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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an Mar 23. 2020

작은 집을 선택한 이유 하나

아이

2년 전, 8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8평 집으로 이사를 왔다.

몇 년째 꾸준히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들지 않 있던 차에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귀여운 집었다.


집이 작다고 누구나 자연히 '간소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 것이다. 내 경우 '8평'이라 소리 내어 말할 때 느껴지는 어떤 홀가분함이 짐을 되도록 늘리지 않 데 도움 될 거라는 생각이 컸다. 음에 걸리는 것은 아이 커가면서도 지내기 마땅한 공간일까 하는 망설임. 런데 역설적으로  아이는 이 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장본인이기도 하다.




아이는 하루하루 새로운 능력을 선보이며 자라고 있었다. 곧 돌아오는 전세 만기 즈음이면 활발한 무법자가 될 것이었다. 초스피드로 기고, 휘청휘청 서느라, 그러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죄다 입에 넣라 엄마 아빠의 혼을 빼놓는.


잠든 이는 들여다볼수록 신비로운 감정에 휩싸이게 하고 고통을 잊게 하는 천사 같은 존재지만, 누군가 말했듯 생후 1년은 천사와 함께하는 지옥 훈련이다. 산 후 회복되지 않은 너덜너덜한 몸으로 고강도, 고밀도 수련을 버텨내며 자식 간의 끈끈한 관계 쌓아나가는 것이다.


내 아이는 날 닮아 순하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산산조각 내듯 아이는 내려놓기가 무섭게 울어대는 편이었. 한동안은 기를 쓰고 분유를 거부하는 아이와 한 모금이라도 먹여보겠다는 서투른 모성이 서너 시간마다 전쟁을 치렀다. 남편 퇴근 무렵이면 부엌 한편에 입만 겨우 댔을 뿐인 젖병들이 성적표처럼 늘어서 있었다. 나는 종종 그것들을 비우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다 밤이 되어서야 씻어 소독하곤 했다.


이 작은 생명체와 함께하는 24시간 동안 식욕, 수면욕, 배변욕 같은 가장 기본적인 본능조차 제 때 해결하는 경우 드물었다. 운 좋게 10분, 20분 길어지는 아이의 낮잠 시간엔 서둘러 몸을 씻고 집을 치웠다. 산책이라도 나가보기 위해였으나 무리 부산스레 준비해도 아이의 끼니와 배변, 잠이 모두 겹치지 않는 오후 나에야 짬이 났다. 적절한 타이밍을 골라 지 않도록 조심조심 유모차에 태워 근처 마트에서 찬거리 두어 개 사 오는 것이 큰 성처럼 느껴지던 나날이었다. 짠한 것은 이와 중에도 청결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존엄(?)을 려놓게 될까 어떻게든 일 시간을 개어 머리를 감 씻었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래 봤자 아기띠 패션이었을 것을, 막잠이라도 더 잘 것을 참 애썼다 싶다.


진급을 앞에 두고 임신 막달까지 일하면서 몸이 고될 때면 곧 있을 휴직 기간에 집에서 쉴 평화로운 시간을 몹시도 그렸다. 그러나 막상 아이와 집에 있게 되자 '쉰다'는 것은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장면이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됐다.


일터에서 나는 꽤 독립적인 스타일로 대규모 글로벌 행사를 기획고 치러다.  반면, 갓난아이와 둘 뿐인 집에서 나의 업무는 세상 작은 일들의 반복이었다. 미국과 유럽을 넘나드는 전 지구 스케일로 일하다가, 아이의 먹을 것과 잠 시간과 목욕과 똥 스케줄로 가득한 24시간이라니. 없이 반복되는 업무인데다 마음대로 한꺼번에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도 없고 말이다. 모든 것은 그날그날 그분의 컨디션에 달린 것.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들은 누구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다는 것이다.  행복이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을 따스하고 충만하게 느끼는 1년이었다. 이토록 자율권을 빼앗기고도 그걸 잊을 만큼 황홀하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모성애일 텐데,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이러한 감정의 깊이를 짐작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어떤 연결고리로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이와 이렇게 살 비비고 있는 걸까 하고 벅차오르는 감동의 순간들.




그래도.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는 일은 힘이 들었. 렇다고 남의 손에 맡기지도 못하는 미련한 지였다. 나는 아이를 돌보고, 처에 사시는 친정 부모님 다 큰 딸 끼니를 챙기는 생활 패턴이 생겨났다. 부부의 독립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어떻게든 원가족에 비비지(?) 않는다는 게 우리의 모토였다. 하지만 거대한 육아의 우주 앞에서 초보 엄마 아빠가 신혼 때부터 지켜왔던 가치관 따위는 철없는 고집에 불과했다.


아이는 온 마을이 함께 키우는 것이었다. 가끔 부모님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바람을 쐬러 나갈 정도가 되자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그런 날들이 늘어가자 나는 어느새 "긴급상황 시 친정집에 애를 안고 보 이동 가능할 것"이라는 기준 최우선 순위에 놓고 홀린 듯 사 갈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친정 근처는 출퇴근 편해지면서도, 새로 지은 아파트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데다, 비싸기까지 했다. 지만 친정 가까이라도 살 않고 새파란 아기를 떼어놓고 출근할 날을 상상하니 정신이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평일엔 근으로 주말엔 대학원 수업으로 바던 남편 덕에, 편 없이 집을 보러 다녔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어느 순간 더 많이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낡고 오래됐지만 넓거나, 새로 지었지만 작거나. 중간은 없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중간이라는 개념은 결국 이도 저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금액이라도 집 크기는 20평까지 차이가 났다. 결국 인생의 숱한 갈림길처럼 이것 또한 선택의 문제였다.


남편의 수업이 없던 어느 토요일을 결전의 날로 정하고 마지막으로 집을 몇 군데 보던 중 이 집을 만났다. 작만 새집처럼 단정한 이 공간을 보았을 때,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에겐 물고 빠는 아이를 마음 놓고 키울 깨끗함이 1순위였나, 몰랐던 마음 속 우선순위가 정리되는 듯 했다.


아이를 키우기에 "깔끔함"과 "친정과 가까울 것"이라는 조건이 만족되자, 크기라든지 아파트가 아니라든지 하는 다른 조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뭐든지 임자가 있는 법이다. 25평 남향 아파트에서 8평짜리 북향 빌라로 이사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남편은 괜찮겠느냐고 눈치를 살피며 재차 삼차 물었.


집을 보는 짧은 순간에 눈여겨본 것이 있었다.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2층짜리 나지막한 단독주택과 마주 보고 있어 시야 트여있었다. 그 집엔 커다란 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봄여름엔 아이와 함께 푸릇한 잎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잠깐 사이에 즐거운 상상을 했다. 실제로 이 나무는 아주 실한 감나무여서, 가지마다 풍성한 열매와 늦가을 까치밥까지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나무 덕분인지 집 앞 전깃줄엔 이름모를 새들도 자주 날아와 앉는다. 작은 것들에 더욱 눈길을 주게되는 삶, 그것은 작은 집에 사는 큰 장점이다.


참, 긴급상황에 친정으로 도보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의 집. 감사하게도 지난 2년간 그런 "긴급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주말 오후, 아이 손을 잡고 아이의 작은 보폭에 맞추어 천천히 하비(할아버지) 집으로 산책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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