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에서부터 xAI, 앤스로픽, 퍼플렉시티, 우버, 세일즈포스까지
지난 7월 7일부터 약 1주일 정도 샌프란시스코를 다녀오면서 여러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본사를 성지순례(?)하고 왔다. X(구 트위터) 등의 기업이 떠났지만 여전히 많은 IT 기업들이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특히 AI가 부상하며 샌프란시스코의 AI 기업들이 주목받으면서 다시 한번 IT 기업들의 핵심 거점으로 이름이 높아지는 모양새다. 사실 샌프란시스코를 간 가장 큰 목적은 이정후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지만, 마침 이곳에 있는 기업들을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즉흥적으로 한나절 정도를 IT기업 본사 투어에 투자해 봤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주요 IT 기업으로는 공유 모빌리티로 유명한 우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스트리밍 플랫폼인 트위치, 숙박 공유 서비스를 개척한 에어비앤비, 세계 최대 채용 플랫폼 링크드인 등이 있다. AI 기업 중에서는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를 비롯해 퍼플렉시티, 앤스로픽(클로드 개발사), 스케일AI(2019년 유니콘 기업으로 등극한 AI 스타트업) 등의 본사가 샌프란시스코에 밀집해 있다. 모두 최근 2년 사이 AI의 발전과 함께 그야말로 '급부상'한 기업들이다. 그렇게 샌프란시스코는 다시 한번 'IT와 AI의 도시'가 됐다.
아직 이들 대부분이 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니 빅테크 기업들처럼 사옥을 대규모로 조성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회사 앞까지 가도 정작 이곳에 이 기업이 있다는 표는 잘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곳에서 AI의 최신 기술들이 1분 1초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마된다는 생각을 하면, 보기에는 단순한 건물이고 빌딩임에도 그 의미가 달라 보인다. 현장에 직접 가서 의미를 나름대로 느껴 보는 것. 성지순례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니겠는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오픈AI가 장기간 입주했던 건물인 '파이오니어(PIONEER) 빌딩'이다. 오픈AI가 'AI'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업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이 빌딩이 다른 기업들과는 외따로 떨어진 위치에 덩그러니 있기 때문에 동선상 이곳부터 먼저 한번에 둘러보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샌프란시스코의 IT 기업들이 유니온스퀘어(Union square)-미션 스트리트(Mission st.) 일대-베이사이드(Bayside) 등으로 이어지는 중심가에 있는 반면 이 빌딩은 남쪽으로 내려가야 나오는 '미션 디스트릭트(Mission District)'에 있다. 화려한 벽화와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 등으로 유명한 나름대로의 명소지만 중심가에서는 살짝 떨어져 있어 이곳에서 걸어서 가기는 쉽지 않다.
'장기간 입주했던'이라고 과거형으로 표현한 이유는 이제 이곳에 더 이상 오픈AI는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의 'xAI'가 오픈AI를 대신해 이곳에 입주했고, 이 무렵 머스크 역시 본인의 X에서 이제 파이오니어 빌딩이 '내 빌딩(It's my building)'이라고 선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구글 지도를 봐도 오픈AI의 본사 위치가 이곳이 아닌 베이사이드 일대(우버 본사 근처)의 한 빌딩으로 찍힌다. 부끄럽지만 이곳을 다녀온 당시에는 이 사실을 몰랐고 블로그 글을 쓸 때쯤에야 알았다. 그래도 어찌 됐든 XAI가 입주했다는 점에서 이곳이 'AI의 핵심'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지만..
아무튼 처음 파이오니어 빌딩 앞에 섰을 때는 지도가 잘못 찍힌 줄 알았다. '빌딩'이라고 해서 고층 빌딩인 줄 알았는데 불과 3층 높이의 낮은 목조 건물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건물에 'PIONEER'라고 적힌 것 외에는 아무 특이사항이 없었고 입구도 생각보다 작았다. 오피스 빌딩이라기보다는 공장처럼 보였다. 여기가 맞나 싶어서 한 5분 정도 길거리를 서성였다. 창문이 다 닫혀 있어서 안을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찾아보니 분명히 이곳이 맞았다. 주 출입구로 보이는 쪽으로 가보니 가드 한 명이 서 있긴 했다.
오픈AI든 XAI든 그 무엇도 직접적으로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이 평범한 공장 같은 야트막한 건물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최첨단의 AI 연구가 24시간 365일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게 보니 건물 자체가 비범해 보였다. 약 1년 반 전에 실리콘밸리 특파원들이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오픈AI 사무실 탐방을 했다는데(당시에는 아직 오픈AI가 이곳에 있었다. 작년 여름~가을쯤에 본사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문득 이들이 부러워졌다. 비록 안을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전 세계 인류를 이끌 수도 있는 AI가 연구되는 건물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어쩌면 샘 올트먼이든 일론 머스크든 지금 이곳에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샘 올트먼과 일론 머스크의 오래된 악연을 생각해 보면 일론 머스크가 XAI의 새로운 사무실을 이곳으로 삼았다는 건 흥미롭다. 머스크는 2015년 오픈AI 설립 과정에 참여한 초기 멤버였지만 영리 회사로 탈바꿈하려는 오픈AI의 노선 변경에 반발해(결과적으로 오픈AI는 현시점에서도 '명목상으로는' 비영리 단체긴 하지만) 2018년 오픈AI 공동 의장직에서 물러났고, 2019년부터 오픈AI를 상대로 소송전을 펼치고 있다. 원래 오픈AI에 거액을 투자하려 했던 일론 머스크의 공언도 자연스럽게 무산됐다.
오픈AI는 적어도 2020년부터 파이오니어 빌딩에 입주했으니 아무리 짧아도 5년간은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곳에 입주한 동안 챗GPT가 떠오르면서 아는 사람들만 아는 기술 기업에서 전 세계를 뒤흔드는 메가톤급 기업으로 성장했으니 오픈AI에게도 의미가 깊은 장소일 테다. 그런 머스크 입장에서는 한때 오픈AI의 산실이었던 파이오니어 빌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게 얼마나 기분 째지는 일이겠는가. 머스크는 현재도 틈만 나면 트위터를 통해 오픈AI를 비방할 정도로 뿌리 깊은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 또 xAI의 '그록(Grok)'을 통해 초거대 AI 개발에도 뛰어들었으니 단순 개인적 원한을 넘어 업계 전반에서 경쟁 관계이기도 하고.
여담: 파이오니어 빌딩의 유래를 찾아보니 실제로 1902년에 건축된 아주 유서 깊은 건물이다. 그리고 1980년대 이전까지는 실제로 공장으로 활용됐다고 한다. 원래는 빌딩 건물이 두 개였는데 1985년 즈음 재건축이 되면서 한 건물로 합쳐졌다고 한다. 오픈AI 이전에도 금융 핀테크 기업인 스트라이프(Stripe)의 사무실이 있었다고 하니 적어도 2010년대 이후부터는 공장이 아닌 완연한 IT 건물이 됐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오픈AI가 이전한 사무실은 어디일까? 기존 미션디스트릭트보다는 좀 더 시내에서 접근하기 쉬운 '베이사이드' 지역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오라클 파크에서 다리를 건너 좀 더 내려가면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의 본사가 나오는데, 이곳 바로 길 건너 옆 건물에 입주해 있다. 현지 지역매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따르면 2023년 10월 입주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원래 우버의 사무실이었는데 오픈AI에 임대했다고. 다만 실제로 이곳에 오픈AI가 입주한 것은 2024년 상반기 이후로 보인다.
이곳은 파이오니어 빌딩보다 훨씬 평범하게 생긴 오피스 빌딩인데, 마찬가지로 오픈AI가 입주했다는 흔적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 로비에 살짝 들어가 봤는데 이곳에도 딱히 오픈AI가 입주했다는 티는 나지 않았다. 워낙 특징이 없어 사진을 찍지도 않았다. 해당 건물 사진은 구글 스트리트 뷰로 대체해 본다.
파이오니어 빌딩 인근에는 오픈AI가 입주했다는 또 다른 건물이 있다. 정문에 '1960'이라고 쓰인 건물인데, 이곳 역시 외관만 보면 마치 평범한 공장처럼 보인다. 흰색 단층 건물로 양 옆에 3층 빌딩이 하나씩 붙어 있는, 외관상 전혀 특별할 게 없는 곳이다. 마찬가지로 오픈AI가 입주했다는 티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주변 건물들도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라 삭막한 공장 지대 느낌이다. 다만 건물 천장 쪽의 모습이 언뜻 보였는데 천장이 온통 식물로 덮여 있었고 햇빛도 은은하게 들어오고 있어서 건물 내 분위기는 굉장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장으로 자연광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사무실이라. 몇몇 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샘 올트먼이 주로 출근하는 사무실은 이곳이라고 한다.
인근에는 오픈AI가 입주한 또 하나의 건물이 있다. 붉은 벽돌로 고풍스럽게 조성된 6층짜리 건물로,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곳에 있는 사무실에서 파이오니어 빌딩에 있는 사무실보다 더 많은 오픈AI 직원들이 근무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수백 명에 달하는 오픈AI의 전체 직원들을 파이오니어 빌딩에만 수용할 수는 없어 사무실을 인근에 몇 군데 더 둔 모양이었다. 다만 이곳 역시 모르고 보면 그냥 좀 멋있게 생긴 건물 정도였다. 파이오니어 빌딩과 샘 올트먼이 주로 출근한다는 사무실, 그리고 이 빌딩은 모두 도보로 갈 수 있을 정도로 인접해 있다. 어차피 IT기업 특성상 재택근무 비중도 꽤 높을 테니 큰 의미는 없겠지만...
바로 옆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제과점인 '타르틴(Tartine)'의 점포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3대 빵집'으로 꼽히고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방문해야 하는 곳이란다. 비록 이곳이 본점은 아니지만(본점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좀 더 걸어가야 나온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인근의 오픈AI 직원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션 디스트릭트가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서는 좀 떨어지기도 했고 그렇게 분위기가 좋은 동네는 아니라서(밤에는 치안이 급격이 안 좋아진다고 한다. 걷다 보니 문과 창문에 철창이 설치된 곳도 꽤 있어서 분위기를 실감케 했다) 오픈AI 직원들이 사무실 위치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데 그나마 이곳에서 힐링을 한단다. 회사 인근에 이런 좋은 카페가 있다면 나라도 큰 위안이 될 것 같다.
실제로 들어가 보니 빵집과 함께 카페가 크게 조성돼 있었다. 우드톤의 편안함이 강조됐고 은은히 풍기는 빵과 커피 향기는 그러한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주변에 IT기업들이 좀 있어서인지 노트북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손님들도 대부분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개발자 분위기를 깊게 풍기는 너드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나 역시 이곳에 앉아 아이스 라떼와 햄 크루아상을 먹으며 한껏 그 분위기를 느꼈다. 이따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하지만 않았으면 좀 더 많이 시켰을 텐데 좀 아쉽기도 하다. 그만큼 맛있다.
이렇게 오픈AI의 여러 사무실은 물론 오픈AI 직원들이 자주 찾는다는 카페까지 이리저리 다녀 봤다. 개인적으로 IT를 꽤 오랫동안 취재해 오기도 했고, 지금은 AI와 콘텐츠를 융합하는 업무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최첨단 AI와 엮인 장소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들고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전 세계에서 엄선된 인재들이 보다 진보된 AI를 연구하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위대한 현장에 내가 가 봤다는 생각 자체가 짜릿한 것 같다. 이것이 성지순례의 독특한 맛이 아닐까 싶다.
글이 길어져서 하편으로 넘긴다. 하편에서는 오픈AI 이외에 방문한 다른 샌프란시스코 AI, IT 기업들의 이야기를 풀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