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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민 Jul 14. 2019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얼굴

[web]발신에 대하여

온몸을 떨며 하루 종일 나를 불러대는 것이 있다. 손바닥만 한 핸드폰. 이 녀석은 내가 눈 뜨고 일상을 보낼 때나 눈 감고 잠을 청할 때. 아무튼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나에게 뭔가를 알리느라 울어댄다.


문자 메시지, 카톡, 메일 같은 텍스트부터 육성이 전파 끝에서 끝으로 닿는 전화까지. 부르는 방식도 유형도 가지각색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 알려주는 내용도 그 방식만큼 다양하다. 지난 8월에 졸업한 이후부터 경제활동인구에서 실업자로 분류되는 나에게 무이자로 3천만 원까지 대출해줄 수 있다는 엄청난 소식, 가을이 오기 전에 피부에 촉촉함을 보충해야 하는데 건성 피부인 나를(내가 건성인 건 어떻게 알았는지) 유혹하는 화장품이 출시됐다는 소식, 일생 처음 듣는 이름의 모 회사에서 귀하의 이력서를 열람했다는 소식까지 천차만별 가지각색 각종 알리미들이 한 보따리다.


쏟아지는 알림을 보면서 문득 온갖 정보만 쏟아내고 사라지는 ‘진짜 알리미’들에 대해 생각한다. 수신인이 있다면 발신인이 있는 법. 내게 필요해 보이는 정보를 끊임없이 배설하는 수백수천의 발신인들이 궁금해진다. 발신인들의 정체를 밝히려 노력을 해보았으나 시작 단계에서 금세 좌절하고 만다. 문자를 보낸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면 수신이 차단된 번호라 하고, 광고를 전해준 카톡 친구 역시 내 메시지를 받지는 못하며, 광고 메일로 답장을 보내봐도 묵묵부답이다. 한참 동안 시간과 노력을 낭비한 끝에야 비로소 발신인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불가능의 벽에 부딪힌 순간, 불쾌감이 몰려온다. 이건 조금 불평등하지 않나? 그들은 나를 매우 잘 아는데, 내 취향도 모두 꿰고 있는데 나는 그들의 성도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니. 더구나 그들을 알아낼 도리도 없다니. 4차 산업혁명 시대니까, 아마 정말 성도 이름도 얼굴도 없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일지도 모르긴 하지만. 애초에 발신인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던 내가 바보인가? 스스로의 바보 같음에 한 번 더 낙심하던 순간, 내가 그들에 대해 유일하게 아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은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나에 대해 굉장히 잘 안다는 것! 수백수천의 수신인들에 대해 내가 아는 유일한 사실을 알아냈다. 수백수천의 수신인들의 유일한 공통점이자 명쾌한 진리를 알아내고서 나는 아무도 몰래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개인적으로 사춘기를 심하게 늦게 맞아 질풍노도의 이십 대를 한창 보내고 있는 중. 가끔은 나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헷갈릴 때가 많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틈바구니 속에서 언뜻 드러나는 내 모습이 낯설 때가 많은 요즘이다. 이렇게 나도 나를 모르는데 그들은 올웨이즈 나를 정확히 안다. 소름이 끼치는 동시에 신기하기도 하다. 내가 자주 보는 기사, 자주 클릭하는 쇼핑몰, 자주 보는 블로그... 나의 온라인 행동 데이터들은 철저히 그리고 완벽하게 그들의 수중에서 분석되겠지. 아마도 '나'라는 데이터는 0과 1의 조합으로 분석될 테다. 그 데이터는 어떤 특성을 가진 개체로 유형화되고 한 가지 답으로 결정될 테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 모두 옛말이다. 그들에게 '나라는 사람 속'은 반박할 수 없는 숫자, 5천만 분의 1의 확률 중 하나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을 것이다.


나라는 인격이 숫자로 분류되다니. 왠지 기분이 조금 언짢아진다. 존엄한 인격이 아니라 데이터로 취급받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아무래도 여전히 이건 너무나 불공평하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인데, 적도 모르고 나도 나를 모르는 반면에 적은, 발신인들은, 적의 적인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보다도 잘 알고 있다. 짜증이 치밀어 문자 메시 지의 수신거부 080-xxxx-xxxx를 누르려는 순간, 손바닥만 한 핸드폰. 부르르 부르르, 부른다, 나르를.


‘[Web 발신]...’으로 시작하는 문자 메시지를 들여다보다가, 들여다보는 눈동자 동공이 확장된다. ‘수분 충전 마스크팩 10+10 세일! 한정수량! 오늘까지!’ 10+10이라고? 지금 집에 마스크팩이 다 떨어지긴 했지. 오늘 곧장 사러 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얼굴 없는 알리미가 보낸 맞춤형 광고 문자에서 나는 그들이 파악한 내 얼굴을 확인한다. 얼굴 없는 그들이 본 나의 얼굴. 그냥 저 얼굴이 지금 내 얼굴이구나, 하고 믿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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