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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훈보 Feb 24. 2022

반석이의 그림일기

추락하는 별에서 13화

검정고양이 펠릭스는 40센티 정도의 한국 단모종으 덩치는 크지 않지만 호기심이 많아 사고는   치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펠릭스도 유독 식탁에 덮어놓은 우산 모양의 식탁보만큼은 건드리는 일이 없었다.  안에 무엇이 들어있든 일단 식탁에 음식을 두고 보를 펼쳐두면 펠릭스는  근처까지는 가더라도 덮개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가족들은 모두 그런 펠릭스를 신기해했다.


"아마도 우리가 펠릭스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으니 펠릭스도 그런 것 아닐까?"


엄마는 그런 생각을 하며 보를 덮는다고 하셨다. 책장도 쉽게 올라가는 펠릭스가 식탁 위에서 사고를 치지 않는 게 엄마에게는 감사한 일이었다. 만약 펠릭스가 음식을 건드린다면 반석과 형제들은 모두 냉장고에서 간식을 꺼내 먹어야 하니 아이들에게 찬 음식을 먹이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펠릭스가 가족의 일원으로 할 수 있는 훌륭한 협력이었다. 그래도 호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누구라도 식탁보를 걷으려 들면 펠릭스는 귀신같이 나타나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곤 했다.


지난 금요일도 마찬가지였다. 학원에 다녀온 반석이 현관에 들어서며 엄마를 부른다.


"엄마 배고파!"


하지만 집안은 고요했다. 반석은 방바닥에 가방을 던져놓고 식탁으로 가보았다. 식탁에는 붉은 장미가 한껏 새겨진 식탁보가 활짝 펼쳐져 있었다. 허기에 마음이 급해진 반석은 얼른 화장실로 가 손을 닦는다. 하지만 급한 마음 때문인지 손에 남은 물기는 먼지가 덕지덕지한 바지에 슥슥 문지른다. 이제 식탁보를 열 차례. 어느새 펠릭스가 식탁 근처에 와 있었다.


"야 넌 진짜 대단하다. 아까 들어올 때는 머리도 안 내밀더니 어?"


꼬리를 치켜세우며 반가워하는 펠릭스를 한번 쓰다듬은 반석은 식탁보를 들어 올렸다. 그 안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하얀 접시가 있었고 빽빽하게 하얀색 호빵 여섯 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호빵 아래 종이가 하얀 것이 3개 초록색이 3개인 것으로 보니 세 개는 야채가 들어있고 세 개는 팥이 들어 있었다.


'조금 있다 형 오면 같이 먹어야지...'


방금 같이 먹기로 마음을 먹었는데도 은은하게 올라오는 향 때문에 반석은 손가락을 한 번 대 보았다.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호빵은 겉이 말라 보이는 것 치고는 온기가 조금 남아있었다. 지금 바로 먹으면 뜨겁지는 않아도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반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새 식탁 위에 올라온 펠릭스가 괜히 다가가 호빵의 냄새를 맡아본다. 그 모습을 보는 반석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꼬르륵"


배꼽시계를 먼저 확인한 반석은 그제야 시간을 확인했다. 오래전 할머니 댁에서 얻어온 벽시계는 초침이 느리게 돌아가고 있었다. 작은 형이 집에 오려면 빨라도 삼십 분이 걸릴 듯했고 중간에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라도 길어진다면 못해도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할 터였다. 큰 형은 분명 두 시간도 넘게 있다 올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반석은 작은 형을 기다리는 게 좋을지 금 먹는 게 좋을지 고민에 빠졌다.


'지금 먹어야 맛있는데...'


고민을 하던 반석은 잠깐 셈을 해본다.


'팥 3개 야채 3개니까.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팥 1개 야채 1개.'


반석은 침이 꼴깍 넘어갔지만 둘째형이 오면 같이 먹는 게 더 맛있을 것 같아 참기로 했다. 숨을 들이켜 냄새를 한 번 더 맡고 식탁보를 덮는다. 그리고 거실로 가 누워 TV를 틀었다. 하지만 배가 고픈 아이 가까이에 호빵이 있는데 TV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야채 호빵 하나만 먹자.'


반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가 야채 호빵을 하나 집어 들었다. 어느새 펠릭스가 또 다가와 호빵을 집어 드는 반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펠릭스. 내 거 먹는 거야. 너는 안돼."


펠릭스는 반석의 말을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야옹' 소리를 내고 다시 식탁 아래로 내려갔다. 반석은 식탁에 앉아 조심스럽게 호빵에 붙은 종이를 떼어 내 한입 베어 물었다. 짭짤한 돼지고기와 달콤한 양파의 맛. 약간 질척이면서 아삭 거리는 양배추와 혀를 조금 얼얼하게 하는 후추까지 모든 맛이 따뜻하게 입안으로 퍼졌다. 한입이 두입이 되고 언제 먹었는지도 모르게 손 안의 호빵이 사라져 갔다. 시간이 흘러 반석이 정신을 차릴 즈음에는 식탁 위에는 3개의 팥 호빵과 1개의 야채 호빵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펠릭스의 얼굴만이 식탁 위에 동동 떠 있었다. 반석을 말리러 온 것인지 펠릭스는 반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차.'


아무리 배가 고팠다 해도 하나는 팥 호빵을 먹었어야 했는데 어쩌다가 반석은 야채호빵을 두 개나 먹어버린 것일까. 반성을 해보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반석은 식탁보를 덮으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작은 형이 오면 투덜거릴게 뻔했지만 큰형이 팥 호빵을 두 개 먹기만 한다면 또 별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식탁 위의 호빵을 보고 있자니 반석의 머릿속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남겨놓은 호빵의 개수를 아는 사람은 나뿐이고 여기서 야채 1개를 더 먹는다면 호빵은 딱 3개가 남는데? 우리는 세명이니까 딱 좋을 것 같아.'


이윽고 반석은 결심했다. 그리고 빤히 바라보는 펠릭스를 들어다 거실에 놓은 뒤 나머지 하나의 야채호빵에 손을 뻗는다. 펠릭스는 거실 소파 위에서 호빵에게로 서서히 다가가는 반석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주의 그림일기는 바로바로"


반석의 반 담임 선생님이 발표를 앞두고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었다.


"정반석! 앞으로 나오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친구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반석은 처음 받는 그림일기 도장이라 어색한 얼굴로 앞으로 나갔다.


"반석이는 주말에 형들을 기다려 호빵을 나눠먹은 이야기를 일기로 썼어요. 따뜻한 분위기가 가득한 호빵을 아주 잘 그렸고요. 이제 반석이가 나와서 일기를 한번 읽어주세요."


반석은 아이들의 환호에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음.. 읽겠습니다."


반석은 교탁에 펼쳐진 자신의 일기장을 건네받아 읽기 시작했다.


"금요일. 검정고양이 펠릭스는 언제나 간식을 지킨다. 오늘은 엄마가 두고 간 호빵을 지켰다. 배가 고파도 간식은 건드리지 않는 착한 고양이. 식탁에는 삼 형제를 닮은 호빵 3개가 있었다. 나는 너무너무 배가 고팠지만 형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형과 함께 먹으면 호빵이 두배는 맛있기 때문이다. 끝."


아이들의 박수가 교실에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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