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브릭스(Jean L. Briggs)_1998
아이에게 도덕을 가르친다는 말은 흔히 “옳고 그름을 알려주는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도덕’, ‘윤리와 사상’ 등의 교과목을 학생들이 배우며, 이에 대해 정답과 오답을 가리는 시험이 버젓이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버텨 왔던 도덕 교육의 방식은 오늘날의 교실과 가정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에 부딪히는 듯합니다. 우리와 아이들에게 필요한 도덕 교육은 옳고 그름의 기준을 얼마나 잘 아느냐가 아닌, 그저 “올바른 감정을 배우는 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씩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은 우리를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세상과 가깝게 연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생각과 감정을 쉽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요. 어른과 아이 모두 말입니다.
온 세상이 쉽고 빠르게 ‘나’와 연결되었고, 그 덕에 우리는 과분한 자기애와 과도한 자기 혐오를 동시에 안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SNS에 공유하며 몇 명의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되면서 말이죠. 거기에 ‘잘사는 모습’만을 보여주고픈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숱한 게시물의 밝은 빛 아래에, 우리는 쉽게 ‘나’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안정적인 일자리는 물론이거니와 당장 내년의 안정도 보장되지 않는 현실은 이런 불안을 더욱 자극합니다. 오래된 출생률 저하로 인해 학생 수는 눈에 띄게 줄고 지방 대학교 폐교가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시대가 되었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성취와 경쟁은 배가 된 듯합니다. 가라앉는 배에서는 모두가 좁은 위쪽을 향해 올라가는 일과 같은 것일까요.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9조 2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7.7% 증가하며 다시 최고치를 기록했다지요. 이 중 초등학생 사교육비가 40% 정도 됩니다. 경쟁, 그리고 결과 중심의 환경에서 아이들이 감정 조절과 공감, 갈등 중재 같은 ‘마음의 기술’에 집중적이고 의식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커졌음을 방증합니다.
요컨대 오늘날의 우리는 ‘도덕’을 교과목 중 하나가 아니라 ‘진짜 문제’로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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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L. 브릭스(Jean L. Briggs)의 [이누이트 도덕 놀이](원제: Inuit Morality Play, 1998)는 미국에서 1998년에 출간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아직 정식 번역 출판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책을 제가 알게 된 경위는 애비게일 슈라이어(Abigail Shrier)가 쓴 [부서지는 아이들(원제: Bad Therapy: Why the Kids Aren’t Growing Up)]을 읽으면서입니다.
애비게일 슈라이어는 탐사 저널리스트로, 아동정신의학이 이토록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아동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우울증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에 문제의식을 느껴 탐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느새 미국에서 일종의 트렌드가 된 ‘감정 존중 양육’과 그 이론적 배경이 된 아동정신의학의 허점을 꼬집어 『부서지는 아이들(웅진지식하우스)』을 썼습니다.
그녀는 현대의 양육 방식 이전에, 즉 인간의 본래적 감정 양육 방식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로 자신의 책에서 진 L. 브릭스의 [이누이트 도덕 놀이]를 소개했습니다. 진 L. 브릭스는 캐나다 북극의 우트쿠 이누이트(Utkuhikhalingmiut, 약칭 Utku)와 17개월을 함께 살며 그들의 생활과 양육 방식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지시나 훈계가 아니라 질문과 놀이, 그리고 관계의 맥락 속에서 감정을 배우는 이누이트 아이들의 모습을 기록했다고 전했습니다.
우트쿠 사회에서 어른들은 격한 감정의 표출을 거의 보이지 않으며, 애정 표현조차 절제된 형식으로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반면 유아기에는 울음과 떼부림을 충분히 허용하고, 약 여섯 살을 전후해 스스로 절제와 사려를 체화하도록 돕는다지요. 진 브릭스의 관찰에 따르면, 이 억제는 단순한 통제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놀이 속 도덕극’ 훈련을 통해 습득되는 문화적 기술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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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돌이 된 딸아이를 둔 저는 이 책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아이의 올바른 감성을 길러 주기 위해, 아이가 훗날 만나게 될 많은 친구들을 위해. 그리고 이 아이를 길러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진 저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
또한 영어는 짧지만 번역하여 남긴 기록을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저와 같이 자녀의 좋은 감정 교육에 관심이 많으실 분들을 위해서 말이죠. 어쩌면 제 딸의 친구가 되어 줄 아이의 부모님이 이 글을 읽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특히 주의한 대목은 감정 어휘의 번역입니다. 영어의 ‘사랑’ 하나에 대응하는 말 대신, 이누이트어에는 성숙한 양육적 애착을 뜻하는 nallik-(불쌍히 여기며 돌보려는 정)과 의존적·미성숙한 애착을 뜻하는 unga-가 나뉘어 있습니다. 서로를 동등하게 ‘좋아함’은 piu-gi- 계열로 표현되고, 불리한 처지에서 느끼는 경외·부끄러움·의존의 감정을 한데 아우르는 hira- 같은 개념도 등장합니다.
이 단어들은 인지·평가·관계가 얽힌 ‘문화적 감정 단위’여서, 한국어에서 단일어로 재단하기보다 문맥에 맞춰 풀어썼습니다. 독자가 장면의 정서적 결을 따라가며 의미망을 스스로 조립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제가 번역을 하며 세운 원칙입니다.
언어적 측면에서도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누이트어는 다종합(polysynthetic) 언어로서, 한 단어가 문장에 가까운 의미를 품고, 접사 결합으로 감정의 방향과 관계 맥락을 정밀하게 표지합니다. 따라서 한국어로 옮길 때는 의미를 풀어 문장 단위로 재구성하는 일이 잦습니다. 또한 북극권 연구는 정서 표현에 코드 스위칭(예: 러시아어↔유픽)의 잦은 사용, 억양·별칭·감탄사 같은 요소가 결합함을 보여줍니다. 번역문에서도 이러한 맥락적·행위적 층위를 살리기 위해, 대화의 억양·음성의 태(態)·호칭의 뉘앙스를 문장 리듬을 최대한 반영하는 쪽으로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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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책은 ‘이국적 교훈담’도, ‘이누이트가 옳다’는 규범의 선언도 아닙니다. 우트쿠의 정서 문화는 북극 환경과 생존 조건, 역사적 경험 속에서 형성된 고유한 산물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며 중점을 둔 부분은 이들의 문화가 보여주는 보편과 특수—어린아이의 감정을 넉넉히 받아 주고, 자라며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게 하는 길—를 동시에 가시화하는 데 있습니다.
도덕은 정답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감정을 다루는 지혜이며, 아이는 그 지혜를 놀이와 질문, 그리고 실패 가능한 실험을 통해 배웁니다. 이누이트의 도덕극은 우리 현실을 그대로 대체할 모델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방식으로 정서 교육을 재구성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촘촘한 사례입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독자 여러분의 일상에서도 작은 도덕극이 시작되기를—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는 질문 하나,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는 침묵 하나, 그리고 관계를 안전하게 지키는 유머 하나로—기대합니다.
추신:
저는 전문 번역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우선 직해를 한 후 윤문의 과정을 거쳐 번역을 하였으며, 따라서 모자란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번역은 매주 화요일에 업로드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