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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피 Sep 24. 2018

평온을 품은 마을 바리차라에서 보낸 하루

외지인의 도시 산힐, 휴식의 공간 바리차라에서의 반나절 


여기 살면 화날 일도 없겠다.



“여기 맞아?”


호스텔 직원이 바리차라로 갈 수 있는 버스 정류장이라며 지도에 표시해 준 검은 점은 분명 여기가 맞다. 파리만 날리는 정육점과 지키는 이 하나 없는 신발가게뿐인 사거리. 아무리 봐도 버스가 설 곳은 아니라는 느낌에 도로 이름을 두 번 세 번 확인하며 길가를 서성이던 때였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우리를 흘끗 보고는 대뜸,


“바리차라?”


하고 물었다.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니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길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본 것도 아닌데 우리가 바리차라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단 사실을 어떻게 안 것인지. 바리차라라고 중얼거리기라도 했던가? 어쨌거나, 할아버지를 따라 십분 정도 쭉 더 걸어가니 작은 버스 터미널이 보였다.


고맙다 인사하는 우리에게 할아버지는 씩 웃어보이더니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언제나 별 일 아니란 듯 다가와 우리에게는 별 일인 친절을 베푼다. 할아버지도 그랬다. 


“바리차라 세 명이요.” 



아름답기로 콜롬비아에서 비야 데 레이바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곳. 토착민 구아네 부족의 언어 ‘Barichala’에서 딴 이름처럼, 동네의 풍경은 ‘휴식의 공간’ 그 자체였다. 햇살이 내리쬐는 광장 한가운데, 시원하게 물이 넘쳐 흐르는 분수대 주변으로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1705년 처음 발견된 바리차라는, 여러 번의 복원 작업을 거쳐 지금까지도 18세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높은 건물 하나 없는 골목 골목에는 빨간 기와 지붕에 흰 벽, 초록 철제 대문의 단층집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고, 대문 앞에 놓인 화단들은 평화로운 분위기를 더했다.


날씨가 썩 마음에 드는지, 볕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그르렁거리며 낮잠을 자는 고양이가 많은 그런 동네였다. 



맑고 파란 하늘에 들뜬 기분으로 산책을 시작했지만 내리쬐는 뙤약볕과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길바닥에 주저앉혔다. 시원한 음료 생각이 간절했다. 


아담한 카페들이 즐비한 골목에서 여기로 갈까, 저기로 갈까 한참을 고민하던 우리는 결국 제 풀에 지쳐 눈 앞의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테이블이 딱 두 개뿐인, 카페라기보다는 가정집 같은 그곳은 ‘사랑스럽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햇볕이 내리는 반투명한 유리 천장 아래로 부엌 한가운데에 커다란 아일랜드 테이블이 보였다. 주황색, 노란색 타일로 모자이크된 테이블 위에는 크기도 색깔도 제각각인 소스 병과 여러 가지 과일들이 가득했다. 흰 벽을 따라 내부를 한바퀴 빙 둘러보면 눈이 가는 곳마다 꽃과 식물이 있어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2층 복도에 걸린 커다란 해먹도 눈에 띄었다.



아일랜드 테이블 위에서는 엄마와 딸의 점심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눈인사를 건넨 후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 세 병을 주문했다.


갑자기 나타난 낯선 손님들이 신기한듯 수줍은 눈길로 지켜보던 여자아이는, 엄마가 건넨 맥주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다. 몇 살이냐는 질문에 손가락으로 일과 이를 만들어 보이던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 노란 소스의 음식을 그릇에 옮겨 담았다.


우리가 맥주를 마시며 쉬는 동안, 모녀는 한쪽 테이블에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둘만의 늦은 점심 식사를 가졌다. 식사를 마치고 아주머니는 동네 사람들과 한바탕 수다를 나눴고 아이는 구석의 쇼파에 앉아 조용히 동화책을 읽었다.


테이블 위의 맥주 병이 다 비어갈 때쯤 모녀는 나갈 채비를 마치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만 나가달라는 말을 하려나 싶어 몸을 일으키는 우리에게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잠깐 나갔다 올 건데 한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그 때까지 있을 거면 나중에 계산하고, 그 전에 갈 거면 여기 테이블에 2만 페소 두고 가면 돼요.”


처음 본 손님에게 가게를 맡기고 외출하는 거, 정말 괜찮은 건가. 허둥지둥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건네자 아주머니는 편하게 더 있다 가라는 말을 남기고 금방 자리를 떠났다. 아이도 엄마를 뒤따라 손을 흔들며 뛰어 나갔다. 그들을 다시 만난 건, 산힐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면서 였다. 둘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재잘재잘 얘기하며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살면 화날 일이 없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년 중  대부분이 맑고 쾌청한 날씨,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 아기자기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가끔은 엄마와 나들이를 가는 그런 삶. 가식 없는 친절이, 자연스러운 여유와 어색하지 않은 배려가, 이 먼 곳까지 와서야 알게 된 것들이 그 아이의 말간 눈동자 속에는 이미 다 들어있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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