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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크렐 Aug 31. 2022

'우영우' 덕에 장생포 방문객이 늘어났다는데

직접 방문해보니 강하게 느껴진 아이러니함

얼마 전 장생포 고래문화특구를 다녀왔다. 울산 여행 간 김에 들른 거기도 했지만, 사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바다를 자유롭게 노니는 고래를 직접 살피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일부러 고래문화특구가 있는 울산을 여행지로 잡은 거기도 했다. '우영우'를 열심히 봤다면 한번쯤은 고래를 보면서 드라마를 떠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나처럼 생각한 사람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우영우' 이후 고래문화특구의 방문객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지난달 14일에는 운영 이후 일간 최다 방문객을 경신했단다. 고래문화특구 측도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라는 격언을 충실히 수행했다.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를 찾아 나서는 '고래바다여행선' 운항 편수를 늘렸고, '우영우'처럼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이름을 가진 방문객에 대해 특구 대부분의 시설에 무료 입장할 수 있는 혜택 등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했다.


그런데 우영우의 '고래 사랑'을 생각하면 장생포 고래문화특구가 반사이익을 얻는 게 아이러니하다. 이곳의 여러 시설들을 보면 사실 우영우의 고래에 대한 생각과는 정확히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다녀와서 왠지 모를 찝찝함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장면 바로 다음에 우영우는 이준호에게 "고래에게 수족관은 감옥입니다!"라고 놀란 표정으로 답한다.



'고래문화특구'는 정말 고래를 위한 공간일까



우영우는 고래를 좋아하지만 고래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수족관에는 가지 않는다. 수족관 고래 상당수는 몸집에 비해 좁은 수조는 물론, 돌고래쇼 등으로 인해 원하지 않는 재주를 부려야 할 때가 많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고래를 사랑하는 우영우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을 테다.

우영우는 고래를 보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적도 없다. 물론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우영우가 바다 위에서 심하게 흔들리는 배를 타는 것 자체가 고역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영우는 동시에 고래를 보려고 배를 타는 과정에서 뱃소리 때문에 고래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고, 자칫 배로 인해 고래의 지느러미 등이 다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


그래서 우영우가 고래를 보러 간 곳은 '고래바다여행선'이 아닌, 제주도 대정읍의 한 해안가다. 그곳에서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를 멀찌감치 감상하는 데 만족한다. 망원경과 고배율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가지고 아주 먼 곳에서 고래를 포착하려고 한다. 고래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극중에서도 고래는 우영우가 간 뒤에야 나왔다) 우영우는 그저 고래를 보는 게 좋은 것이지 고래를 어떻게든 보기 위해 기를 쓰지는 않는다. (물론 대정읍 해안가에서도 고래 관람용 유람선이 운영 중이긴 하지만 작중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우영우가 이준호와 함께 고래를 보러 간 대정읍 신도리의 한 해안가. [출처=핫핑크돌핀스]


고래문화특구는 정확히 그 대척점에 있다. 고래문화특구의 고래생태체험관(이라 쓰고 수족관이라 읽는다)에는 돌고래 4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2009년 문을 연 이후 10년 넘게 머무른 돌고래도 있고 수년 전에 들여온 돌고래도 있다. 원래 12마리의 돌고래가 있었지만 상당수는 각종 질병으로 폐사했다고 한다. 어쨌든 살아 있는 저 돌고래들은 생태체험관의 핵심 콘텐츠다.  이들 고래를 보기 위해 5천원(성인 기준)의 입장료를 낸다. 생태체험관이 고래 4마리를 임의로 가둬 놓고 관광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동물보호단체 등을 중심으로 이들 고래를 바다로 조속히 방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된다. 드라마에서도 우영우가 이준호와 함께 한 수족관 앞에서 고래 방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고래문화특구를 운영하는 지자체(울산 남구)는 고래 방류에 뜨듯미지근하다. 정부 지침에 따르겠다는 얘기를 할 뿐이다. 하지만 2022년도 예산안에서 고래 방류를 위한 바다쉼터 조성 기본계획 및 용역비는 최종 조정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평생 고래를 수족관에 놔둘 수 없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그 속도와 방향성 등을 놓고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모양새다.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에서 운영하는 고래바다여행선에 탔다. 이날 고래는 보이지 않았고 파도가 높이 쳐서 승객들 상당수가 뱃멀미를 호소하며 휴게실에 누웠다.


'고래바다여행선'도 드라마에서 잠시 언급됐지만 고래에게 충분히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물론 직접 고래바다여행선을 타 보면 배가 엄청나게 큰 소음을 내는 것은 아니고, 고래가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고래 바로 앞까지 밀접하게 다가가지는 않는 것 같다. 게다가 고래를 볼 확률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다(약 15% 정도 된다는데, 나도 고래는 못 봤다). 하지만 작지 않은 소음을 유발하는 것 자체가 고래에게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칫 승객들이 고래한테 먹이를 준다고 이상한 걸 던져줄 수도 있고...


더욱이 고래문화특구는 국내에서 상업적 포경이 허용되던 시절 고래잡이의 최전선 기지였다. 그 영향으로 고래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여럿 들어서 있다. 물론 현재는 포경이 금지됐기에 해안가에 떠내려온 고래를 대상으로만-그것도 까다로운 검증 후-고래고기를 만들긴 한다. 그래도 '고래문화특구'라는 곳에서 고래를 요리해 먹는다는 행위가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이곳이 한때 국내에서 고래를 가장 많이 살육하던 곳 중 하나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이러다 보니 '우영우' 때문에 고래문화특구를 보러 가는 관람객들이 많아지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직접 가 보니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돌고래쇼는 '생태설명회'로 바뀌었지만



'고래생태체험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고래 수족관은 예전에 어릴 때 봤던 돌고래쇼 공연장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고래생태체험관'이라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최대한 고래 친화(?)적인 전시 콘텐츠들로 이뤄져 있다.


고래생태체험관은 돌고래들이 사는 대형 수조와 각종 고래 관련 전시물, '고래 생태설명회'를 볼 수 있는 2층의 무대 등으로 이뤄졌다. 마침 내가 갔을 때 생태설명회가 진행되고 있어서 잠깐 구경했다. 사육사가 돌고래의 먹이와 생활 등 각종 생태 정보를 관람객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동안 돌고래는 수면 위를 유유히 헤엄쳤다. 그러다 이따금씩 물을 튀겨 재주를 넘거나 할 때마다 관람객들이 탄성을 질렀다. 큰 몸집의 돌고래가 공중제비를 도는 모습은 그 자체로 꽤나 장관이었다.


생태설명회는 예전에 유행했던 '돌고래쇼'와 선을 긋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본 회차에서는) 돌고래가 훌라후프를 넘나들거나, 사육사의 명령에 따라 각종 어려운 자세를 취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육사가 돌고래의 생태를 설명하면서 먹이를 주고, 돌고래가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배려했다. 돌고래는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공중제비를 돌았고 꼬리를 한껏 흔들었다. 돌고래쇼 때보다는 전체적으로 작위적인 면이 좀 덜했다.


2017년 고래생태체험관의 고래생태설명회. 당시에는 천장에 공으로 보이는 것이 매달려 있는데 최근에 가본 바로는 저 공을 보지 못했다. [출처=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사육사는 돌고래가 바다의 쓰레기를 섭취하면 돌고래가 폐사할 수 있다며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 것을 관람객들에게 주문하기도 했다. 이렇듯 일방적으로 '돌고래 서커스'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실제 돌고래의 생태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돌고래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전시장을 둘러보니 체험관에서 돌고래를 위해 정기 건강검진을 하고 있다는 점, 돌고래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도록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었다. 이외에도 돌고래에게 바다 쓰레기가 얼마나 해로운지, 고래생태체험관이 위험에 처한 해양동물들을 구조·치료하는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는 점 등도 소개됐다. 고래생태체험관이 친환경적으로 고래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 실제 환경 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는 점을 적극 알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래생태체험관에 전시된 돌고래 관련 전시 내용. 체험관의 돌고래 돌봄에 대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확실히 체험관 쪽에서도 그간 이어졌던 돌고래쇼의 '동물학대' 논란을 크게 의식한 것으로 여겨졌다. 동물보호단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수족관 돌고래쇼가 돌고래의 생명을 얼마나 갉아먹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 동안 제돌이, 춘삼이 등 그간 수족관에서 사육되던 돌고래가 야생으로 방류되는 사례가 늘자 아직 수족관에 머무르고 있는 돌고래를 풀어줘야 한다는 여론도 커졌다. 고래생태체험관 측은 마치 이에 항변이라도 하듯 우리도 돌고래를 위한 서식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도 필요하다는 점을 적극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돌고래쇼를 없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생태설명회'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공연은 적어도 예전보다는 그래도 돌고래를 덜 혹사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이 찝찝한 것은 여전했다. 바다를 자유롭게 오가는 고래를 보고 싶었던 것이지 수족관에서 헤엄친 채 길러지는 고래를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아무리 생태설명회라고 하더라도 결국 인간이 정한 시간에 사육사에 의해 어느 정도는 지시된 행동을 해야 하는 만큼 돌고래로서는 스트레스가 안 될 수가 없을 테다.


고래바다여행선에서 고래를 보지 못해 40% 할인된 가격(3천원)에 체험관에 들어갈 수 있었고 거기서 고래를 보긴 했지만, '우영우'로 인해 고래를 보러 온 이상 우영우가 싫어할 게 뻔한 방식으로 고래를 보려니 어딘가 답답했다. 차마 생태설명회 사진을 찍을 수 없던 이유였다. 생태설명회가 끝나고 몇몇 돌고래들이 수조 위쪽을 누비고 있었다. 배를 타고 먼 바다까지 다녀와 보니 더더욱 수조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수족관에서 최대한 돌고래 친화적으로 환경을 조성했고 자연 보호를 위해 나선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몸집이 큰 생물을 상대적으로 작은 수조에 가둬 놓고 키운다는 것 자체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동물원에 대한 회의감으로 생각이 뻗쳤다. 아무리 동물원에서 동물에게 적합한 사육 환경을 조성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 동물들을 좁은 사육장에 가둬 놓고 온갖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만든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으니...


울산 대암왕공원에서 찍은 동해 바다의 모습. 고래가 자유롭게 바다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돌고래복을 입고 고래 방류를 촉구하는 집회 중인 우영우. [사진=ENA 갈무리]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갇혀 있는 동물들을 야생으로 모두 풀어버리는 게 답이 될 수 있는지 묻는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실제 동물원은 멸종위기 종을 일시적으로 돌봄으로서 종 보호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고 한다. 또 야생에 무작정 푼다고 해서 이 고래들이 자유롭게 잘 살 수 있을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이기도 할 테다. 만에 하나 야생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실제 제돌이나 춘삼이 등도 야생에 방류되기 전에 바다쉼터 등에서 적응기간을 거치기도 했고. 당장 TV동물농장 이런 것만 봐도 그간 길러지던 동물을 야생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데에는 상당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방류 과정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동물이 어떤 식으로든 인간과 소통이 원활히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우리는 동물과 의사소통을 제한적으로밖에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인간이 동물의 의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이를 그냥 무시하는 경우는 아직도 많다. 그런 만큼 고래, 나아가 동물의 야생 방류와 관련해서도 결국 인간의 이해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얽힐 수밖에 없다. 그것이 겉보기에 동물 친화적인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그래도 인간이 적어도 이전보다는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동물을 위한 행위라면 동물이 중심이 돼야지 인간이 이를 자의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일일 테다. '우영우'를 계기로 이러한 논의가 다시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 같아서 나도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앞으로 다시 고래를 보러 고래문화특구를 방문하거나, 고래쇼를 보러 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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