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들은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습니다
카카오가 결국 백기를 들었습니다. '친구' 탭 업데이트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4분기 중 기존 방식으로 친구 탭을 되돌려놓겠다고 밝힌 겁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왜 즉시 시행하지 않고 미루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데요. 그만큼 업데이트에 대한 이용자들의 반감이 컸다는 의미일 겁니다. 카카오톡의 최근 구글 플레이 평점이 1.0이라는 점에서 모든 것이 설명되죠.
이번 업데이트는 카카오 입장에서는 커다란 시행착오입니다. 플랫폼사 관점에서 보면 경쟁 플랫폼으로 빠져나가는 이용자들을 잡고(이용자 수), 이들이 더욱 오랫동안 우리 플랫폼을 사용하도록(체류시간) 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업데이트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해당 지표들이 플랫폼의 주요 수익인 광고와 직결되기 때문이죠. 상당수 업데이트를 통한 기능 개선들은 이러한 전제를 깔고 갑니다. 그래서 카카오톡뿐만 아니라 네이버, 인스타그램, 쿠팡 등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플랫폼들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업데이트를 하죠. 물론 대외적인 명목은 '이용자 편의성 강화'지만요.
하지만 오히려 업데이트하기 전이 더 나았다며 악평을 받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정작 플랫폼 이용자들이 업데이트에 반발해 결과적으로 이용자 수와 체류시간이 줄어들게 된다면 업데이트를 한 의미가 퇴색되죠. 이러한 반발이 심하면 업데이트 전으로 기능을 되돌리는 '롤백'을 단행하거나, 혹은 업데이트 중 일부를 철회하거나 늦추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고는 합니다. 카카오톡도 이런 케이스죠.
그렇다면 플랫폼들이 이대로 업데이트를 포기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반발 당시에는 철회하더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점진적으로 애초 생각했던 방향으로 업데이트를 단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이러한 업데이트가 궁극적으로는 체류시간, 거래액, 매출 등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플랫폼의 주요 수입원이 광고라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글에서는 플랫폼들이 극심한 반발에 부딪혀 업데이트를 전부 혹은 일부 철회했지만, 결국은 이를 시행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왜 카카오가 이번 업데이트를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지 짚어봅니다.
인스타그램은 지난 2022년 숏폼(짧은 동영상) 서비스인 '릴스'를 내세우는 업데이트를 시도합니다. 사실상 경쟁 플랫폼인 '틱톡'을 벤치마킹한 형태였는데요. 우선 숏폼의 화면 비율을 화면 전체를 채우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로 바꾸고, 콘텐츠 추천은 AI 알고리즘에 의해 폭넓게 이뤄지도록 했습니다. 두 요소 모두 틱톡이 가진 특징이었죠. 틱톡이 중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급부상하면서 인스타그램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변화를 시도한 겁니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인스타그램을 친구들과 다양한 사진을 바탕으로 한 일상을 공유하는 SNS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릴스 중심의 업데이트로 인해 이용자들은 정작 사진이 잘 보이지 않고, 친구들의 콘텐츠보다는 전혀 모르는 사람의 콘텐츠가 더 많이 보인다며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킴 카다시안 등 연예인들도 이러한 비판에 가세했습니다. 미국의 한 사진작가가 "인스타그램을 지켜주세요"라며 업데이트에 반대하는 취지로 낸 청원에는 27만 5000명 이상이 서명했습니다. 결국 인스타그램은 업데이트를 전면 철회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인스타그램을 보면 2022년에 시도한 업데이트 중 상당수가 적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릴스의 화면은 이미 직사각형 모양으로 풀스크린이 됐고, 인스타그램 홈 피드에는 AI가 관심사 기반으로 추천한 콘텐츠가 무작위로 뜨고 있습니다(설정에서 끌 수는 있습니다). 또 기본 사진 비율을 정사각형에서 직사각형으로 바꾸고, 릴스 최대 길이도 3분까지 늘리는 업데이트도 시행했습니다. 다만 2022년과 달리 점진적으로 시간을 두고 업데이트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은 최근 다시 릴스를 부각하는 업데이트를 시도합니다. 인스타그램 첫 화면을 기존 '홈' 탭에서 릴스로 바꾸는 것이 골자죠. 다만 이번에는 희망하는 사람들만 '얼리액세스'를 통해 바뀐 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물론 언제든지 원상복구 가능하고요. 3년 전의 실패를 재현하지 않기 위해 신중한 접근법을 택했습니다. 바뀐 인스타그램 앱을 실행하면 가장 먼저 릴스가 표출되며 자동으로 동영상이 재생됩니다. 또 기존 홈 탭은 세 번째 탭으로, 검색 탭은 네 번째 탭으로 밀리는 등 변화가 제법 큽니다.
2022년 트위터는 이용자들의 피드를 '시간순'에서 '인기순'으로 바꾸는 업데이트를 시도합니다. 기존 트위터 메인 페이지는 이용자가 팔로잉한 사람들이 올린 트윗, 그리고 팔로잉한 사람들이 리트윗이나 하트(공감)를 누른 트윗이 시간 순서대로 노출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된 트윗을 우선적으로 보여주고, 만일 기존처럼 시간순으로 보고 싶으면 '최신' 탭을 별도로 누르도록 했습니다. 앞선 사례들처럼 관심사 기반의 알고리즘이 추천한 다양한 트위터 이용자들의 트윗이 먼저 보이도록 한 셈이죠.
그러나 이는 트위터 이용자들에게 '인기순' 탭을 강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저 역시 당시 트위터를 활발히 사용했었는데 이 업데이트에 다소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트위터는 내가 팔로잉한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아무 말 대잔치'를 하거나, 나름대로의 생각을 140자 이내의 '촌철살인'으로 펼치는 글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이 재미였는데, 갑자기 트윗 노출 방식이 바뀌니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팔로잉하지 않은 사람들의 트윗도 뜬금없이 많이 나타났고요. 이용자들의 반발이 커지자 결국 트위터는 업데이트를 철회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앞으로도 업데이트를 안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트위터는 이후 일론 머스크에게 인수돼 'X(엑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이후 여러 가지 변화를 거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결국 '추천' 탭과 '팔로우 중' 탭을 별도로 분리했습니다. 추천 탭에는 X에서 AI 알고리즘으로 추천되는 포스트(이제 '트윗'이란 단어는 없어졌습니다)를 보여주고, '팔로우 중'에는 이용자가 팔로잉한 사람들이 올린 포스트를 시간순으로 보여줍니다. 또 숏폼 등 영상 비중을 높인 것은 물론입니다. X로 바뀐 이후 워낙 여러 면에서 변화가 컸다 보니 생각보다 이 부분은 크게 부각되지는 않은 느낌이네요.
네이버는 지난 9월 블로그 서비스의 대대적인 개편을 발표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이용자들의 메인 화면에서 글이 추천되는 방식이었습니다. 기존에는 이웃들의 새 글을 최신순으로 나열했다면, 여기에 이웃들이 많이 본 글, 최근 방문했던 블로그의 인기 글, 나와 취향이 비슷한 블로거들이 많이 본 글 등을 더해 다양한 글을 AI 기반으로 추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또 '공감' 버튼을 다양한 종류로 확대하면서 마스코트 '블로그씨'를 내세웠고, 오랫동안 써 오던 블로그 로고도 바꿨습니다.
그러나 이용자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우선 공감 버튼이 기존 빈 하트에서 빨간색 하트로 바뀌었면서 이용자들이 해당 게시글에 공감을 이미 누른 것처럼 보인다며 헷갈린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UI 측면에서 전에 없던 불편이 생긴 것이죠. 공감은 블로그의 가장 기본적인 소통 방식이니만큼 이는 꽤 치명적이었습니다.
AI 기반 추천 시스템도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용자들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글이 피드에 너무 많이 노출된다고 여겼고, 또 광고성 포스팅이 기존보다 더욱 잦은 빈도로 표출된다고 의심했습니다. 기존처럼 이웃들의 새 글을 우선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설정을 직접 바꿔 줘야 합니다.
사실 AI 추천은 어느 정도 이용자 반발을 각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용자 입장에서 이웃을 맺어 그 사람의 글을 우선적으로 보는 것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AI 추천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면밀한 추천 알고리즘으로 이용자의 관심사를 더욱 잘 반영해 표출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탓인지 이용자들은 도대체 왜 내 피드에 별로 관심 없는 콘텐츠가 올라오냐는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당초 의도는 이용자의 관심사에 가까운 글을 AI를 토대로 다양하게 추천하는 것이었겠지만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네이버는 이 중 공감 버튼에 대해서는 '롤백'을 단행했습니다. 공감을 누르지 않은 게시글에는 다시 빈 하트가 표시되도록 한 것이죠. 다만 개편의 핵심인 AI 추천글 노출과 관련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를 다시 되돌릴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데, 이번 카카오톡 업데이트 건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같은 사례를 보면서 이번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되짚어 보면, 카카오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업데이트를 밀고 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사실 카카오의 이번 업데이트 자체가 그간의 행보를 생각하면 정말 의외였습니다. 원래 카카오는 카카오톡 내 기능 추가·삭제에 대해 매우 신중했습니다. 지난 2023년 '오픈채팅'을 별도의 탭으로 분리한 업데이트가 가장 큰 변화였을 정도였습니다. 웬만한 새로운 기능들은 정식 도입 전 '실험실' 메뉴에서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카카오도 위와 같이 갑작스러운 대규모 업데이트 후 역풍을 맞은 사례를 잘 알 것입니다.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에서 인용한 모바일인덱스의 자료를 보면 카카오가 업데이트에 나선 이유가 설명이 됩니다. 지난달 23일 업데이트 이후 카카오톡의 이용자 평균 체류시간은 조금씩 늘어났고, 지난달 25일에는 32.3분까지 증가했습니다. 트렌드라이트에 따르면 카카오톡의 일 평균 체류시간이 올해 32분을 넘긴 것은 개학일인 3월 4일과 어버이날인 5월 8일뿐이었다고 합니다. 욕은 먹었지만 어쨌든 업데이트에 나선 이유가 결과로 입증된 셈입니다.
카카오가 이미 수년 전부터 카톡을 단순한 대화 도구를 넘어 다양한 상호작용의 장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는 점은 이번 업데이트의 개연성을 더욱 높이는 부분입니다. 앞서 카카오는 오픈채팅 확대를 통해 관심사가 같은 ‘비지인’과의 접점을 넓히고, 선물하기·프로필 꾸미기 기능을 강화해 지인들 간의 교류를 더 활발하게 만들었습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유사한 ‘펑’ 기능 역시 같은 맥락이죠. 저는 이번 '친구' 탭 업데이트도 그 연장선상으로 보는데, 카카오가 성장을 위한 돌파구 마련을 위해 해당 전략을 확고히 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용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잠시 물러났을지언정 이 방향성 자체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구체적인 방식과 속도에 변화를 줄 수는 있겠지만요.
이런 가운데 카카오톡은 또 하나의 큰 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속 챗GPT'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AI 적용 확대입니다. AI를 잘 적용하면 분명 편리함 증대와 광고 등의 매출 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겠지만, 잘못 적용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카카오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과연 해당 업데이트는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