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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혁 Nov 08. 2022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우리가 만든다

2022.11.08. 서울인쇄센터 일지 7 

인쇄업에 종사하는 소공인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뭘까? 서울인쇄센터를 운영한지 8개월째, 센터의 가장 큰 업무 중 하나인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매번 맞닥뜨리는 질문이다. 올해 220여 회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현업 인쇄인들에게 얼마나 적합하고 절실한 교육이었는지를 따지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정답은 당사자에게 있다고, 인쇄인들에게 답이 있다는 모범 답안은 있으나, 행정과 당사자 사이에 놓인 중간지원조직의 관성인지, 날 것 그대로의 당사자의 육성을 종종 내 식대로 오역하곤 한다. 현장은 인쇄인이 잘 아시겠지만, 사업의 ‘기획’과 ‘실행’은 전문가가 따로있다는 착각이다.


돌아보면 지난 여름 현업 인쇄인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위원장 이태영)의 위원들이 스스로 기획한 ‘서울인쇄대학’을 제안했을 때도 비슷한 태도였던 것 같다. 당장 경직된 예산에 어떻게 앉힐 것이며, 수요 파악이 전혀  되지 않은 터라 수강생이 모집될지도 우려스러웠다. 인쇄인들이 추천하는 강의 주제가 죄다 센터의 기존 강사풀 밖에서 강사를 찾아야 한다는 것도 주저한 이유 중 하나다.


도시재생에 참여하면서 행정에서 미리 계획을 세워 놓고 주민들의 의견을 듣겠다던 부조리를 나름 문제시해왔는데, 정작 내 스스로 당사자들의 의견을 내 계획에 욱여넣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 머뭇거릴 새도 없이 ‘서울인쇄대학’이 진행되게 된 것은 단연 당사자들의 의기투합 덕분이다. 위원들이 강사를 섭외하고 홍보도 직접 나선 덕에 정원을 모두 채웠다. 그렇게 지난 8월 ‘서울인쇄대학’을 시작했고 무사히 6회 강의를 마쳤다.


 인쇄인이 기획하고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서울인쇄대학'이 1기를 마치고 2기를 시작한다. 사진은 9월 28일에 진행한 6강 천종욱 세무사의 강의 모습


9월 28일 진행된 ‘서울인쇄대학’의 종강은 인쇄인들이 스스로 마련한 잔치다웠다. 기획과 진행에 앞장선 이태영 운영위원장은 자신의 인쇄소에서 제작해온 수료패를 이날 수업에 참여한 인쇄인 13명의 이름을 차례로 호명하며 전했고, 아크릴 공장을 운영하는 인쇄인은 사진을 넣을 액자를,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인쇄인은 기념품을 가져와 함께 나누는가 하면, 직접 지역 언론을 초대해 자축의 의미를 기록으로 남겼다.


센터로서는 그야말로 거들기만 한 수업이었다. 애면글면 기획하고 강사섭외하고 홍보해도 프로그램도 잘 진행될까 말까인데, 어떻게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다양한 세대가 모였음에도 어떻게 이런 호응과 참여도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 과정을 곱씹게 된다.


참여한 인쇄인들이 수료패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수료패는 이태영 위원장(사진 아랫줄 가운데)이 서울인쇄대학을 기념하기 위해 본인의 인쇄소에서 직접 만들었다


하나의 인쇄물이 만들어지기까지 십여 개의 인쇄소를 돌면서 공정 간의 협업을 해야 하는 인쇄인의 DNA가 이런 결속력을 만드는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재충전하고 자신들의 현안을 살필 수 있는 자리에 대한 이들의 허기를 느끼게도 한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조직하는 힘을 새삼 느끼게 해준 기회이기도 했다.


수료식이 진행된 자리에서 참여자들은 이 모임을 지속해야한다며 회장과 총무를 뽑았다. 그리고는 자신들을 ‘1기’로 명명하고 곧바로 ‘2기’ 수업을 진행하자며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엉겁결에 기획하게 된 ‘서울인쇄대학’ 2기가 11월 9일에 시작된다. 이번 2기 역시 운영위원회가 1기 강의를 평가하며 새로운 강의로 전면 재구성했다.


1강 동국대 김민수 교수의 ‘4차산업 혁명과 새로운 트렌드’를 시작으로 12월 14일 안양대 신재욱 교수의 ‘광고와 마케팅 전략’까지 6주간 이어진다. 이 자리엔 1기 참여자들이 함께 청강하며 2기 참여자들을 환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1기에 이어 2기까지 두 배가 된 ‘서울인쇄대학’을 보면서, 아직은 섣부르지만 ‘서울인쇄대학’이 인쇄인들의 새로운 구심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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