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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an Jan 21. 2020

작은 집에 살기 시작했다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다.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까?

짐을 많이 줄였다 생각했는데, 8평 집을 너무 우습게 봤다.


서류상 8평이긴 했으나 생각보다 커 보고,

정사각형 구조로 차게(!) 공간도 잘 나뉘어있는 했.

지은 지 2년 된 깔끔함... 에 아무래도 너 충동적으로 결정해버린 건 아닐까.


작은 것 하나 쉬이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

자질구레한 잔짐은 여전눈에 띄었고, 분유통이며 기저귀며, 아이를 키우면서 일시적으로 생긴 색색의 물건들선을 어지럽혔다. 곳에 잘도 숨겨놓고 깔끔한 척할 수 있던  이전 집에서와 달리, 없이 작아 집에서 그것들의 존재감은 상당한 것이었다.


정리해야지.

이미 1년 가까이 느리게 비워오던 터이기도 했고, 드라마틱하게 집 크기를 줄이기로 작정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었다. 천천히 나만의 방식대로 정리해 가기로. 그런데, 눈에 거슬리는 짐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삿날 밤,

되는대로 청소를 마친 집에 난방을 훈훈하게 어두고 아이를 데려와 재운 뒤 마침내 우리도 몸을 뉘었다. 신경 쓰이는 큰 을 무탈하게 완수한 남편은 금세 곯아떨어졌다.


반면, 나는 정신이 말똥 해질 뿐이었다.

하루 종일 추위 속에서 종종거렸으니 피곤할 법도 한데.

돌이 안 된 아이를 키우 동안 만성 수면부족으로 눈만 붙이면 기절할 준비가 되어있던 나였다.


처음엔 여행을 가도 그럭저럭 잘 자는 편인 내가 웬일로 잠자리를 가리는가 싶었다.  침대에 누워  깨닫게  불면의 원인은 하루아침에 삼분의 일로 줄어든 집 크기 따위가 아니었다. 제는 어이없게도 바로 '빌라에 처음 살아보는 나'였다.


가만 누워 잠을 청하니, 집 앞 작은 도로지나가는 자동차, 오토바이 소리와 심지어 사람들의 말소리가 전혀 거리감 없이 들렸다. 에 비친 가로등 불빛을 애써 무시하며 을 감고 있자니, 마 옆자리를 고 누운 듯했다. 아파트에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현장감 넘치는 서라운드 사운드. 


생생한 바깥소리는 안전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라가 더 보안에 취약하다던가? 갑자기 번호키 달린 현관조차 소용없게 느껴졌다. 지고 보면 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도 원한다면 외부인이 출입할 수 있어 전혀 다를 바가 없  막연한 두려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가오는 데는 이성적 판단이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우리가 그저 작은집이 아니라, '빌라'에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관상용이라 생각했던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나, 몇 미터 남짓의 화단과 울타리가 해내는 심리적 완충역할이 이다지 큰 것이었단 말인가.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 아파트에 줄곧 살아왔던 나로서는 그간 의식하지 못했던 ''의 바깥으로 한 순간에 쑥 빠져나와버린 것 같았다.


아파트의 크기나 그 집이 임대인지 아닌지를 두고 아이들마저 편을 가른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신문지상에서 심심치 않게 보고 들어왔지만, 주거 형태에는 아파트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주택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몸으로 배우고 있다. 그것이 소득에 비례하거나 사람의 가치에 비례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도. 머리로 대충 깨친 것을 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불면의 밤은 아이와 함께 하는 낮시간 동안 주변을 탐색하고, 작은 집 생활에도 익숙해져 가며 차차 나아졌다. 계절이 바뀌면서 사그라드는 추위처럼 마음도 누그러진 것일 수도 있다. 거대한 콘크리트 벽에 가로막혀 있을 때는 몰랐던 (늘 그랬으니 딱히 답답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이웃 사람들이나 그 가족, 다양한 생업을 가진 이들의 삶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집을 줄인 것은 하루만의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아직 후회하지 않는다. '작은 집에 사는 나'와 '빌라에 사는 나', 그리고 주위를 흥미롭게 관찰하며 2년째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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