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때는 그걸 몰랐을까
사람이 살면서 후회가 없을 수야 없겠지만, 일과 커리어 개발 측면에서 나는 그야말로 후회투성이다.
누구는 경력과 역량개발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데, 돌이켜 보면 나는 제대로 한 것도 없고, 중구난방, 지금 이렇게 사회 생활하면서 밥먹고 사는 게 용하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멘토링이나 진로 개발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커리어가 뒤죽박죽이 된 이유를 정리해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듯하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시절, 서울에 괜찮다 싶은 대학을 다니면 4학년 1학기부터 대기업 대규모 공채 리쿠르팅 대상이 되었다. 운이 좋으면 4학년 1학기에 취직이 되어서 4학년 2학기는 놀고 먹으며 보내고, 그렇지 않더라도 졸업에 가까워 지면, 학점을 웬만큼 개판치지 않고서야 취직을 했다.
스펙쌓고, 방학 때마다 인턴하고, 교환학생은 모두가 다녀와야 하는 요즘의 서바이벌 캠퍼스와 달리, 그때는 대학생활을 '캠퍼스의 낭만'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쓰니까 대학교 때 놀고 먹은 것같지만, 부모님한테 도움을 못받은 나의 대학생활은 '방학=과외'였다.
어쨌든, 나와 나의 부모님은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 세상에 당연한게 어딨다고 - 대기업에 들어가서 뼈를 묻을 각오로 열심히 일해서 무사히 임원으로 퇴직해 노후를 편하게 사는 것이 목표였다. 실제로 그 때까지만해도 충성을 다한다는 것이 조직이 바라는 인재상에서 으뜸이었다. 나는 내가 조직에서 꽤 잘 나가는 멋있는 커리어 우먼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우리가 대입을 준비할 때, 원하는 대학만 들어가면 앞길이 창창할 줄 알지만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다르다.
나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진득하니 하나를 오랫동안 붙들고 하는 성격이 못된다. 그나마 좋아하는 건 오래가는데, 까다롭긴 더럽게 까다롭고, 재미없는 건 하기 싫어 미친다. 지금은 하기 싫은 것도 견뎌야할 이유가 있으면 그 시간을 버텨내지만 어렸을 땐 벗어날 방법을 어떻게든 찾았다.
그런 성격인데, 대학을 성적에 맞춰서, 성격에 맞지도 않는 과에 진학하는 바람에 많이 방황했고, 4년 간 학점 따느라 죽을똥 살똥 버텼다. 이런 시행착오를 하고서도 나는 내가 대기업에 취직하고 나면 진득하니 한 자리에서 잘 해내리라 생각했었던건가. 아마도 조직생활이 어떤 것인지 몰랐고 모두가 택하는 선택지 외에 다른 것을 고민해 본 적 없이 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과 5년 후, 10년 후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지 못한 채 그냥, '회사'를 택했다. '안정'과 '정년퇴직'을 담보로 말이다.
그러나 대기업은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수십명 혹은 수백명의 신입사원을 빈자리에 넣고, 특별히 뛰어난 재주가 없다면 - 있다해도 조직의 필요가 먼저다 - 거기서 필요한 일들을 배우고 적응시켜 구성원으로 만들면 그뿐이다. 운이 좋아 그 일이 나의 미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한다면 좋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아주 소수의 기업에서나 필요한 기술을 다루는 나의 직군은 5년간 일을 해도 이직이나 커리어 개발에 특별한 도움이 될 것 없었고, 쉬프트 근무를 필수로 해야했던 직군인 탓에 내가 다른 부서로 이동을 하려면 내 자리를 채울 사람을 찾아놓고서야 가능했다. 5년의 시간 중에 3년이 지난 시기부터 나는 직군을 옮기기 위해, 대학만 졸업하면 끝날 줄 알았던 공부를 퇴근 후에 해야했고, 내부 Jop Posting을 통해 조금은 General한 직군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원가회계팀인 줄 알았으나 사실상 대외협력팀 역할이 컸던 팀으로 이동했다.
대기업, 그것도 인원이 아주 많고 일이 세분화 되어있는 조직에서 우리는 자칫 자신의 상태를 착각할 수 있다. 사원에서 대리가 되고 다시 과장으로 승진을 하면서 내가 일을 훌륭하게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34살에 대기업에서 과장으로 퇴직하고 벤처기업으로 이직하면서 갑자기 이사라는 그럴 듯한 명함을 얻고 조직의 총괄을 하게 되었다. 내가 과장으로 퇴직할 때 나는 팀의 막내였다. 이전 직장까지 포함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막내로만 생활했던 상태였다. 책임지고 진행한 프로젝트도 있었고, 누구보다 주도적으로 일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하지만 막내에게 주어지는 일이 큰 그림을 그리고 구성원을 관리하는 일일리 없다. 특히나 내가 속했던 조직은 공룡조직으로 일이 아주 세분화 되어있었으니, 나는 디테일을 보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직장에서 원하는 바는 대내외 커뮤니케이션이었고, 개발PM이었고, 작은 회사들이 그러하듯 일당백, 닥치는 모든 것들을 해야했다. 내가 얼마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 무능력한 인간인지 깨닫는 아득하고 처절한 시간이었다. 정말 어려운 일은 내 손으로 처리한 일보다 협력사들 손을 빌어서 처리한 일이 많았다는 걸 알았고, 조직에서 바라는 인재상이 되어있었다는 걸 알았다.
큰 조직에서 바라는 인재상은 너무 튀지 않고, 하라는 것을 열심히 하며 조직이 가는 방향에 순응하는, 순종 충성형 정도다. 내가 원래 그런 인간이었나 돌아보면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일벌리지 말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조용히 살자고 마음먹고 또 벌리고, 그래서 부대끼기를 반복하다 조금씩 깎여 둥글둥글해지고 있었던 것같다. 그리고 일에 더 욕심을 내기보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조직의 일원으로 편하게 지내는 방법들을 익혔다. 욕듣지 않고, 튀지 않고,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에 그렇게 적응해갔다.
대기업 과장명함을 내밀거나 작은 벤처기업이지만 30대 중반에 이사 직함 명함을 내밀던 시절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 대부분 상대가 먼저
"좋은 회사에서 일하시네요"
"젊은 이사님이시네요"
뭐 이런 리액션이니까.
그러다가 다니던 회사가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대표 다음으로 연봉이 많았던 내가 먼저 실업자가 되었다. 직장인으로 살던 11년이 끝나고 백수가 된 것이다. 그때 알게 되었다. 계급장 때고 난 내가 얼마나 구구절절한 인간인지를...
명함이 없이 나를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참 어려웠다. 백수아줌마? 전업주부?
자신감도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우낀 일이지만 36살의 나이에 다시 취직이라는 걸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나는 그 이후 스타트업을 두 번 말아 먹고 42살에 다시 취직을 했다.)
내가 그 간 가졌다, 안다, 배웠다 생각했던 것들이 참 얄팍하고 내가 그동안 생각한 나와 세상이 바라보는 나는 괴리가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왜 몰랐을까.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이 되었어야 한다는 걸.
그 조직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을 만들어 갔어야 한다는 걸.
조금 더 담백하게 일에 몰입하는 방식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걸 그 땐 왜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