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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훈보 Feb 23. 2022

사랑하는 소피아에게

추락하는 별에서 12화 (Quid est Veritas)

잘 지내시오? 


지난 편지를 보낸 지 오래지 않았지만 이번에 로마로 가는 상단이 있다 하여 또 편지를 쓰기로 했소. 문득 떠오르는 당신을 위해 편지를 쓰거나 동봉할 선물을 고르는 정도가 이곳에서 내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인 듯 하오. 


지금 이곳은 벌써부터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소. 당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또 하나의 계절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제법 쓸쓸하오. 이 계절에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먼 곳의 생활을 이어간다오. 너무 수다스러운 것이 남자답지 않은 행동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것 외에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이가 없다는 게 이곳 생활의 가장 어려움이 아닐까 하오. 


젊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보고 중요한 인물로 여기기를 바라며 살아왔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니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정신도 덩달아 나약해져 나의 쓸모를 자랑하기보다 삶의 번잡함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소. 요즘은 몇 년 전 당신과 떠났던 여름휴가의 한적함만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 같소. 


소피아. 우리 둘이 함께 보내던 그 여유를 기억하는지 모르겠소. 소나무 그늘에서 나누었던 대화는 나긋나긋하고 크게 소리 낼 일도 없지 않았소. 말이 없으면 없는 대로 고요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시작하는 대로 부산스럽지 않아 좋았소. 


나도 사람들의 사이에서 경쟁과 다툼을 반복하여 여기까지 왔지만 사람들이 모이면 이렇게까지 소란스럽다는 사실에 깜짝깜짝 놀란다오. 때론 사람들이 모여 떠들기 위해 사는 것 같소. 일을 하기보다 모여 떠들고 헐뜯는 일을 즐기는 것을 보고 있자면 각각의 생명에게 주어진 본연의 임무가 사랑이 아니라 다툼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는 것 같소.


어째서 사람들은 모여 소란스럽게 하는 것인지 당신과 나의 대화처럼 작고 나긋나긋할 수는 없는지, 속주의 재판소에 모여든 사람들의 아우성을 듣는다면 당신도 예전에 없던 나의 주름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오.


소피아. 사람들은 종교와 정치가 다르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소. 종교도 정치도 모두 사람이 모여 만들어지는 큰 비극이라오. 허리에는 동전주머니를 차고 오른손으로는 악수를 건네며 왼 손으로는 칼날을 벼리는 것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르오. 그래서 나의 표정이 날로 사나워지고 눈동자는 뿌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싶소.


나는 언제나처럼 그대와의 평온한 시간만을 그리워한다오. 우리가 늙고 병들기 전에 금화를 모아야 하고 그때까지는 남들을 시기하며 힘들게 밀고 들어온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게 나에겐 작은 슬픔이라오. 


괜히 한 번 더 부치는 편지라 투덜거림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선택들이 꽤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일이 될 것 같아서 인지, 멀리 있는 당신에게 조차 시끄러운 세계의 일을 전하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겁소. 


오늘 나의 무례를 용서하시오.

 

언제나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빌라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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