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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월 1일

by 꽃뜰

첫날이 밝았다. 달라진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보통 공휴일과 다른 것이라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

어제도 새벽 두 시에나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빈대떡, 전 등을 부치느라.


자, 새해 새날인데

이런 날은 무언가 작정을 해야 한다.

금년도엔 무엇을 하겠다고.


나는 무엇보다 글씨를 예쁘게 써야겠다.

아나운서멘트에도 그렇고

H가 선물한 이 일기장에도 그렇다.


오늘은 5탕을 뛸 예정이다.

오랜만에 친척들께 인사드리러 가는 거다.

결혼을 하면 못 가니 이번이 마지막일 듯싶다.

가겠다. 집에서 혼자 책 보며 느긋하게 있고 싶기도 하지만

S오빠네, 서교동 큰 댁, B 외삼촌댁 등

그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나도

결혼생활을 괜찮게 하고 싶다.


어젯밤 32번 버스를 타고 오는 중에 문득 정말 문득

엄마 아빠가 미칠 듯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다. 우리 엄마 아빠. 얼마 안 남았다.

내가 효도를 보일 날도.


엄마아빠의 착한 딸로 남아있기도 이제는 그만이군.

오빠에게도 남동생에게도 많이 많이 잘해주고 싶다.


이제야 일기 쓰는 적당한 자세를 발견했다.

이부자리에 누워서 엎드려 나의 예쁜

분홍베개 위에 이 일기장을 놓으면 된다.


새해답게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다.


19.jpg (사진: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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