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별에서 9화
추분이 지나 해가 조금씩 짧아지고 있었다. 유성중학교 3학년 2반 상혁은 종례를 기다리며 나뭇잎을 바라보고 있다. 그때 담임선생인 수영이 종이를 흔들며 들어왔다.
"모두 자리에 앉아. 종례 한다."
아이들이 하나 둘 자리로 돌아가며 물었다.
"선생님 손에 그건 뭐예요?"
"중간고사 시험 범위."
"으아아! 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시나요!"
강바람에 갈대가 스러지듯 아이들이 스르륵 무너진다. 박수를 치며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수영.
"자자 일어나. 시험 한두 번 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래."
"그래도 매번 볼 때마다 끔찍하단 말이에요."
"아니 그냥 공부해서 푸는 건데 왜?"
"공부를 해야 되잖아요."
시험 범위가 나온 아이들의 마음이 진정이 될 리가 없었다. 수영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선생님 그냥 이제 시대도 바뀌었는데 시험 안 보면 안 돼요?"
제일 뒷자리에 앉아있던 민혁이 책상 위로 가방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진작 싸놓았는지 지퍼조차 꼭 닫혀있다. 민혁의 제안에 아이들은 신이 나 호응했다.
"맞아요. 어차피 상혁이가 1등 할 건데."
상혁이는 초등학교부터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수재이자 유명인사로 적어도 이 근방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수영은 웃으며 아이들의 아우성을 듣고 있다.
"자 그럼. 이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얘들아 시험은 왜 볼까? 누구 아는 사람?"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교실이 고요해진다. 모두가 숨을 참고 한 명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질문은 왜 이렇게 사람을 납작하게 만들까. 수영은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아는 사람? 없어? 그럼 내가 아무나 부른다."
"으아..."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작은 비명을 질렀다. 수영은 자신의 눈치를 보며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던 혜리의 이름을 불렀다.
"혜리야 시험은 왜 볼까?"
혜리는 깜짝 놀라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등수를 매기려고요."
수영은 칠판에 등수이라는 두 글자를 적었다.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니까?"
제일 앞자리에 앉아 다리를 떨던 종혁이 대답했다.
"공부. 그것도 괜찮은 답이라고 할 수 있겠지?"
수영은 공부라는 두 글자도 칠판에 적는다. 이제 칠판에는 '등수'와 '공부'가 적혀 있다.
"그런데 이것으로는 좀 모자란데. 반장?"
왠지 자신의 이름을 부를 것 같아 고민을 하던 민호가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확인하고 한 숨을 쉰다.
"반장 한 숨은 왜 셔? 편하게 이야기해."
"대학에 가야 하니까?"
"너희 모두가 대학에 가는 건 아니잖아."
"그럼 등수는 왜 있어요? 내신이 없으면 굳이 시험을 안 봐도 되잖아요."
어느새 질문에 호기심을 느낀 혜리가 참지 못하고 말을 붙인다.
"늘 일등을 하는 상혁이에게 물어볼까? 상혁아 시험은 왜 볼까?"
연필을 돌리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혁이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해야 되니까 하겠는데."
"상혁이는 늘 일등을 하지만 해야 되는 거니까 시험을 본다고 한다고 하네. 왜 시험을 보는지는 모르겠다는 거지?"
"예 그냥 이맘때쯤 범위가 나오고 수업 들은 내용에서 아는 문제는 풀고 모르면 틀리고 결과 나오고 그런.."
"오오. 일등의 저 담담함."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저기 자는 나영아! 나영이 좀 깨워봐. 나영아!"
"예?"
엎드려 자고 있던 나영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 침을 닦는다.
"집에 갈 시간이야."
"예."
"나영아."
"예."
"시험 범위가 나왔어."
"예."
"나영아 그런데 시험은 왜 볼까?"
"초등학교 선생님이 수업 잘 들었는지 확인하는 거라고 하던데요."
"확인. 좋다."
수영이 칠판에 '확인' 두 글자를 쓴다.
"더 뭐 생각하는 사람?"
"이제 없는 거 같아요."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러는 종례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시계를 보는 척을 했다.
수영은 칠판을 가리켰다. 칠판에는 '등수' '공부' '확인'이라는 여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제 이 세 개를 묶어 생각해보자. 학교는 교육기관이니까. 공부를 뺄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 만약 학교가 아니라면 어떨까? 공부를 뺄 수 있겠지? 학교가 아니어도 시험은 보잖아."
수영은 칠판에서 공부를 지웠다. 그러자 민혁이 말한다.
"그럼 두 개를 묶어서 등수를 확인하기 위해서 보는 거네요. 그런데 우리는 상혁이가 일등 할 걸 이미 알고 있는데요?"
민혁의 말에 수영이 '딱' 소리가 나게 손가락을 튕겼다.
"반은 맞아. 그럼 민혁이 너는 몇 등을 할까?"
"그건 시험을 보면 알겠죠. 높지는 않겠지만..."
민혁이 괜히 시무룩해지자. 혜리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민혁아. 나랑 너는 뒤가 더 가까울 거야."
"자 그럼 정리를 해보자. 상혁아 너는 몇 등을 할 것 같니?"
"잘 모르겠어요."
수영은 칠판에 물음표를 적었다.
"상혁이는 모른다고 하는데, 너희 들은 상혁이가 몇 등을 할 것 같아?"
"1등요."
수영은 다시 한번 칠판에 물음표를 그리며 말했다.
"과연 그럴까? 그럴 가능성은 높겠지. 그런데 그날 상혁이가 배가 아파서 못 나올 수도 있고 시험을 보다 답을 밀려 쓸 수도 있겠지? 다들 그런 경험 있잖아. 시험 범위를 잘못 알기도 하고 그런 거. 그때는 상혁이의 등수가 달라지겠지?"
"예."
"그리고 상혁이가 그날 등교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시험을 안 볼까?"
"아니요."
"상혁이가 시험 보는 날 학교에 안 온다면, 모두가 1등을 할 것이라는 상혁이가 1등이 아닐 수도 있고 민혁이가 상혁이보다 등수가 높을 수도 있겠네?"
"네."
수영은 다시 물음표를 그렸다.
"자 그럼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과연 시험의 본질은 뭘까? 시험에는 맞추는 게 중요할까 틀리는 게 중요할까? 혜리야?"
"저는 맞추는 거요. 점수!"
"나는 혜리가 정답을 맞히면 기분은 좋겠지만 그보다는 사실 너희가 뭘 모르는지를 아는 게 중요해. 나중에 그 부분을 알려줘야 하니까?"
아이들은 흥미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을 통해 보통은 등수를 정하거나 지식을 확인하니까. 시험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그런데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시험의 본질은 아니야."
"그럼 뭐예요?"
"시험의 본질은 상대방을 모른다는데 있는 거야."
"예?"
아이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반의 누가 몇 개의 정답을 맞힐지를 모르고 어느 부분을 잘 익히지 못했는지 모르지. 그것만 모를까? 선생님은 여기에서 너희들과 대화를 하지만 너희의 많은 부분을 모르잖아.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너희들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 많다고?"
"예."
"맞아. 나는 너희의 아주 조그만 부분밖에 알지 못해. 그리고 그 조그만 부분도 정확히 알지 못해서 시험을 통해 묻는 거지. 그러니까 누군가 너희를 시험한다는 건 상대가 너희를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야. 내가 너희를 정확히 안다면 시험이란 고통에 빠뜨릴 필요가 없지.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선생님에게 잘 알려주렴. 범위는 앞에 게시판에 붙인다! 수업 끝."
"우우!"
앞 문으로 나가는 수영의 뒤로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비난이 쏟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