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은 오래 이어온 대학생활의 마지막 해였다. 1990년대 말에 입학해 군대와 연수 등을 거치며 의도치 않게 8년이나 유지했던 대학생 신분.
그해 내겐 처음이지만 마지막은 아닐 줄 알았던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2006년 1월에 찾았던 프랑스 파리.
또 다른 하나는 2006년 12월 스키.
그중 스키 수업은 4학년 2학기 겨울방학에 2박 3일 스키장에서 숙박을 하며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틀째가 되니 혼자서도 상급자 코스에서 내려올 수 있을 정도로 스키를 탈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제부터 내 인생에 스키가 시작이라 생각했지만, 이후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스키를 타지 않았다. 스키장을 간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스키를 탄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이제는 스키 타는 법도 잊어버렸다.
프랑스 파리도 그랬다. 출장 때문에 유럽을 수없이 오갔지만, 이상하게 파리와는 인연이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파리에 머물렀던 2006년 1월, 나는 20대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14박 15일 일정으로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프랑스를 거치는 일정이었다.
당시엔 인터넷은 있었지만 스마트폰은 없었고, 유럽 배낭여행 필수품은 두꺼운 여행책자였다.
캐나다에서 1년간 지내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이었고, 친한 누나가 직전에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터라 국가와 도시별로 잘게 잘라놓은 여행책자를 빌려 토론토에서 뉴욕을 거쳐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는 유럽을 다녀온 친구와 지인들이 다들 최고라고 꼽았던 파리를 가장 하이라이트로 보고 마지막 일정으로 넣었다. 14박 15일 중 무려 3박 4일을 파리 일정으로 잡았다.
런던의 옛 건물과 트라팔가 광장의 넬슨 제독 동상에 매료됐고, 네덜란드의 홍등가와 안네 일기 주인공 생가, 벨기에 오줌싸개 동상과 홍합거리, 독일 쾰른 성당 등을 두루 거쳐 마침내 파리에 입성했다.
당시 나는 10일가량의 일정을 소화하며 한국인을 피해 유스호스텔만 전전해, 무척 지쳐있었다. 돈이 없어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유스호스텔에서 아침에 주는 식빵과 계란을 3~4개씩 먹으며 비용을 아꼈다. 파리에서 남은 모든 것들을 쏟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뉴욕 JFK공항에서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환승하는 과정에서 디지털카메라를 분실해,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길 수 없었다는 점이다. 카메라가 없으니 눈으로 보고 난 이후 "와 멋지다"하는 감탄사 한번 쏟고 나면 더 할 일이 없었다.
파리에서의 이틀간은 여행 책자에 나오는 모든 명소를 다 가보기 위한 강행군이었다.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도 봤고 오르세도 갔고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라 파리 전경도 봤다. 지금은 유리벽으로 장벽이 세워진 에펠탑도 당시엔 바로 밑까지 잔디가 깔려 거기에 누워 올려다본 기억도 난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2주 가까운 강행군에 지친 나는 마지막 이틀은 한인 민박집에서 중국동포 이모님이 싸주는 김밥을 먹으며 PC로 스타크래프트만 하며 보냈다. 민박집주인아저씨는 "여기까지 와서 왜 그러고 있냐"며 혀를 찼지만, 나는 더 이상의 여행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가 처음이고 조만간 또 올 것이라 생각해 별로 소중히 생각하지 않았던 파리를 다시 찾는 데까지 18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파리 여행은 순전히 아내의 '버킷리스트'로 시작됐다. 처음엔 유럽 여행, 그중에서도 패키지여행을 생각했다. 초등학생 아이 2명을 데리고 다니는데 자유 여행을 선택하면 얼마나 힘들지 걱정이 됐던 탓이다.
하지만 아내가 가고 싶은 유럽 도시는 파리 1곳이었고, 파리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있는 그림들과 그곳의 건물들, 에펠탑과 야경, 뒷골목의 분위기를 오롯이 느끼고 싶다고 했다.
결국 7박 9일간의 파리 여행을 계획하게 됐고 10월 하순 실행에 옮겼다.
20대 혼자 찾은 파리와 40대에 아내, 두 아이 등 4명과 함께 간 파리는 분명히 달랐다.
20대에는 나 혼자 내 짐만 가지고 다니면 됐지만, 40대엔 가족 모두의 짐을 들고 길을 찾고 안내해야 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해야 했고, 식당을 찾고 예약하고 주문하고 계산해야 했다.
날씨가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웠던 탓에 아이들은 입고 있던 겉옷을 다 나에게 맡겼다.
식당에선 물을 주지 않고 사 먹어야 했기 때문에 백팩에 아이들의 겉옷과 함께 물도 각자 먹을 4개(애들은 다른 사람이 입을 댄 물은 먹지 않는다)씩 들고 다녔다.
하루에 2만 보 이상 매일 걸었고,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2시가 다돼 숙소에 돌아와 녹초가 돼 잠에 들었다.
2006년 혼자 찾았던 루브르에선 소위 한국인의 루브르 3대 질문 1. 모나리자 어디 있나요? 2. 지금 여기가 어디 인가요 3. 출구 어디 있나요?을 그대로 외치며 1시간 만에 빠져나왔지만, 이번엔 3시간이 넘게 미리 예약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주요 작품을 감상했다.
생제르맹 거리에서 가장 인기 많다는 브라세리에서 1시간 줄을 서 밤 10시에 저녁을 먹었고, 모네의 집과 정원이 있다는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가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러 나가기도 했다.
테라스가 있는 에어비앤비에서 와인을 마시며 테라스밖 전경에 감탄하기도 했다.
분명 혼자 20대 때 왔던 파리보다 40대에 가족과 같이 온 파리는 육체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20대에 짧은 기억으로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 기억하는 파리와 달리, 40대에 내 아내와 내 아이들과 함께 온 파리는 4명에게 오래 기억될 행복한 기억이 됐다.
또다시 언제 파리에 가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다음번에 또 파리에 간다면 그때도 가족과 함께할 것이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