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막상 LG폰이 없어진다고생각하니...삼성행보 우려돼
24분기 연속 적자.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인 MC사업본부가 단 꼬리표다. 마지막 분기 흑자가 2015년 1분기이니 6년 연속 적자에 적자를 거듭했다. 이 기간 동안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은 매 분기 2~3천억원 선을 까먹어왔다. 연간으로 따지면 많게는 1조원이 날아간 셈이다.
누적된 적자에도 스마트폰 사업을 놓지 않던 LG전자가 지난 5일 공식적으로 스마트폰 사업부 철수를 선언했다. 스마트폰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래도 LG전자 스마트폰만의 나름의 매력이 있어 선택의 폭을 어느 정도 넓혀 줬는데 이제 이를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었다. 반면 시장은 환호했다. 매년 많게는 1조원을 까먹는 사업을 접는다고 하니 사업 철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업 밸류는 더욱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실제로 LG폰 철수설이 처음 돌던 1~2월 즈음과 비교하면 LG전자 주가가 많이 올랐다.
나름대로 지난 2년여 동안 스마트폰 업계를 관심 있게 지켜본지라 내게도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소식이었다. 안타까운 소식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동시에 LG폰이 결국 사업 철수라는 결론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가닥이 잡힌다. 세간에서는 2000년대 후반 남X 부사장의 경영 판단 미스로 스마트폰 시장 진입 자체가 늦었다는 점을 결정적 이유로 꼽지만 그저 그런 과거만을 탓하기에는 최근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의 아쉬운 점도 제법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LG는 삼성을 이기지 못했다. 마지막에 세계 최초의 '롤러블폰'을 낼 수도 있다고 예고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삼성을 이기지 못하며 끝내 출시에 이르지 못했다.
원래 삼성 갤럭시 시리즈를 주 스마트폰으로 쓰고 있지만 업무상 LG전자 스마트폰을 며칠 동안 써 본 적이 있다. 국내에 출시된 마지막 G시리즈인 'LG G8'과 LG전자 '나름'의 야심작인 'LG 벨벳'이 그것이었다. 삼성폰과 LG폰의 사용성이 묘하게 다르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안드로이드라서 익숙해지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메시지를 보내거나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등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기기를 잡는 느낌 역시 나쁘지 않았다. 사용에 큰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눈에 띄는 단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두 스마트폰을 쓰면서 공통적으로 든 의문이 있다. '이걸 굳이 내 돈을 들여, 발품을 팔아 직접 살까?' 쓰면서 LG폰도 쓸만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이걸 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LG G8은 카메라·배터리·디스플레이 등 스마트폰의 '기본'으로 꼽히는 요소들이 두루 잘 갖춰졌다는 느낌을 받았고 LG 벨벳도 한 세대 낮은 AP를 장착하기는 했지만 성능에는 별 영향이 없었고 예쁘게 나온 디자인을 감안하면 나름 '패션 아이템'으로는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좋게 생각한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하라고 하면 주저하게 되더라.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국 비교 대상이 삼성전자 스마트폰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밀히 말해 G8과 벨벳이 가진 하드웨어적 장점은 삼성전자 갤럭시S시리즈와 A시리즈 중 상위 모델들 역시 가지고 있는 요소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자신들의 폰을 차별화하는 데 성공한 반면 LG전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G8이 나왔을 즈음 삼성전자는 갤럭시S시리즈 사상 최초의 저가 모델인 '갤럭시S10e'를 출시하고 이를 '손이 작은 여성들이 쓰기 좋은 제품'으로 포지셔닝했다. 이 같은 마케팅 전략은 먹혀들었고 실제로 갤럭시S10e는 젊은 여성들의 구매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와 비교하면 G8은 딱히 부각할 요소가 없다. 전작인 G7 대비 하드웨어가 약간 좋아지기는 했지만 그뿐이다. 에어모션이니 정맥인식이니 야심차게 도입한 기능들은 정작 실생활에선 거의 쓸 일이 없어 사장됐다.
'벨벳'도 마찬가지다. LG전자는 '매스 프리미엄'을 표방하며 기존 플래그십 스마트폰보다 출고가를 약간 낮춰 '벨벳'을 내놨다. 디자인적 요소를 강조했지만 대신 AP 성능 등은 약간 낮췄다. 그래서인지 갤럭시S시리즈보다는 갤럭시A51, 71 등 삼성전자의 중고가 스마트폰과 많이 비교됐다. 출시 전부터 그렇게 강조하던 디자인적 면에선 호평을 받았지만 9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 대비 스펙은 삼성전자 제품과 비교하면 너무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비슷한 스펙의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아무리 비싸도 60만원대면 살 수 있었기 때문에...'벨벳'을 실사용해본 입장에서 사용성이 결코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갤럭시A시리즈와 비교한다면 솔직히 나라도 갤럭시A시리즈의 손을 들어줄 것 같았다.
두 스마트폰 모두 나름대로 LG 내부에서는 기대가 작지 않았다고 들었다. 특히 'LG 벨벳'은 새로운 스마트폰 사업 수장이 부임한 이후 첫 제품이었기 때문에 진지하게 흥행을 기대하는 시선도 제법 있었다고 알고 있다. 결과적으로 두 제품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LG G8은 G시리즈 중 최악의 판매량을 받아 들었고 LG 벨벳 역시 재고가 너무 많이 남아 나중에는 신도림, 강변 등에서 소위 '차비'까지 받아가며 살 수 있는 폰으로 전락했다고 들었다.
LG폰이 잘 팔리기 위해선 결국 비슷한 시기 출시된 삼성폰에 비해 확실한 비교 우위를 점해야 한다. 한국 스마트폰 시장은 삼성, LG, 애플 '3파전'인 시장인데 애플 '아이폰' 이용자들이 계속 아이폰을 쓰는 습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LG전자 입장에서는 삼성전자를 쓰던 고객을 끌어들여야 흥행을 바라보는 게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LG는 수년째 여기에 실패해 온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24분기 연속 적자라는 현실로 이어졌다.
LG 스마트폰은 최근 들어 나름 파격적인 시도를 여러 번 했다. '벨벳'에 디자인적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 같은 맥락이었고, V 시리즈에 듀얼 스크린을 '전격' 도입한 이유도 결국 새로운 사용성으로 삼성과는 다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발버둥이 아니었나 싶다. G시리즈에 장착된 에어모션과 정맥인식도 마찬가지일 거고, 심지어 '윙'처럼 멀쩡한 화면 하나를 90도로 틀어 보기도 했다...이렇듯 뭔가 특별한 게 있어야 삼성을 제압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자체는 이해하지만 과연 이게 옳은 방식인가 묻는다면 나라도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발상들이었다. 가뜩이나 LG폰은 지난 몇 년 동안 브랜드 이미지가 너무 안 좋아져서 삼성을 제치려면 더욱 날카로운 무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그간 가까이서 지켜본 LG전자 스마트폰 개발자들은 나름대로 어떤 기능이 스마트폰에 필요할지, 앞으로 LG전자 스마트폰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꽤나 그럴듯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LG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빠진 후에도 이들은 분명히 시장에 통하는 스마트폰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럼에도 결국 이들의 피와 땀을 시장에서는 끝내 알아주지 않았다. 이제 이들은 사후관리 등을 위한 인력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다른 사업부로의 발령을 앞둔 상황이다.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니 시장의 평가와는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참 입맛이 쓰다.
'삼국지'가 재밌는 이유 중 하나는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라는 세 개의 국가가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만일 '삼국지'가 단순히 조조의 위나라와 유비의 촉나라 간의 맞대결을 다루는 이야기였다면 과연 이렇게 흥미로운 스토리가 전개됐을까 싶기도 하다. 한국 스마트폰 시장도 마찬가지다. 삼성과 애플에 더해 LG가 있었기에 그래도 조금은 시장에 '변수'라는 것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시장조사업체들의 자료를 보면 LG전자 스마트폰이 국내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10~15% 정도다. 애플이 15~20%이고 나머지 65~70% 정도를 삼성전자가 쓸어 담는 양상이다. 주변에 LG폰 이용자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여도 점유율로만 따지면 가끔은 애플을 앞설 때도 있다. 주로 아이폰 비수기인 2분기 즈음에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LG폰을 찾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다. 상당수가 중저가폰이라서 그렇지..
아이폰이 오로지 프리미엄 라인업으로만 이뤄졌다는 걸 감안하면 이제 한국의 중저가폰 시장은 사실상 삼성전자가 싹쓸이한다는 얘기다. 즉 그간 LG 중저가폰을 잘 써 왔던 사람들은 앞으로 폰을 바꿀 때 삼성전자 폰으로 바꿀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인데, 이는 삼성전자 점유율이 1~2년 후에는 80% 이상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국내에서 샤오미, 화웨이 등 중국 스마트폰에 대한 이미지가 극히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현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가격이 당장 '독점'을 무기로 올라갈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삼성전자는 이미 국내 이통사들에 비해 막강한 국내 점유율을 무기로 가격 협상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또 프리미엄폰의 경우 존재감이 별로 없다시피 한 LG보다는 애플이 훨씬 더 위협적인 경쟁자이기 때문에 무작정 가격 책정을 세게 하기기는 어렵다고 본다. 중저가폰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 중저가폰은 대부분 해외에서도 폭넓게 출시되기 때문에 해외 가격에 국내 가격도 연동될 수밖에 없는데, 해외에는 여전히 중국의 중저가 스마트폰들이 높은 가격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여전히 삼성 입장에서는 눈치를 살펴야 할 부분이 여럿 남아 있는 셈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향후 국내에 판매하는 중저가폰 비중을 줄일 수는 있다고 본다. 이전까지는 LG와의 점유율 유지 경쟁을 위해서라도 다양한 중저가폰 라인업을 국내에 판매해 왔는데 이제는 마땅한 적수가 없기에 정말 삼성 입장에서 이익이 된다 싶은 제품만 추려서 출시하는 경향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국내 중저가폰 시장은 이제 삼성이 독점하고 있기에 별 상관이 없기도 하고, 게다가 삼성은 애초에 한국 시장을 프리미엄 시장으로 여기고 있기에 중저가폰보다는 고가폰을 더 많이 팔고 싶어 한다. 삼성이 5G폰이 나오자마자 다른 지역에서는 멀쩡히 판매되는 S시리즈와 노트 시리즈의 LTE(4G) 버전을 한국에서는 출시조차 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어차피 애플과 삼성은 앞으로도 쭉 겨룰 수밖에 없는 라이벌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의 국내 스마트폰 시장 공략에 있어 보다 다양한 전략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래도 LG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사실상 삼성과 애플의 양강 구도, 심지어 일부 시장에서는 삼성의 독점 구도가 돼 버린 상황에서 과연 삼성이 국내 소비자들을 '호갱'으로 보는 제품 출시 전략을 취하지 않을지 조금은 우려되기도 한다. 뭐 당장은 눈치를 보겠지만, 말이다.
아직도 업계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소비자로서 LG 스마트폰의 사업 철수가 더욱더 진한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