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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im Oct 23. 2020

좌절에서 얻은 것들

Day 47

처음 일로써 인정받았던 첫 직장의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 가보고자 한다.

크루즈 연수도 보내줬던 대기업은 입사 2년 차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3년 차가 되면서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전조현상은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진취적으로 앞을 향해 가던 일들의 방향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게 되고

무슨 일을 해보려고 해도 회사의 신용문제 때문에 은행과의 마찰로 이어졌다.

무역에서는 신용장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 신용장 발급을 허용하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갈수록 거래가 어려워졌고 이런 재무적인 사정이 있는 회사와 그 누구도 쿨하게 거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나마 오랜 거래처들만이 의리를 지키는가 싶더니 이내 돌아섰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었다.


내가 속한 기업의 흥망성쇠를 직접 목격하면서

선택한 첫 직장에 대한 후회와 좌절의 감정을 뼛속 깊이 느꼈다.

거기서 얻은 교훈은 단지 부정적인 감정은 아니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나의 삶이 위협받는 그 지점이었다.


취업의 과정에서 그렇게 치열하게 직장을 갈구했고

그나마 주어진 선택지에서 최선이라고 믿었던 회사가,

안전하다고 느꼈던 나의 일, 나의 삶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누군가의 의사결정과 경영에 의해

송두리째 흔들렸다.


나는 그런 위기도 성공도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선택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의 아비규환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끝까지 제 역할을 하며 귀감이 되었던 사람들도 분명 있었고

그랬기에 망해가는 회사의 경험도 책임감 있는 직장 상사들을 보며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믿고 1년 넘게 버티며 정리할 수 있었다.

반면 좌절, 괴로움, 무기력 같은 감정의 영역에 매몰되어 힘들어하는 사람들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도 내성이 생겨 무감각해지는 사람들

여러 부류를 관찰할 수 있었던 것도 타산지석 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사업을 하면서 좌절을 경험했던 순간들이 참 많았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순간, 폐업을 하던 순간, 동업이 깨지던 순간, 돈이 없어 마땅히 처리해야 할 결제일을 넘기는 순간, 거래처에 양해를 구하는 순간, 거절당하는 순간, 믿음이 사라지는 순간, 일의 비전이 흔들리는 순간, 품질 문제를 직면하는 순간, 너무 힘들게 일을 해내고 있는데 정산했을 때 손해가 나는 순간, 고객과의 약속을 못 지키는 순간 등등


이 모든 좌절 속에서 느낀 바가 있다.


감정은 지나간다.

문제 발생은 디폴트 값이다.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다.

정면승부가 답이다.

미룰수록 문제는 커진다.

비용은 손톱처럼 자라난다.

내 예상은 항상 빗나간다. 특히 돈에 관해서는 반드시.

괜찮겠지 하는 순간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믿어보자 하는 순간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사소하게 지나치는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된다.

작은 돈이 항상 큰돈의 문제로 번진다.

지금 할 말을 미루는 순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오해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감정에 에너지 쏟을 시간에 지금 끝장내고 일을 하는 게 낫다.

일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불신은 피어나고 역량 문제가 발생한다.

변명하는 순간 미래는 없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일은 속도보다 정확도

거짓말을 묵인하면 회사를 말아먹는다.


주옥같은 교훈들이 쏟아져 나온다.

100가지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교훈을 얻게 된 일화들이 무수히 많지만

창업은 이런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나 자신에게 직면하는 발가 벗겨진 그 과정들을 겪어내기에

인생에 있어 큰 의미가 있다고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절대 창업을 장려하진 않는다. 이것도 나만의 합리화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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