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월 실직에 이 어리광 난동이 가능한, 실업에 관한 부르주아적 상상
노골적인 '뭐 있는 척'이 반복돼 촌스럽고 유치할 따름.
※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일부 내용이 드러납니다. :)
0.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가 많이 있는데?
1. 고작 이 정도 어려움에, 25년간 성실히 직장생활을 해온 사람이 이렇게까지 턴힐을, 그것도 이토록 멍청하고 허술하게 남은 인생을 내걸고 한다고? 박찬욱은 실직 같은 거 안 당해봐서 그런가? 겨우 이게 그렇게까지 될 일이야?
2. 알레고리 어쩌고 하지 말자. 이건 기본 '결'의 문제다. 고급 인력 성실맨이 아무 트리거도 없이, 고작 13개월 실직으로 이 어리광 난동을 부리는 건, 감독이 '실직은 모가지 모가지는 그로테스크 낄낄' 따위의 구태의연한 상상에 붙들렸기 때문이다. 첫 단추부터 낡고 후진 거다.
3. 삐걱거리는 상황들이 맞물리다 조금씩 어긋나서 정말 어쩔 수 없이 사건이 꼬여야 하는데, 박찬욱은 본인이 전지적 개입자가 돼 어쩔 수가 없네, 하면서 인물의 행보를 강제로 우두둑 변형시킨다. 힘쓰는 분재 작업은 이병헌만 한 게 아닌 셈. 이 영화에 고뇌하는 가장이 어딨나? 그냥 사이코패스지.
4. 산업화, 공장 기계 클로즈업, 환경파괴, 여전히 전쟁 속을 사는 아빠, 자식 미래를 위해서는 몸을 함부로 굴릴 수 있는 엄마 따위의 기표들과, 수많은 코엔 아류들이 지향하는 통찰력 있는 코믹 그로테스크를 '홈 스위트 홈' 버전 안에 한데 녹여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출발이 이러니 숏들의 설득력이 제로.
5. 그렇다 보니 스타일적으로 웃음과 아이러니가 정점에 달하는 '고추잠자리' 시퀀스도 영화 전체 안에서는 맥이 쭉 빠진다. 차곡차곡 타당하게 쌓은 것들이 플롯 흐름에 실려 자연스럽게 충돌하는 게 아니라, 장면을 미리 정해놓고 억지로 드라이브한 결과다. <핸섬가이즈>의 코믹-잔혹 숏들과 다른 게 뭔가? 카메라와 공간 연출에 깃든, 겉멋?
6. 경쟁자 살인에 관여한 그 최악의 날에 무도회를 가는 정신머리는 뭐고, 그 와중에 아내 팬티 냄새 맡으면서 외도 증거를 찾는다고? 폭력과 섹스의 연계에 관대하고 오히려 좋아하는 나지만, 이건 너무 밑도 끝도 없는 변태력 발산이라 낡고 더러웠다. 최악의 사족.
7. ◇ 구도 안에 피사체 밀어 넣고 관찰하는 숏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노골적인 '뭐 있는 척'이 반복돼 촌스럽고 유치할 따름.
8. "넷플릭스 해지 어쩌고"하는 대사는 박찬욱 영화 특유의 뜬금없이 본인 속마음을 표현하는 그 돌출 대사 부분 같은데, 역시 재미가 없다 재미가.
9. <헤어질 결심>은 <마더>와 <시> 이후 마침내! 내가 별 5개를 바친 첫 한국영화였다. 그런데 그 직후 이런 걸 내놓다니, <마더> 다음에 무려 <옥자>를 찍은 봉준호 이후 이런 실망은 처음이다.(물론 중간에 설국열차도 있었는데 그것도 그냥 그랬다)
10. 박찬욱 영화 중 최악. <삼인조>는 이보다 두 단계는 위의 작품이다. <사이보그라도 괜찮아>는 안 봐서, <달은... 해가 꾸는 꿈>은 그 자체로 논외. 끝. ⓒ erazer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