

'점심도 안 먹었는데 왜 배가 안 고프지?'가 아닌 '배가 안 고파. 안 먹어도 되겠어.'

이런 연습이 필요하다.



분명 이게 맞는데, 틀릴 리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되는데 왜 난 안될까? 이해가 안가.




사람은 어떠한 일이 자신의 기대치에 못 미칠 때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한다.

즉, 본인의 잣대에서 지금의 현상을 이해하고 수긍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덜 성숙한 사람이고 결국 내 판단과 기준은 살아온 나의 단순 경험치에 국한될 뿐이다.

나의 경험치에만 의존하여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이해하기에는 우리의 그릇이 너무 작다.

누가 그러더라.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꼰대와 다르지 않다고.




왜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는가.


바꿔 말하면 왜 반드시 내 기준, 내관점에서 이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나의 기준이 세상의 기준이 아님을 받아들이고 수긍하면 되는 것을.


지금의 상황이 내 기준에 상응하지 못하니 우리는 스트레스라는 것을 받는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이해의 회로는 잠시 접어두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건 어떨까?

그게 힘들다면 모순 같지만 이해한 척 나 자신을 속이는 건 어떨까. 

이해되지 않아 스트레스받는 것보단 이해한 척 나를 속이고 가볍게 넘겨버리는 게 나의 심신 건강에 더 좋을 테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부처가 아니다.

이제 그만 이해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억지 이해는 접어두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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