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느낀 미국의 살인적 식당 물가
얼마 전 포스팅한 'AI·IT의 심장부, 샌프란시스코를 걷다(상)'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여름에 샌프란시스코에 여행을 다녀왔다. 야무지게 AI 기업들의 발자취를 훑어봤는데, 사실 샌프란시스코에 간 진짜 이유는 이거 때문은 아니었고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고 있는 이정후 선수의 경기를 보고 싶어서였다. 단순히 여행을 가고 싶다는 이유였다면 이곳 말고 다른 선택지들도 많았지만 난생 처음으로 MLB 경기를 직관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지를 정한 것이었다. 비싼 물가와 불안한 치안 등 여러 단점을 알고서도 말이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치안은 그렇다 쳐도, 내 생각보다 물가가 더욱 비쌌다. 특히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한국 돈으로 1만5000원에 육박할 정도로 식비가 비싸다는 점이었다. 음식 가격 자체도 비쌌지만, 팁에 캘리포니아주의 주세까지 붙으니 한 번 계산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팁은 기본이 음식 가격의 15~20%에 달하고, 주세는 9.5%이니 음식값의 거의 30%가 음식 외 가격으로 붙는 셈이다. 여기에 최근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그리면서 한국 관광객들 입장에선 더더욱 비싼 값을 치르게 된다. 정말로 이게 맞나? 싶을 정도...특히나 야구장 물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야구장 안은 비싼 물가의 총집합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오라클파크는 아름다운 구장으로 손꼽히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는 비싼 물가로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물론 한국도 야구장 내 물가는 비싼 편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란데 사이즈의 카페라떼가 11.25달러(약 1만5700원)나 하는 건 여기서나 가능할 것 같다. 한국에서 카페라떼를 1만5000원대에 파는 곳은 호텔 안에 있는 카페 정도려나? 심지어 이 정도면 골프장 그늘집에서 파는 가격보다 더 비쌀 것 같다.
자고로 야구 관람의 꽃은 야구장 음식이다. 한국 야구장에서는 으레 '치맥'을 먹으며 야구를 보는 게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할 정도이니. 이곳에서도 치킨을 먹고 싶었는데 야구장 내에서는 치킨을 찾기 어려워서 대체재로 피자를 골랐는데...가격이 14.23달러(약 2만원)나 한다. 한 판 가격이 아니라 한 조각 가격이다. 물론 피자 사이즈가 워낙 크다 보니 한 조각 크기도 제법 됐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조각에 2만원이라니...심지어 이거는 테이크아웃한 거라 팁이 별도로 안 붙었는데도 이 정도다. 맛은...그냥 매우 짠 페퍼로니 피자다. 여기가 한국이 아닌 미국임을 느낄 수 있는 강렬한 짭짤함이다.
한마디로 맥주를 찾을 수밖에 없는 맛인데 맥주도 큰 거 한 캔에 1만5000원에 육박한다. 게다가 만일 맥주를 팔러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판매원(Beer vendor라고 한다)에게 맥주를 구입하면 팁도 내야 한다!
그렇다고 야구장 밖으로 나가면 괜찮아지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5일차. 간만에 국물이 먹고 싶어, 숙소 근처의 캐주얼해 보이는 중국식 레스토랑을 찾아 콤보 완탕(새우, 고기 등이 고루 들어간 완탕)과 쿵파오 치킨, 맥주를 시켰다. 오랜만에 들이키는 뜨거운 국물에 감탄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가격이 32.5달러(약 4만4500원)나 된다. 당연하지만 팁(5.85달러)은 별도이니 5만원 넘게 태웠다고 보면 된다. 물론 메뉴를 2개 이상 시키긴 했는데 사실 완탕 하나만 시켰어도 11.2달러(약 1만5500원)나 하니 역시 비싸다. 이쯤 되니 그냥 배 좀 고프더라도 쿵파오 치킨을 시키지 말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관광지 '피어39'. 이곳은 클램차우더와 각종 게 요리 등 해산물 요리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다만 나는 해산물을 그리 즐기진 않아서 무난하게 피시앤칩스를 먹기로 했다. 흰살 생선을 튀긴 튀김 2조각과 감자튀김, 코울슬로 등이 나왔고 여기에 맥주를 따로 시켜 저녁으로 먹었다. 사실 그나마 이 식당에서는 저렴한 가격이었는데 34.73달러(약 4만8000원)라는 가격표를 보고서는(당연하지만 팁은 제외한 가격이다!) 진심으로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어39가 관광지라 물가가 더 비쌀 수 있다는 생각은 했는데 만일 여기서 해산물 한상을 푸짐하게 먹는다면 과연 얼마가 깨질까 하는 궁금증이 문득 들었다.
샌프란시스코 밖도 예외는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인근 마을인 소살리토에서 먹은 치즈버거다. 햄버거에 감자튀김과 음료수를 시켰고 가격은 24.69달러(3만3900원)였다. 역시나 비싸다. 더욱이 맥도날드 이런 곳과는 달리 세트 가격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이건 돈은 안 아까웠다. 미국에서 그간 먹은 햄버거 중 가장 맛있는 햄버거였고, 감자튀김 양도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가격이 조금만 자비로웠다면 정말로 괜찮았을 것 같다...
맥도날드는 그래도 싼 편 아니냐고 하는데 만만찮은 건 마찬가지다. 샌프란시스코 여행 첫 끼로 시내 맥도날드에 갔는데 빅맥세트 하나에 가격이 10.37달러(1만4260원)나 된다. 더 난감한 것은 한국보다 가격은 비싼데 정작 한국보다 맛이 없었다는 거였다. 한국 맥도날드보다 패티 육즙도 덜한 것 같고 야채도 뭔가 푸석푸석하다. 전반적으로 버거 상태가 안 좋아서 그냥 배를 채운다는 느낌으로 꾸역꾸역 먹었다. 한국에서는 맥런치 가격으로 빅맥세트를 먹으면 6300원이면 되는데..
그나마 저렴한 편인 음식 하나를 꼽자면...미국 뉴욕에서 푸드트럭으로 유명해진 '할랄가이즈'의 음식이 생각난다. 밥에 본인이 원하는 고기와 야채를 풍성하게 얹어서 소스를 뿌려 주는 방식인데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고 야채가 많아 느끼하지도 않다는 게 장점이다. 사진에 나오는 메뉴의 가격은 24.26달러(약 3만3300원)인데 내가 이거저거 많이 얹어서 가격이 올라간 거고 양을 좀 줄인다면 조금 더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 돈 1만5000원은 넘어갈듯. 근데 이게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그나마 싼 편이라고 한다. 푸드트럭 방식인 뉴욕과는 달리 샌프란시스코는 가게 형태로 체인점을 내서 좀 더 비싸다고...
하도 전체적인 식당 물가가 비싸다 보니 스타벅스가 싸게 느껴질 지경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기준 가격이 4달러를 좀 넘는데 만일 환율 문제가 아니었다면 한국(4700원)보다 저렴한 가격이 될 수도 있을 정도. 샌프란시스코를 돌아다녀 보면 알겠지만 이 정도 커피값이면 그래도 싸다고 느껴진다. 더욱이 군데군데 콘센트도 있어 충전도 가능하니 돈이 별로 없는 여행자 입장에선 최고의 장소다. 생각해 보면 한국도 한때 스타벅스가 비싼 카페의 대명사로 꼽혔다가 어느새 가격이 유사하거나 오히려 더 비싼 카페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면서 지금은 스타벅스가 오히려 대중적인 이미지가 돼 버렸지....
이러니 돈 없는 배낭여행자들은 미국 여행을 할 때 숙소에서 제공하는 무료 아침식사에 사활을 걸게 되고, 또 근처 마트에서 식재료들을 사 숙소 부엌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 일이 많다. 좀 수고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식당에서 팁과 세금까지 내고 밥을 사먹는 것보다는 훨씬 싸게 먹히니까...실제 내가 묵은 숙소에는 장기간 숙박하는 인도인들이 꽤 있었는데 이들이 카레를 주로 해 먹는 탓에 부엌 전체에 카레 냄새가 풍기는 일이 많았다. 나도 딱 하루 아침 겸 점심으로 브런치를 사 먹은 걸 제외하면 아침은 숙소에서 주는 무료 조식을 먹거나, 아니면 그냥 굶었다.
이처럼 한 끼 먹는데 1만5000원 이상은 기본으로 생각해야 하다 보니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하려면 확실히 돈을 좀 많이 쓸 생각을 하고 와야 한다. 나도 내가 처음 세웠던 계획보다 이런저런 이유로 돈이 훨씬 많이 깨져서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한동안 소비를 자제하며 숨죽이고 살았다.
미국의 물가가 전반적으로 비싸다는 게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직접 이를 체감해 보니 확실히 지갑이 실시간으로 얇아지는 게 느껴지며 부담으로 확 다가왔다. 왜 미국(특히 샌프란시스코)에 노숙자들이 이렇게 많은지 비싼 물가를 보면서 납득할 정도였다. 더욱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면적으로 전 세계에 관세 정책을 시행하면서, 상호관세 대상에 각종 식료품 등도 포함돼 미국 현지 물가가 더욱 올라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오죽하면 최근 들어 저소득층의 맥도날드 방문 비율이 줄고, 맥도날드를 찾는 고객들도 가격이 저렴한 편인 어린이 세트를 시키는 비중이 늘었다는 얘기가 나올까. 여기에 팁 비율도 슬금슬금 올라가는 추세이니(분명 몇년 전만 해도 표준이 15%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20%까지 올라갔더라) 정말 식당 물가 때문에 허리가 휜다는 표현이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한국도 몇 년 사이에 물가가 정말 많이 올라갔는데 이러다가 미국만큼이나 뛰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