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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 Mar 23. 2017

세상의 크기


 우리의 5일치 집에서 보낸 첫날밤을 보내고 일어난 아침은 여느 여행과 마찬가지로 상우의 베개는 아토피로 인한 핏자국이 여기저기 점처럼 묻어있었고, 상우가 내 코고는 소리와 이빨 가는 소리때문에 하나도 못 잤다고, 투정을 부리면서 시작되었다. 이른아침은 아니였지만 어제 늦은 밤 , 긴 비행시간과 무거운 짐들을 끌고 숙소를 찾아온 터라  서로 많이 피곤해보였다. 하지만 상우는 여행을 왔으면 빨빨빨 돌아다니며 이곳 저곳 볼것들은 다 봐야한다는 주의라 서둘러 집을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 우리는 프라하에 온 한국인 여행객 이라면 누구나 한다는 팁투어를 하기로 했다. 팁투어 미팅장소는 루돌피눔(rudolfinum) 이라는 건물 앞, 이 건물은 프라하의 유명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는 장소이며 ‘예술가의 집’이라고 불려진다. 우린 아직 유심칩을 구매하지 않았기에 집을 나서면 와이파이가 있는 곳이 아니면 구글지도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집에서 출발 하기전 루돌피눔으로 가는 길, 유심칩을 구매 할 수있는 매장 , 등을 미리 찾아 핸드폰에 캡쳐해 놓고 집을 나섰다. 


 상우나 나나 둘다 배가 많이 고팠기때문에 유심은 재쳐두고 환전소를 먼저 찾았고 각자 10만원씩만 환전하고 팔라디움이라는 백화점쪽으로 걸어갔다. 그 이유는 팔라디움 앞에서 시장이 늘어서는데 우린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하자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팔라디움 백화점 앞쪽으로 가보니 시장이라고 하기엔 부족할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우리나라 포장마차처럼 상인들이 각자의 트럭이나 바퀴가 달려있는 수레에 판매하는 물건들을 진열해 놓았다. 우리는 음식이 더 많을 것을 예상했지만 음식,간식 보다는 수공예품들, 향수 , 직접빚은 술 등이 주를 이루었다. 이때의 동유럽 날씨는 무더운 여름이기 때문에 땡볕에서 음식을 먹을 순 없어서 시장 바로 주변을 둘러보다 CACAO라는 음식점으로 향했다. 

 

 아마 이때부터 음식점을 들어갈때 메뉴판 먼저 보고 가격을 따져가며 들어갈지 말지를 정했던 것 같다.

* 상우의 우선순위: 1위-가성비, 가격이 싼지 와 양이 많은지 

                               2위-음식점의 분위기, 인테리어 / 

                               3위-음식점의 위치, 전망이 좋은지

* 나의 우선순위: 1위-맛있는 음식이 있는지 , 내가 먹고싶은것을 파는지 

                           2위- 가격이 내 기준 이상인지 이하인지 

                           3위-전망, 분위기

 우리는 그때 당시에 여긴 동유럽이니까 어느 카페나 음식점을 들어가도 분위기나 인테리어는 당연히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의 최고 우선순위는 가격과 어떤음식을 파는지 였다. CACAO는 가격도 많이 비싸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음식도 팔았기 때문에 야외테라스에 바로 앉아 메뉴를 정했다. 난 치킨 다리를 구운것과 각종 야채를 구워서 살짝 달콤매콤한 볶음야채를 곁들인 음식을 주문했고 상우는 연어가 들어가있는 베이글을 주문했다. 유럽스러운 플레이트로 음식이 나오고 각자 요리를 먹으며 잠시 풍경을 감상했다.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무심결에 바라보면서 새삼 내가 정말 작은 나라에 좁은 반경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세계지도를 상상했다. 전체 세계지도에서는 쥐똥에있는 새균만하게 작은 우리나라, 그 좁디 좁은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와 이렇게 드넓은 유럽국가들, 또 다른 여러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가 한국에서 느꼈던 감정들과 내 미래에 대한 걱정거리, 주변사람들과의 관계 이런 것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다. 물론 이러한 내 개인적인 걱정들과 모든것들이 중요하지 않거나 터부시 여겨도 되는 것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것들을 너무 집착하고, 다 내가 원하는대로 해결하려 하고, 내가 생각해본 길들이 전부라는 생각은 하면 안되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은 넓고 넓다 , 이 말은 누구든 흔히 하고, 듣는 얘기지만 정말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만이 참으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행인들 각자의 직업도 궁금했고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인지, 여행객인지 , 사는 사람이라면 이 멋진 도시 프라하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가 너무 궁금했다. 


 이러한 궁금증을 뒤로한채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고 내 핸드폰에만 유심을 설치하고 루돌피눔을 찾아 갔다. 처음엔 어디있는지 잘 찾지 못해 두리번 거렸지만,  저 먼 어딘가에서 익숙한 말투와 언어가 들렸다. 그 쪽으로 가보니 큰 나무 밑에서 오늘의 팁투어를 진행해주실 투어 가이드분이 마이크를 들고 오늘의 일정과 팁투어는 어떻게해서 시작하게 되었는지 ,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계셨다. 애초에 투어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 이였기 때문에 상우와 둘이 다닐때는 볼 수 없었던 한국분들이 전부 모여있었다. 커플이 전체 중 40%는 차지 하는것 같았고 나머지는 가족단위나, 친구들끼리 왔다. 그렇게 대충 소개와 인사를 마치고 첫 번째로 갈 곳인 까를교로 향했다. 

 

 까를교 입구에 도착해 그앞에있는 커다란 석상에대해 가이드분이 그 석상의 주인공이 무엇을 했는지 이 까를교가 어떻게해서 지어졌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셨는데 그때 난 별로 주의깊게 듣지 않아서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또 까를교를 건널때에는 사람도 너무 많이 붐비고, 각종 잡동사니를 파는 상인들도 많아서 다리를 건널때 별로 감흥이 없었다. 경치또한 시내로 들어가는 많은 다리와 별반 다를바 없어 보였다. 물론 이건 내가 그 설명도 대충듣고 무지해서 그렇겠지만, 정말 다리를 건널때의 느낌은 다른 다리들과 같았다. 까를교를 다 건너기 직전에 옆으로 새는 작은 계단이 나있다 , 이곳으로 내려가면 존 레논 벽으로 이어지는 길로 갈 수 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이곳으로 내려가 작은 골목들을 지나면 존레논 벽을 마주하게 된다. 이 벽은 낙서로 이루어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여진다. 벽은 1980년대 공산 치하에 자유를 열망하던 프라하의 젊은이들이 반전 평화주의자인 존 레논의 노래와 가사들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낙서와 그림, 글 로 벽에 표현해 온것이다. 내가 본 제일 큰 글씨는 LASKA 라는 빨간 글씨였다, 체코어로 사랑 이라고 한다. 많은 청년들이 같은 마음으로 한개의 공간에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로이 표현하고 만들어 놓은 것을 생각하니 대단하게 느껴졌다. 벽 저멀리에서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가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다시 다음 이동장소로 움직였다. 


 우리의 다음 장소는 프라하 성, 존 레논벽에서 계속해서 위쪽으로 걸어가야한다. 프라하 전체에서 꽤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다. 실제로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며, 많은 관광객들이 야경을 보러 찾아오기도 한다. 숨이 턱에 차오를때까지 위로 계속해서 올라가다 보면 탁트이고 드넓은 공간이 나오며 프라하의 전경을 볼 수있을 정도의 위치에 도착해 있다. 몇개의 레스토랑과 스타벅스가 있고, 프라하 성 내부로 들어가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우리도 그 줄에 합류 했고 프라하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짐 검사를 받아야 해서 가드의 지시에 따라 짐을 풀어 보여주고 통과했다. 내부로 들어서면 또다른 넓은 공간이 나오고 그 공간에서 또 앞으로 나아가면 또다른 넓은 공간과 함께 성 비투스 대성당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하늘을 찌를듯이 뾰족하게 높이 솟은 지붕들이 가장 인상깊었다. 이 다음의 목적지는 황금소로. 황금소로로 가는 길목에는 구왕궁, 성이지르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황금소로를 들어가려면 또 다른 티켓을 끊어야 한다길래 우린 보지않고 곧장 프라하 성을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면 또 다른 절경이 펼쳐진다. 구시가지의 건물들과 빨간색의 지붕들이 제 멋대로지만 나름의 규칙을 갖고 나열되어 있었다. 눈을 흐리게뜨고 보면 하늘의 푸른색과 지붕들의 빨간색이 대비 되며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 보였다. 이제 팁 투어를 마치고 가이드분이 작별인사를 했다. 우린 각자 1만원씩 내기로하고 2만원을 모아 하루종일 우릴 안내해주시고 이것저것 많이 설명해주신 친절한 가이드 분께 드리고 처음 들어왔던 프라하성 입구로 향했다. 그리곤 다시 까를교쪽으로 가며 중간중간 상점들을 구경했다, 나무를 조각해 장식품들을 파는 수공예품점, 쿠키 전문점 등 다양한 상점들이 있는것이 신기해 이곳저곳 들어가봤다. 하지만 하루종일 투어를 다니다 보니 몸이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때문에 적당한 카페를 들어가 쉬기로 결정했다.


 우선 다시 까를교를 건너 구시가지 쪽으로 가 아이스크림을 전문으로 하며 동시에 커피도 파는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난 상큼한 과일아이스크림, 상우는 카라멜 마끼아또를 시켜 기다리고 있었다. 난 굉장히 만족스러운 아이스크림이였지만, 상우의 카라멜 마끼아또는 얼음이 들어있지않아 미지근하게 나왔다. 아마도 원래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음식점, 혹은 카페에서는 얼음을 따로 달라고 해야하는것 같다. 그렇게 약 30분을 앉아서 쉬며 다리를 좀 쉬어주었다. 


 그러고선 오늘의 저녁 , 대망의 메뉴인 꼴레뇨를 먹으러 갔다. 프라하에선 꼴레뇨가 제일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족발과 비슷한데 좀더 기름기가 없고, 여기선 돼지고기 부위를 꼴레뇨용 쇠꼬챙이에 꽂아서 나무판자에 매달아 준다. 칼과 함께. 그럼 이제 우리가 신나게 잘라 머스타드, 칠리, 사워 소스에 찍어먹으면 되는거다. 꼴레뇨와 함께 맥주도 시켜서 마시는데 난 몸이 피곤했는지 주문한 맥주의 절반도 마시지 못하고 취해버려서 다 남겼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너무 아깝다. 그리고 이 음식점에선 특이했던게 손님이 자리를 잡으면 길고 커다란 프레첼을 한 10개정도 나무막대기에 매달아서 갖다준다, 여기서 주의해야할게 이건 공짜가 아니라 먹은 만큼 계산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막 먹으면 안된다. 


 펍 분위기의 꼴레뇨 집에서 나와 우리의 원래 계획인 재즈클럽을 가야했다. 난 이미 몸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해버려서 정말 마음같아선 그냥 곧장 집으로 가서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상우의 로망중 하나였던 재즈클럽이였기에, 또 상우가 삐질거 같았기에, 지친 몸을 이끌고 재즈클럽으로 갔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10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REDUTA 라는 재즈클럽이였고, 우린 10시에 시작하는 공연을 예약하고 시간이 될때까지 그 바로 앞에 있는 KFC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사 앉아서 쉬었다. 


 10시가 되어 공연장으로 들어서자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처음 들어가보는 공간, 색감, 분위기, 인테리어 들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선 REDUTA 재즈클럽은 반지하로 들어가야 했고, 공연장으로 들어가기전 짐을 맡겨주는 데스크가 있었고, 그 바로 옆으로 커튼을 재치고 들어가면 저 앞에 무대가 보였고 무대가 보이게끔, 또 공연을 보는동안 마실 음료가 놓여질 자리까지 생각해놓은 좌석과 테이블들이 계단 한개 차이로 높이 차이를 두고 배치되어 있었다 무대까지의 거리가 더 길었고 양옆으로의 거리의 1.5배쯤 되보였다. 또 공연장 입구에서 무대쪽으로 좀 가다 옆으로 보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있다, 내려가보면 다양한 맥주, 칵테일 , 와인 등 음료들을 판매하고 있었고, 무알콜 음료도 있었다. 바닥은 빨간 카페트였고, 벽은 검은색 페인트로 칠해져있었다. 난 털이 북실북실한 아저씨에게 콜라를 얼음과 같이 달라하고 상우는 칵테일을 주문했다. 


 10시가 되어 공연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이 어떤 악기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의 귓속으로 음색이 들어왔고, 물처럼 흐르는 음정들이 그 공간을 애워쌓다. 드럼, 색소폰 , 키보드 , 첼로, 등의 악기들이 서로 맞춘 흐름대로 싸우지않고 여유로움과 조합을 만들어내며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그 공연장에 있는 모두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정말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만들어 주었다. 12시쯤까지 공연들 듣고 클럽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걸어가는동안 그 동유럽의 어두운 공간이 나를 둘러싸는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늑했고 야경은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 먹은 핫도그에 입 천장만 데이지 않았다면.. 그냥 데인게 아니라 입 천장이 정말 다 까져버려서 그 핫도그도 다 먹지 못하고, 앞으로의 내 입으로 들어올 음식들이 매우 불편하게 위로 넘어가게 될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루돌피눔

까를교 입구에 있는 까를 4세
볼트바 강의 유람선들

존 레논 벽


프라하 성에서 황금소로로 나와 다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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