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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pr 17. 2024

아, 소리라도 꽥 지르고 싶다.

아, 소리라도 꽥 지르고 싶다. 꼼지락꼼지락 뽀시락뽀시락 끝도 없다. 엄마는 약봉지를 들고 만지작만지작 지금 꼬박 세 시간째 저러고 계신다. 난 다이소에 갔다. 엄마가 약을 잘 챙겨드실 수 있도록 통을 좀 사려고. 약통은 꽤 많았다. 그러나 하루치 드실 약과 특히 눈에 넣는 약이 많으므로 작은 약통들을 지나 약간 크면서도 뚜껑 있는 것으로 고르고 골라 가지고 왔는데 너무 높고 깊어 안된단다. 그래도 약봉지 뭉치에서 하루치만 빼 요렇게 넣으라고 가르쳐드리니 엄마가 알아서 잘해놓고 있는데 왜 새 걸로 다 뒤집어엎느냐며 다시 포시락포시락이다. 먹는 사람이 편하게 해야지! 하시면서 비닐로 된 약봉지를 하루치씩 접고 있으니 그게 접히나. 마구마구 화가 난다. 엄마! 하루치 약을 드셨는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잖아! 그러니까 이 통에 하루 드실 걸 넣어두고 먹은 봉지도 넣어서 드셨는지 아닌지를 아시라구. 하루치씩 접어놓았는데 네가 왜 다 뒤집어 놓냐? 불만이시다. 아무리 효율적인 걸 가르쳐드려도 보기에 예쁘게 정리해놓는 데만 급급하시다. 나도 한마디 한다. 비닐이 어떻게 접어져! 이렇게 손으로 꼭꼭 누르면 접어진다! 내가 볼 땐 그냥 약봉지 뭉치였다. 그게 엄마가 하루치씩 정리를 해놓은거라고? 아이고. 정리를 너무나 잘하시던 우리 엄마. 만지작만지작 뽀시락뽀시락 정리 또 정리. 나름 정리를 하신다며 만진 것 또 만지고 어디론가 꼭꼭 숨겨놓고 그리고 그걸 찾느라 하루종일 헤매고. 어르신 보는 게 힘들다 하더니 바로 이런 건가 보다. 92세인 우리 엄만 지금까진 정말 곱고 예쁘고 세련되기만한 분이셨는데 어떻게 저렇게 고집이 세졌을까? 소리라도 지를까보아 아님 엄마에게 더욱 섭섭하게 할까보아 난 방으로 들어와 계속되는 포시락포시락 소리에도 모른 척 하고 있다. 아, 미치겠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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