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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령

삶을 따뜻하게 담는 창

by 청두

2022년 어느 날, 김영인 감독과 을지로의 예술가가들이 작업하는 모습과 공간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영상에 그들이 작업할 때 듣는 음악을 입혀 유튜브에 업로드하기로 했습니다. 기록과 공유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이후 김 감독은 사진 찍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며 동료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사진 감독이었습니다. 네팔과 몽골에서 험난하고 즐거운 작업을 함께한 두 분은 동고동락한 동지 냄새가 풀풀 풍겼습니다. 플레이리스트 특성상 음원 저작권 문제로 당장의 이익을 만들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 사진 감독에겐 꽤나 즐거운 일처럼 보였습니다. 사진 찍히는 것을 익숙지 않아 하는 작가들도 감독 앞에서 금세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촬영이 끝나고 며칠 후. 예외 없이 사진엔 스쳐 지나갔던 작가들의 따뜻한 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빛이 마법을 부리나?' '카메라가 엄청 비싼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회, 두회 촬영을 거듭하면서 살면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이분한테 사진 찍혀보고 싶다.' 그리고 궁금해졌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 바라보게 되었을까. 그렇게 궁금증을 안고 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사진작가 '정채령'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목차

정채령 이야기

작업 이야기

공간 이야기

내일 이야기




정채령 작가와 아이들 ⓒ정채령




정채령 이야기




안녕하세요 작가님. 오늘은 왠지 재미있고 따뜻한 인터뷰가 될 것 같습니다. 독자분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네, 안녕하세요.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 촬영을 하는 정채령입니다. 전엔 어떤 사진을 찍는지 정의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최근 들어 정리를 하게 되었어요.


스스로 정의하셨다 하니 많은 고민과 결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뒤에 조금 더 나눠보기로 하고 작가님께서 어떻게 사진을 시작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여쭤볼게요.



오늘날 사진이 굉장히 일상적인 매체가 되었어요. 우리 세대는 청소년기 때부터 그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고요. 사진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지금까지 해오게 된 과정에 어떤 이야기가 쌓였을지 궁금해요.


소소하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할 때가 있었어요. 그때 내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을 해보니 세 가지가 있더라고요. ‘심리 상담’, ‘군인’ 그리고 ‘사진’이었어요.


군인은 키가 작아서 안 됐고, 심리상담은 수학을 잘해야 해서... 중학교 때부터 집에 D-slr 카메라가 있었어요. 제가 항상 체육대회나 소풍이나 대학 탐방 때나 제가 사진기를 가지고 가서 친구들 다 찍어주었고, 친구들은 사진을 보러 왔었어요. 퍼가기도 하고 ‘~♡’를 남겨주기도 했어요. 사진이 소통의 창구가 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때도 인물에 관심이 있어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웃고 있는 표정을 담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었어요. 그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재미있는 포인트예요. 질문이 많아지는데, 하나씩 해볼게요.


‘심리 상담’과 ‘사진’은 모두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어요. 그런데 ‘군인’이라는 영역은 좀 다르게 느껴져요. 계기가 있었을까요?


제가 중학교 때 마라톤 1등을 한 적이 있었어요. 맨날 뛰어다니고, 체력도 좋았어요. 체력장에서도 A+을 받아서 자신이 생겼어요. 제복 입은 모습들이 멋져 보였고. 그런데 사실, 그게 다였던 것 같아요. 주변에 직업 군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빠르게 포기할 수 있었어요.


심리 상담은 단순히 수학 때문에 접으셨던 거였어요?


공부를 많이 해야 된다는 말에 자연스럽게 ‘심리상담’과 ‘사진’ 중 ‘사진’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친구들이 항상 저에게 고민 상담을 하곤 했었어요. 타고난 기질이 좀 있는 것 같아요. 뭔가 해결책을 잘 이야기해 준다기보다 남들의 분위기를 잘 읽는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때문에 단순히 ‘심리 상담’을 전공한다면 남들의 고민거리를 듣고 해결방법을 찾아주는 일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고 2 때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지난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무거운 장비들을 즐겁게 가지고 다니는 채령의 모습들이 연결되는 것 같아요. 더 이해가 되어요.



정채령 작가의 무거운 장비들 ⓒ정채령




D-Slr은 어떻게 다루게 되신 거예요?


집에 있었어요. 어머니께서 가족들 찍으려고 샀던 거였어요. 덕분에 중학교 때부터 D-slr을 다루게 되었어요.


친구들을 좋아했고, D-slr을 다루었으면 친구들의 재미난 표정, 찰나의 순간들을 담는 과정을 즐거워했을 채령의 모습을 떠올라요. 과정에 ‘셔터스피드’나 ‘조리개’를 조절하면서 카메라 다루는 것인 능숙해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맞아요. 그런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찍는 것만 좋아하고 보정하는 걸 안 좋아했어요. 하루는 친구가 “보정해서 올려줄 거지?”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어요. 포토샵은 있었지만 다뤄본 적이 없어서 사진 옆에다 별을 붙여서 올렸어요. 그게 보정이라고 생각했죠. 친구가 원했던 보정은 얼굴을 깎고, 눈을 키우고 하는 거였지만 그땐 몰랐죠. 얼마나 웃겼을까요.(웃음)


그때부터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민을 잘 들어줬다는 점이 말하는 사람을 되게 편하게 해 줬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있는 그대로 봐주고 이야기를 들어줬던 것들이 변화가 많고, 또래가 너무 중요했던 시기에 친구들에게도 힘이 되어주는 일들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작가님 특유의 타인을 환영하는 태도에 대해서 궁금해요. 어릴 적 어머니께서 사놓으신 카메라를 통해 사진을 알게 되었다면, 가족들이 준 정서적인 영향이 지금의 모습을 만드는데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는 ‘진짜 시골 마을’에서 살았어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하루에 버스가 다섯 대 다니고, 동네에 구멍가게가 하나 있는 마을이었어요. 제가 삼 남매 중 둘째인데, 아시죠 둘째들의 서러움. 아무리 받아도 모자라잖아요. 그래서 밖으로 나갔어요. 동네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좀 더 씩씩하고 예쁘게 인사하면 많은 애정을 주셨어요. 그래서 저희 집은 ‘채령이네’였어요. 첫째와 막내를 둘째가 이겼어요.


어릴 적 국악을 배웠어요. 동네에서 정월대보름 행사하면 맨 뒤에서 꼬마가 장구 들고 쫓아가며 치고 그랬어요. 할머니들께서 장구에 돈 끼워주시고, 아주 쏠쏠했죠. 애를 키우려면 온 동네 애정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옆집 사람들에게 항상 강아지가 꼬리 흔들고 다니는 것 같이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너무 좋았어요.



못안, 정채령 작가의 고향 ⓒ정채령



인간이 성장하면서 공동체가 점점 확장되잖아요.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많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하는 가정에서부터 친척, 마을 이렇게 넓어지는 공동체를 어릴 적부터 경험하며 성장했네요. 마을을 통해 서로 함께할 수 있다고 느낀 경험이 오늘날날 작가님께 큰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방어적이거나, 배척인 태도를 취하기보다 저 사람은 누굴까, 어떤 사람일까, 나랑 어떤 점이 잘 맞을까 호기심과 애정하는 시각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시각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가지게 되면서 해나가는 일들에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만들어진 기억들이 오늘도 작가님께 힘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고요. 물리적인 공간으로나 힘들 때 꺼내볼 수 있는 추억으로나.


너무 좋아요. 아직도 옛날 고향 마을에 가면 엄청 마음도 편해져요. 아직도 저를 기억해 주시고요.



못안, 정채령 작가의 할머니와 앞집 할아버지 ⓒ정채령







작업 이야기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큰 의미에서 ‘라이프 스타일’은 공간이나 건물, 오브제 등을 촬영하는 분류를 말하지만, 저는 그 안에서 사람의 흔적과 이야기를 읽어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공간에 들어서면 누가 어떻게 머물렀는지가 자연스럽게 보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라이프 스타일’을 단순한 장르 구분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담아내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보고 있어요.


때로는 상업적인 결과물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다큐멘터리나 패션과 결합할 수도 있어요. 결국 제가 찍고 싶은 건 늘 ‘사람과 이야기’이고, 그걸 담아낼 수 있는 언어가 라이프 스타일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첫인사에서 최근에 정리하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동안 찍어왔던 사진들의 서사를 쭉 겹쳐보니 선명하게 보이는 지점이 ‘라이프 스타일’ 영역으로 잡혀 보였고, 앞으로도 그 방향으로 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시게 된 걸까요?


네, 맞아요. 제 작업을 되돌아보니 늘 중심에는 사람과 그들의 이야기를 찍는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낯선 공간과 물건을 보았을 때 어떤 사람이 쓰는 걸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요. 그 호기심이 사진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저는 세상을 배우게 돼요. 그래서 제게 사진은 단순히 직업을 넘어, 저와 세상을 이어주는 매개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다큐멘터리, 패션 등 다른 장르와 유연하게 결합하면서, 결국에는 사람과 이야기가 중심에 있는 사진을 계속 찍어가고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과 물건을 찍는다는 관점이 앞서 이야기하셨던 어려서부터 경험했던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사진을 찍는데 많은 영향을 줬을 것 같아요.


맞아요. 먼저 다가가는 것을 좋아해요. 사람을 처음 만나면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아요. 제가 진행한, 진행하고 싶은 개인 작업들도 그런 영역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호기심에서 모든 것들이 시작돼요.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작가님께서 고향 마을, 어릴 적 공동체에 대한 기억처럼 마음에서 뿌리가 튼튼하게 내린 곳이 있어서 어딜 가도 되는 분으로 성장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채령 작가의 라이프 스타일 사진들 ⓒ정채령




한국 안에서도 다양한 장소를 다시 니고, 해외에서도 작업을 해오셨는데 작가님을 대표하거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네팔과 몽골에서 했던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기도 하고, 제게 많은 영향을 준 작업이었어요. 특히 네팔에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그랬어요.


NGO 단체에서 한국에 있는 소 101마리를 네팔로 보내 도움을 주는 프로젝트였어요. 한국이 전쟁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고, 식량난이 극심했을 때 해외에서 젖소를 원조해 준 적이 있어요. 바다를 건너 타지로 오면서 견디지 못한 소들도 있었지만, 살아남은 소는 현재 한국 낙농업의 시작을 열어줬어요. 세계적으로 이주를 견디고 살아남은 소가 있는 곳은 한국이라고 해요. 이제 많은 도움으로 성장한 한국에서 다른 개발도상국의 삶을 지원할 때가 되었고, 바다를 건너온 것을 경험하고 살아남은 소의 후손들이니 유전적으로 다시 시도해 성공할 확률이 높아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였어요. 저는 그 과정을 사진으로 담았어요.


네팔 프로젝트에 참여한 덕분에 주민들은 타국에서 온 외지인이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자연스럽게 받아주셨고, 그래서 저 역시도 망설임 없이 그들의 삶에 한 발 더 깊숙이 들어가 잠시나마 그들의 일상 속 일부가 된 듯 느낄 수 있었어요. 전엔 사진을 도구로 상업적인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면, 그 경험 이후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이야기를 좀 더 담아야겠다고 생각이 확장되었어요. 참 감사한 기회였어요..


애정과 호기심이 있으니 주변에 오는 사람들도 또 편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 관계와 분위기가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기고. 그래서 작가님 사진엔 따뜻함과 편안함이 느껴지나 봐요.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을까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새로 도착한 소를 맞이하던 장면이 있어요. 모두가 기뻐하고 웃으면서도, 그 표정 속에 이 소가 우리 삶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진지한 기대가 함께 보였어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사진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담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네팔 프로젝트에서 ⓒ정채령



카메라를 통해 누군가의 삶에 스며들 수 있고, 그곳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가공해서 타인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현장이었네요.

어때요? 결과도 만족스러웠어요?


네팔 프로젝트를 제가 더 애정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때 사진이 다 잘 나왔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 속에 녹어져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었어요. 다시 당시 사진을 봐도 공기와 분위기 이런 것들이 다 느껴질 정도로요. 내가 그런 상황에 있을 때 몰입도가 높아지고 결과물도 잘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해하고 애정이 생기는 만큼.


사진을 찍는 사람의 마음과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과에 담겨 나오네요. 참 사진이 신기해요. 똑같이 빛을 담아내는 기계 같은데, 결과를 보면 사람마다 어쩜 이리 다른지.

그래서 본격적으로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촬영 전에 그들의 공간과 오브제를 살펴보고, 짧게라도 대화를 하려 해요. 작은 사물 하나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좋아 보이지만, 그만큼 사진 찍은 사람은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는 것이 잖아요.


음, 그런데 저는 그 과정이 에너지를 더 채워줘요.

너무 재미있어요.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저 사람은 오늘을 뭘로 채웠을지 이해하면서 제 에너지도 같이 올라가요.


어떤 창작자들은 때론 자신이 만들고 싶어 한 것 그 자체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내가 그 작업 자체가 되지 못하거나, 그에 다다르지 못했을 때 미쳐버리거나 너무 고통스러워해요. 하지만 채령은 그와 반대에 서 있어 보여요. 사진사에 획을 긋는 사진을 찍겠다거나 미학적으로 완성된 어떤 것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에 아무련 영향을 받지 않고, 내 주변의 것들을 애정하는 것 같아요. 마치 세상에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고 나누고 싶은데 사진이라는 좋은 도구가 있어주는 것 같아요. 그 사람과 나를 연결해 주고, 네 이야기를 내가 해석해서 공유할 수 있게 해 주고, 우리의 찰나를 담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그 역할을 계속해 나갈 실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일까요. 제가 사진 찍을 때 뷰파인더만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자꾸 상대방과 상호작용을 하더라고요. 근데 또 가끔은 내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안 되겠다 싶을 때가 있어요. 내가 보고 있는 시선이 그 사람을 제한해 버릴 수도 있고, 제 판단이 사진에 그대로 담길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따뜻하게 보고 싶고, 좋은 면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큰데, 또 그게 지나치면 안 좋을 수도 있잖아요. 안 좋은 걸 괜히 좋게 포장해 버린다든지,, 그래서 요즘은 그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게 돼요.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제 판단을 뒤로하고 찍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무게감이나 책임감 같은 게 점점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참, 어려운 지점일 것 같아요. 하지만 언론기자는 아니니 사실을 전달하는 부분에서 있어 좀 스스로에게 너그러워도 괜찮지 않을까요?


저는 그 사람의 공간에 가서 촬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안에서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들도 있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카메라를 들었다고 해서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너무 당연하게 막 찍어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배려가 있어야 해요. 카메라가 어디든 통과할 수 있는 티켓이 되고, 대상에게 폭력을 가하는 도구로 쓰고 싶지는 않아요. 강박까지는 아니지만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앞서 말씀드린 네팔에서도 카메라를 들고 있고, 목에 신분을 걸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 없었어요. 그 과정에서 점점 무게를 실감했어요.



네팔 프로젝트에서 ⓒ정채령







동료 이야기




스스로를 PR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다양한 것을 해온 것에 대한 성취와 반대로 깊이 파지 않았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좀 붕 떠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무엇인가를 긴 시간 동안 전문적으로 쌓아 왔다면 내가 속한 영역이 더 확실히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같은 것들이 붕 뜬 느낌과 함께 들 때가 있어요. 소속이 되고 싶지 않아 하면서 소속이 되고 싶은 느낌. 아마, 사람이 반대쪽에 있는 것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때문에 느슨하지만 꾸준히 작업을 같이 해나가는 팀이 있어준다는 것이 좋아요.


느슨한 소속감을 주는 동료들이 중요한 시점이네요. 함께라서 더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질 것 같고.

자랑을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에 대한.


요즘 같이 일하고 계시는 분들은 뭐랄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분들도 함께할 때 가능한 일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팀을 꾸려 움직이게 되는 것 같아요. 느슨하게나마 팀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서로 촬영이 있을 때 도움을 주고받는 친구들이 있고, 디자인, 3D 캐릭터 모델링, 사진, 영상, 후보정 전문 등 각자의 영역에서 협업할 수 있는 형태로 남아 있어요. 모두 나를 확장시켜 주는 존재들이에요. 우리가 상하관계를 형성하진 않았지만, 각자 비슷한 상황에서 계속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멀리 있어도 다 같이 어깨 동무하고 으쌰으쌰 하면서 나아가는 기분이 들어요. 느슨한 거리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상호 도움이 되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품앗이의 형태로 일하고 있어요.


유니온 같은 느낌이네요. 채령과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의 움직임이 독립적이지만 연합해서 함께 나아가는 방식이 시사하는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무겁게 움직이기 힘든 개인들인 또래와 후배들에게 하나의 방식을 배우는데 도움이 되어줄 것 같아요.


견고한 조직이 주는 장점도 있지만, 그것에 익숙한 분들은 좀 어렵겠지만, 사람에 대한 존중과 관심, 애정을 기저에 깔고 상호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 힘이 되고 함께 성장하는 방식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채령과 동료들 ⓒ정채령







공간 이야기




을지로라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을지로의 예술가들을 촬영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계세요.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로 대상을 넓혀나갈 고민 중 아라고 하셨고요. 어떻게 진행하고 계실지, 해나가실지 궁금해요.


최근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를 제일 적극적으로 표현(표출)하는 사람이 ‘예술가’인 것 같다. 사회에 정보가 많이 공유되어서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 같아요. 하지만 그와 반대로 나를 건강하게 표출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술가들의 활동이 그들에게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울 점이라고 볼 수도 있고요.


나를 표현하기 위해선 나를 생각하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고, 무거운 주제가 아니더라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지, 내가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게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예술가를 주목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사진이나 영상은 내가 발견한 것을 공유하기 좋은 매체예요. 예술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언어화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과정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나간다면 도움 되는 지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우리로서 더 건강해지고 소통하면서 살 수 있는 지표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 맥락에서 예술가들의 활동을 조명하신 것 같아요.


STUDIO VISIT(스튜디오비짓 : 예술가들의 작업 과정을 기록하고, 작가들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는 동영상 콘텐츠)을 처음 시작할 땐 지금과 다른 접근이었어요. 을지로의 예술 공간이 빠르게 없어지는 것 같고, 또 빠르게 생겨나는 것 같아서 어떤 형태로든 기록될 수 있도록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 예술가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동료들을 찾아다닌 느낌이 드실 것만 같아요.


15편을 찍었잖아요. 돌아보면 어떠셨어요?


진짜 멋지게 말을 하고 싶은데.

15편을 찍으면서 을지로 공간 구석구석을 다니게 되었어요. 생각지도 못한 골목으로 들어서고, 때론 무거운 짐을 들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을 하염없이 올라가곤 했어요. 그때마다 마주했던 작업실들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작은 작업실에 또아리를 틀고 작업을 하는 분들을 닮아 있었어요. 그분들을 보면서 도대체 이런 공간을 어떻게 찾으셨을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작업이 시작되면 작업의 과정과 형태, 결과물이 다양한 것을 보면서 또 한 번 놀랐어요. 창작하는 예술가, 그가 만든 작품과 공간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어요.


내년이면 지금 작업실(왕십리)을 떠나야 해요. 서울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아요. 다음 작업실은 을지로에 내려고요. 촬영 중 만난 분들을 통해 저도 애정이 생겼어요.


채령을 환영해 줄 이웃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겠어요.(웃음)



스튜디오 비짓 YOUTUBE







내일 이야기




마지막 질문을 드려볼게요. 5년 후 채령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려운 질문이에요. 계속 사진을 찍고 있을 것 같아요. 필요에 따라 영상 작업을 병행하고 있지만, 제 중심은 결국 사진일 거예요.


사진 영역을 조금 더 확장해나가고 있을 것 같아요. 최근에 강의와 중학교 수업도 나가기 시작했는데, 예전엔 제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막상 수업을 해보니 꽤나 설레고 즐거운 일인 거예요. 제가 받았던 것들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하게 되었어요. 물론 여러 변수가 있어서 마음 처럼 되지 않는 일도 많지만요.


앞으로도 저는 사람의 결을 기록하고 싶어요. 표정이나 공간의 분위기, 물건에 남은 흔적 같은 것들이 모여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가 되잖아요. 앞으로도 세대의 기억이나 감정, 로컬 커뮤니티나 사람들의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서사들을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제가 찍은 사진이 멋있다 보다는 따뜻하다, 편안하다로 다가오면 좋겠어요. 시간이 지나 다시 봐도 사람 냄새가 나는 사진을 하고 싶어요.


자연스럽게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맥락의 중심은 존중과 애정 같은 것들이 지켜주고 있을 것 같아요.



정채령의 작업실







삶을 따뜻하게 담는 창




일상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흐릿해지기 쉽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대부분 겹겹이 쏟아지는 어려움 속에 있고, 그 한복판에 서 있으면 많은 것들이 흐려집니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익숙함 때문에 오히려 보이지 않게 됩니다. 자리 잡은 고정관념은 한커 풀 아래 어떤 변화가 있는지 눈치채지 못하게 합니다. 그 무뎌지는 시간 안에서 내면의 형태를 발견하고 공유해 주는 것이 예술의 우리에게 주는 선물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익숙함이 생경함으로 바뀌는 변화 속에서 우리의 감각은 다시 생동감을 가지게 됩니다.


채령이 찍은 사진에 따뜻함과 온정이 있음은 그녀의 심지가 옛 시골 마을에 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정을 주고받았던 사람과 공간으로 뻗어나간 뿌리가 옆으로 확산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다른 존재의 뿌리를 만나 연결되고, 온기가 좁고 긴 관을 따라 공유됩니다.


피사체에서 발견한 따뜻함이 그의 삶에 새로운 온기를 주고, 관객의 마음에도 전해지겠죠. 이제 어떤 매개를 통해 전달되어 나갈까요. 앞으로도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삶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창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채령이 담은 예술가 지도







정채령 더 보기

・instagram : @chaeryeongjeong

・web : www.chaeryeongjeong.com

・스튜디오비짓 YOUTUBE : @STUDIOVISITORS



정채령의 손 ⓒ작은도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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