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지민 Jul 19. 2019

퇴사와 입사의 연결고리 1-언시생이 자소서 쓰는 법

나를 소개합니다

나의 퇴사가 누군가의 입사에는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이왕이면 필기 합격 복기 본을 공유하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만, 필기 합격 경험이 그리 많지 않고 복기 본도 많지 않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무엇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은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와 '내가 왜 기자가 돼야 하는지'였다. 고민의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담긴 결정체가 곧 나의 자기소개서인 것 같다. 


특히 붙기 어렵다고 소문난 언론사 중 한 곳을 뽑아 서류 전형에 통과한 자기소개서를 올리고자 한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취준생이라면 자기소개서 문항만 봐도 어느 회사일지 알 수 있기에 회사 이름은 비공개로 올린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지 않는, 언론과는 관련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언론사' 입사 지원 자소서는 재밌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2018A회사]

1. 기자의 시각으로 자신의 부음 기사를 작성하세요. (시점은 각자 선택에 맡김)


  현장에 가도 그녀를 볼 수 없다. “제가 서 있는 곳이 어디라도 그 현장의 성주신이 되겠다.”라고 최종 면접장에서 외쳤던 그녀. 수습을 떼고 서울시청에 출입한 지 석 달째 되던 날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토록 원하던 회사에 입사한 지 꼭 1년 만이었다.


  풀을 먹여 각 잡힌 군복, 광이 나는 군화 구두코, 가슴에 달린 태극기 배지. 백발의 군인들이 시청 광장을 활보하던 때에도 그녀는 편견을 접고 펄럭이는 태극기 속으로 향했다. 입사 전부터 현장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깊었다. 뉴스가 있는 곳이라면 직접 가서 봐야 직성이 풀렸다. “기자야? 기자랑은 말 안 해.” 단호한 할아버지들에게 특유의 너스레로 다가가서는 1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일기장에 ‘다리보다 머리가 아팠던 날, 태극기 집회 후원금 서명서에 서명할 뻔’이라 기록돼 있지만, 그 날 그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 살아온 경험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현장에는 사람들이 있어. 기자가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친다면 절대 기록으로 남지 않을 사람들.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이들의 이야기가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꿈꿔. 나부터 현장에 남아 이들의 목소리를 전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녀의 눈은 언제나 기록되지 않으면 순간으로 남을 작은 사람들,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닿아 있었다.


  마지막 한 문장까지 두 눈이 충혈될 때까지 붙잡고 고치며 시청 소식을 깔끔하게 전달했던 그녀였지만, 퇴근 후 발걸음은 탑골공원으로 향했다. 김치 한 접시 안주 삼아 소주 마시는 할아버지와, 장기판을 빙 둘러싸고 훈수 두는 할아버지들 틈 사이에서, 막걸리 한 사발 얻어 마시고 왔다.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현장에서 그들의 아픔과 회한을 피부로 느꼈다.


  언제나 두 발은 현장에, 두 눈은 현장의 사람들로 향하고 있었던 그녀. 꿈을 펼치려던 순간 불의의 사고로 현장에서 별이 됐다. OO일보는 그녀가 못다 전한 마지막 기사 <탑골공원 노인들의 유일한 놀이터>를 내일 자 지면에 싣는다.


=> '부음 기사'라는 까다로워보이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부음 기사에서 역시 고인이 살아 생전 주로 했던 일과 그의 가치관이 드러나도록 해야한다.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임팩트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선택한 후 부음 기사 형식에 맞춰 정리했다. 기사 문체기에 좀 더 깔끔하게 다듬어야하는 점 때문에 시간이 꽤 걸렸다. 에피소드를 통해 강조할 수 있는 나의 특징에 더해 한 번 쯤 다루고 싶었던 기사 주제를 말미에 덧붙여 마무리했다.


2. 가장 좋아하는 문장을 패러디해 자신의 인생관을 설명하세요.(500자)


누구나 가슴에 시 하나쯤 품고 산다. 그 사람만이 가진 경험의 색깔은 오직 그만이 쓸 수 있는 시에 스민다. 시인을 찾는 눈으로 주변을 보면서 사람들을 관찰한다. 한쪽 무릎을 꿇고 옷자락이 땅에 끌리는 줄 모른 채 아이의 옷매무새를 만지는 아이 엄마와,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걸음을 맞춰 걷는 할아버지와, 가던 길 되돌아서 시각 장애인의 팔꿈치를 살며시 잡고 계단 위치로 안내하는 아주머니까지. 찰나의 순간 훔쳐본 시 속에는 희생과 사랑과 용기가 배어 있다. 나와 다른 경험을 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나에게 온기를 주는 시 선생님들. 나의 시를 되돌아보게 하고 나의 시를 고쳐 써나가게 하는 영감과 자극들이다. 시인을 찾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기자가 되겠다. 단 한 명의 시인만이 써낼 수 있는 문장들을 포착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사람을 공부하는 기자가 되겠다.


=> 인생관, 가치관, 신조 등을 묻는 문항은 나에겐 항상 어려웠다. 거짓으로 대충 지어낼 수야 있지만 너무 거창하거나 공감이 잘 안 되는 이야기들은 글이 쉽게 써지지 않았다. 무조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추천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시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평소에 사람들을 관찰하며 품었던 생각이었다. 좋아하는 문장을 패러디하라고 했을 때 참 많은 시구와 소설 속 문장들을 떠올렸지만, 나의 가치관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문장은 저 문장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할아버지가 살던 양옥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