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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azerh Jul 04. 2022

[헤어질 결심] 누가 무엇과 헤어지고 싶었길래

'미결'을 '결심'한 주체에 관해

※ 영화 <헤어질 결심>의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시간은 결(決)의 축적이다. 한 사람의 시간 안에는 무수한 분별과 결정, 결단이 차곡차곡 쌓인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당장 오늘 끼니도 무엇으로 때울지 정해야 먹을 수 있다.


영화 매체로서의 물리적 시간, 즉 러닝 타임 또한 마찬가지다. 엄격한 기준 아래 선별된 숏들만 상영시간을 채울 수 있다. 이 숏들이 영화라는 유기체 덩어리를 구성하면 영화는 밖으로 나와 이미 마련된 체계 안에서 분류된다. 책꽂이에 꽂히듯 마이 추천 리스트에 정렬. 장르별, 키워드별, 감독별, 배우별 선호도 따위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2)은 분류될 자리가 거의 정해진 듯했다. 최근 남편을 잃은 젊은 여자(서래)와 그 여자를 맴도는 형사-남자(해준), 수사를 핑계 삼아 훔쳐보고 이끌리고. 단아한 팜므파탈과 말끔하지만 파멸할 형사, 로맨스거나 누아르거나 또는 둘 다거나. 기껏해야 박찬욱표 냉소가 곁들어진 파멸극 정도가 아니겠나, 싶을 때 어, 어? 마침내, 미결(未決). 이 영화는 지금, 분류표를 걷어차고 안갯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역행하는 영화. <헤어질 결심>


영화의 경로는 서래가 스테레오타입에서 탈피할 때마다 조금씩 구부러진다. 그녀는 훔쳐보기 구도 안에 놓였고, 증거를 남기며, 사람을 이용하거나 심지어 죽이지만 팜므파탈 규격에 딱 끼워지지는 않는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는 악녀 딱지를 찢는 반격의 멘트다. 나아가 자신한테서 '독한 년'이 아닌 '몸이 꼿꼿한 사람'을 발견한 남자를 끌어안기까지 한다.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는 느닷없이 도착한, 그녀만의 이별 예고다.


물론 스스로가 불쌍한 서래 씨는 여생을 교도소에서 보낼 생각이 없다. 도피. 어디로? 바닷가로. 바닷가는 영화에서 죽음을 장렬한 낭만으로 박제할 때 곧잘 찾아진다.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 <노킹 온 헤븐스 도어>(1997), <타임 투 리브>(2005), 심지어 박찬욱 본인의 <박쥐>(2009)까지.


하지만 지금 서래에게 필요한 건 낭만이 아닌 실용, 수수께끼의 창조다. 그래서 바다에 와서는 땅을 파고 들어앉는다. 이윽고 만조가 찾아오자 그녀는 모래로 물로 뒤덮이며, 묻힌 흔적도 없이 묻힌다. 시신을 전시하고 쓸쓸함을 과시하던 관습에 안녕이 고해진다. 도주의 완성이자 불멸의 사랑의 형태로서, 횡과 종이 뒤엉킨 트릭. 그렇게 서래는 해준에게 좌표를 찍을 수 없는 점이 되고 만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알 중 하나일 수도 있고 그조차 아닐 수도 있는. 사랑이 어떻게 그래요. 사랑은 원래 그렇다. 설명 못 할 무언가. 연쇄 미결사건의 또 다른 이름.


사랑, 설명 못 할 무언가. <헤어질 결심>


서래는 이 전무후무한 증발로써 그녀가 감당해야 할 수식어들을 모조리 따돌렸다. 살인 혐의와 행정상의 생사 증빙은 물론, 남편 잡아먹은 (중국)년 따위의 껍질도 벗어젖혔다. '시신' 딱지조차 달라붙지 않을 거다. 어쩌면 인간으로서 이 우주에서 사라지는 유일한 방법. 이제 그녀는 오직 해준이 살아있는 동안의 어떤 상념으로만 남게 됐다. 로맨틱하지 않은 절통의 로맨스가 지금 막 시작될 참이다.



이건 엄연한 변종이다. <헤어질 결심>은 훔쳐보기라는, 영화의 근원적 본질에 한 발을 담근 채 최첨단 관계 맺기 도구들을 경유, 장르와 스타일의 계보를 최전선에서 잇는 똘똘한 최적자인 척은 다하다가, 어느새 달아나버린다. 러닝 타임이 다됐는데 결론은커녕 말없이 안개만 흩뿌린 꼴. 하나의 익숙한 유기체로 뭉칠 것 같았던 숏들은 끝내 흩어져 각기 다른 표정을 짓는데, 최종 신(scene)의 그것들에게선 묘한 미소마저 감지되는 듯하다. 자신을 물과 흙에 동시에 가둔 살인자, 그녀만의 '사랑해서 헤어짐'을 특정 빛깔로 아우를 수 있겠냐는 투의. 이제 이 영화를 꽂아도 좋을 책꽂이나 분류표를 우리는 찾을 수 있을까. 글쎄, 본 적 없는 '걸작' 코너 정도면 괜찮으려나.


그러고 보면 <헤어질 결심>이라는 제목은, 영화를 분류하고 또 순응하는 기존의 복지부동적 계보학과 헤어질 결심을 한, 박찬욱의 결별 선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미'결'이라는 '결'심. 마침내, 이질적인 무엇으로의 분화. 마침내. ⓒ erazerh


결국,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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