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아내 욕을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아내가 나더러 일을 하라며 아이들을 모두 챙겨 나갔다. 잠시 후 다시 현관문이 열리 더니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첫째 방, 민트색 상자에 있는 마스크 좀 줘. 나는 첫째 방안으로 들어가서 둘러봤지만 민트색 상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주위를 둘러보며 꼼꼼히 살피고 있자니, 아내가 한 마디 했다. '에휴, 그냥 내가 들어와서 찾을 걸.'
그러더니 둘째를 한 팔에 앉은채로 성큼 성큼 들어와 상자를 찾았다. 문제는 그 상자가 민트색이 아니라 분홍색이 었다는 것이다. 아내도 색맹이 아닌지라 그 사실을 발견했고 순간 머쓱해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울컥했다. 아내가 나를 구박하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물건이 없어졌을 때 어디로 치웠냐고 찾는 거(지난번 턱받이 때처럼), 두번째가 특정한 물건을 찾아달라고 나에게 얘기했는데 내가 버벅일 때다.
하지만 대체로 내가 버벅이는 이유는 아내의 설명이 부정확해서다. 차라리 민트색 상자라는 말 없이 마스크를 찾아달라고 했으면 쉽게 찾을 법도했을 텐데, 그놈의 민트색 상자가 눈씻고 찾아도 안보이니 나는 정말 억울하다. 아내는 멋쩍게 웃으며 미안하다고 했지만, 속상했다. 내가 보기에 아내는 심신수양이 필요하다. 일단 작은 일에도 화부터 벌컥 낸다.
사실 이제는 약간 요령이 생겼다. 아내의 설명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건 아내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녀 역시 인정하는 바이다. 아내는 디테일에 약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항이 뒤섞일 때가 많다. 아까 마스크 같은 경우에는 마스크 색이 민트색이었다. 그러니까 민트색 마스크와 분홍색 상자가 합쳐져서 민트색 상자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니 사소한 디테일에 대한 설명은 '진짜가 아니라'고 가정하고 '마스크'부터 찾는 게 답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방심할 때가 있다.
아무튼 이번엔 아내도 꽤나 반성했다. 화부터 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 사과라도 하는 게 어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