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똑띠 May 01. 2023

바다와 바람과 파도 - 海印

신혼여행에서 신부에게 잔소리를 한 바보가 여기 있...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다녀왔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 다녀온 제주도다. 여전히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고는 있으나 그 위력이 많이 옅어진 요즘. 인생에 한 번 있을 신혼여행을 해외로 다녀오지 그랬냐는 말씀이 주변에 많았다.


우리 부부도 평범한 사람들이라,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 어찌 안 가고 싶었겠나. 간다면 호기심이 동하는 나라를 방문해보고 싶었다. 몽골이나 핀란드, 아일랜드나 터키 같은. 들어는 보았으나 막연할 뿐인 나라들. 추억을 남기자면, 떠도는 숱한 이야기 속에 파묻히지 않을 추억을 가지고 싶었다.


그중 신혼여행지로 예정한 곳은 '터키'-요즘 말로는 '튀르키에'였다. 강 하나를 두고 천년은 유럽의 땅으로, 천년은 아랍의 땅으로 지내온 터키. 서양 역사에 꼭 등장하는 '메소포타미아'와 '길가메시', '페르시아' 그리고 '가톨릭',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 글로만 읽던 곳을 눈으로 볼 수 있으니 어찌 오래오래 남지 않을까 싶었다.


-


서른 중반 즈음의 나이에 들어선 지금까지, 나의 부족한 기억으론 튀르키에에 대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일어났다. 항공권을 알아보던 차에 말이다.


우리가 계획하던 여행지와는 다소 먼 곳에서 일어난 지진이기는 하였으나, 큰 화가 덮친 나라에 어찌 우리 부부 하나의 추억 쌓자고 '놀음'을 다녀올 수 있을까. 이것도 다 하늘의 뜻이겠거니... 하고 내려놓았다. 다음을 기약하며. 다음이 있겠지.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눈을 돌린 여행지가 제주도였다. 따지고 보니 제주도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던 것이다. 음식도, 풍경도, 장소도, 추억도. 그저 관광버스에 실려다닌 기억과, 그저 '가본 적 있다'는 말의 흔적일 뿐.


다행히 보살 되신 나의 구여자친구-현아내께서는 자신도 제주도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며, 같이 다녀오자 하셨다.


그리하여 4월,

아주 파란 제주도를 만나게 되었다.



-


'여러 곳'을 즐겼다는 말은 이번 여행을 표현하기에 마땅찮다. '여러 곳'이라 하자면 '여기'와 '저기'를 두루 다녀보니 어떻더라는 말을 하여야 하는데, 여행의 시작부터 여태까지 나에게 남아있는 제주의 인상은 그렇게 분절되어 있지 않다.


수직선의 '여기'와 '저기'를 콕콕 집어 좌표로서 읽어낼 수는 있겠으나 수직선은 '통째'로 수직선이듯, 제주는 통째로 제주였다. 바람과 바다와 초록의 푸르름은 어디에나 있었다.


옥색보다 푸르고 유리보다 투명한 바다와, 그 바다를 끝없이 밀어오는 바람. 바람에는 어디서나 바다내음이 실려있었다. 해안가는 당연하거니와 해안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바닷내가 풍겨왔으니. 그래서일까, 제주의 초록은 내륙의 것보다 억세고 크고 파랬다. 한 송이 토끼풀마저 어찌나 억세고 크던지. 향이 짙었다.


어디에나 바다가 있었다. 제주의 땅을 만든 검정 현무암, 온 집집마다, 온 담장마다 둘러선 현무암들이 해안 끝까지 이어져 있었으니. 이어지고 이어져 옥색 파도가 부딪쳐 하얗게 바스러지는 암석이 되었으니. 땅은 바다와 경계 짓지 않고 있었다.


가로막히지 않아 훤히 트인 바다는 하늘과 그 경계가 모호했다. 투명한 옥색의 해안가 바다에서 점점 시선을 멀리하다 보면 저 멀리의 바다는 짙게 푸르러 있었다. 그러다 경계 없이 바다와 이어진 하늘. 바다인가 싶더니 하늘이다.


제주의 땅은 어떤가. 바람이 억세어 높이 짓지 않은 건물들. 그러다 보니 낮은 만큼 넓어진 마당. 마당을 둘러싼 검은 현무 돌담. 낮은 처마 위로 언제나 시원히 트인 하늘. 땅인가 싶으면 어느새 바다고, 바다인가 싶으면 어느새 하늘이고, 하늘인가 싶으면 어느새 땅이다.


제주의 하늘과 땅과 바다는

아직 통하고 있었다.



-


어느 날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깐 산책을 할 요량으로 숙소 근처의 해안가를 아내와 함께 걸었다. 걷다 보니 저 앞으로 보인 몇 대의 관광버스와 많은 사람들. 그들 뒤로 보인 넓게 트인 언덕.


언덕은 한쪽 끝이 툭 끊어져 절벽과 같았다. 바람이 흔드는 넓은 언덕이 툭 떨어지듯 바다와 접하고 있었다. 절벽가의 풍경이 참 좋겠다 싶어 저기까지 걷기로 했다.


언덕의 경사를 오르자니, 경사가 급한 것은 아니었으나 의외로 갈 길이 멀어 숨이 조금 찼다. 빌딩숲만 보아오다 가로막힌 것 없이 훤한 장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원근감을 잃었나 싶었다. 자잘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걷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끝이 있다고. 멀리서 눈으로 점찍었던 절벽가에 마침 도착했다. 과연 그 풍경이 절경이더라. 어찌나 바다가 넓던지. 그 바다를 한 꺼풀 덮고 있는 바람은 또 어찌나 넓을 것인지. 저 끝없이 넓은 바다 위로 파도가 치지 않고 있는 곳이 단 한 곳도 없더라.


내 조그만 무쌍 두 눈에 담긴 바다만 하여도 몇천만 평은 됨직한데. 광활하게 넓은 바다에 두 눈이 버거울 지경이었다. 그런 광활함에 단 한 점도 파도가 없지 않은 곳이 없었고, 멈춘 곳이 없었다.


온 천지에 가득 찬 파도와 바람. 쉬지 않고 밀어대는 바람에 파도는 끝없이 움직이고, 수없는 파도에 하늘이 부서져 반짝반짝 빛나는데.


문득 우주의 묵묵한 성실함이란

과연 이런 것인가 하여

눈이 시렸다.



-


수학에서 배우기를, 점은 길이가 '없이' 위치만 '있고', 선은 넓이가 '없이' 길이만 '있고', 면은 깊이가 '없이' 넓이만 '있다' 하였다. 그러고서 또 배우기를, 그러니 수학은 실제로는 '없는', 그렇지만 실체의 본질을 '반영'하는 어떠한 체계라 하였다. 세상에 '파도'나 '바람'이라는 단어를 떡하니 눈앞에 가져올 수는 없지만, 여전히 우리가 사용하듯 말이다.


그렇다면 눈앞에 가득 찬 바다와 바람의 흔적은 당최 무엇인가 말이다. 어느 한 곳 빈틈없이 크고 작은 물결을 만들지만 어느 것 하나 멈춘 것 없고. 파도가 줄지은 모습이 참 변화무쌍하다 싶으면서도 참으로 나란하고. 빛을 받아 드러나는 파도의 윗머리가 있는가 하면 아래의 움푹 파인 곳. 그 아래 끝없이 역동할 심연도 있으니.


없다고 하기에는 분명 있고, 있다고 하기엔 그 흔적을 짚을 수 없는. 불교에서는 바다 표면에 비친 삼라만상의 모습을 '해인(海印)'이라 한다. 쉼없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파도의 성실함. 끝없이, 빈틈없이 가득찬 바람과 햇빛의 충만함. 이러한 쉬지 않는 완전함에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거대한 묵묵함. 부처님은 과연 제주의 바다에도 계시구나, 하였다.


인생의 방향이 묘연하여 막힌 듯할 땐 하늘과 바다의 묵묵한 성실함을 떠올려야겠다고, 한점 게으름 없는 성실함을 묵묵히 등에 지고 있을 저 아래의 검은 땅을 본받아야겠다고, 다짐하였다.


-


이런 감상에 젖어있던 차.


찰칵! 찰칵!


휴대전화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 문득, 문득, 감상을 방해하더라. 절벽가에 있던 사람은 나와 아내 둘 뿐인데, 나는 풍광을 보느라 넋을 잃고 있으니 범인은...




뒤돌아보니, 허허허, 아내는 내가 바다를 보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바다 앞에 선 나의 뒷모습을 연신 찍고 있었다. 사진은 잠시 후에 찍자고 하였으나, 허허허, 결국 사진 찍는 소리에 놓치기 싫었던 감상을 툭툭 끊어 내어주고 말았다.


-


잠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언덕을 내려가는 길. 내리막길 경사에 조심하라 아내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내는 손이 참 작다. 작고 말랑하다.


아내의 손을 잡고 언덕길을 내려가다, 아내 뒤로 보이는 파란 바다를 보자 아까의 감상이 떠올랐다. 그러자 사진으로 감상을 방해받던 감정도 잇다라 따라왔다. 모자란 나는 결국 아내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

아까 저기 바다 앞에서 말이죠. 사진 찍는 것이 대체 뭐길래, 이런 풍경을 감상하는 순간을 방해하면서까지 찍었어요? 사진은 나중에 포즈나 표정을 꾸며서라도 찍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 순간의 어떤 감상과 밀려오는 감정은 일부러 구현할 수가 없단 말이에요. 사진은 나중에 찍자고 말씀드렸는데...


어떻게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자연을 두고, 소리와 냄새와 온도와 바람의 촉감과 기분, 이 모든 걸 다 갖춘 것이 자연인데, 이 자연이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기다린 시간이 그야말로 수억 년일 텐데, 그 자연을 앞에 두고 오직 단 일순간의, 그것도 오직 시각 하나만을 손바닥만한 화면에 가두는 것을 우선한다는 게... 그게 참...


저의 모습을 좋게 보아주시고, 그래서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을 내어주신 건 정말 이쁘게 생각합니다. 감사해요. 진심으로. 그렇지만 앞으로 같이 살아갈 날이 많은데, 그 살아갈 날에 제가 좀 더 좋은 사람으로서 곁에 남으려면, 저는 사진이 아니라 이런 감상의 시간에 푹 잠겨드는 것이 필요해요.


남는 게 사진이라고 사진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그 사진이 '추억'이 되어야 하잖아요. 추억을 먼저 생각합시다 우리.

"


-


신혼여행지에서, 신랑을 이쁘게 보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한 신부의 마음을 몰라주고 잔소리를 했다 눈살을 찌푸릴 분들이 많겠으나, 나는 나의 신부를 알기에, 나의 신부도 나의 마음을 알기에,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을 나는 다시 알기에 '잔소리'를 한 것이다.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이니까.


아내는 나의 손을 잡고 언덕을 내려가며 말씀하셨다.


"

음, 알겠어요. 사진 찍기 싫어하는데도 억지로 찍어서 미안해요. 사진은 나중에 찍어볼게요.

"


그리고 이어 나를 보며 말씀하시기를


"

그런데요, 저한테 방금 해준 얘기, 글로 써주면 안 돼요? 되게 좋은데.

"


-


나의 속 좁은 잔소리를 글로 남겨달라는 아내를 보았다. 내리막길을 밟아가는 데 여념이 없는 모습. 그런 아내 뒤로 파란 파도가 여지없이 보였다.


길게 싫은 소리를 늘어놓는 속 좁은 나와, 짧고 투명한 말로 나의 좁은 속을 단번에 '좋은 얘기'로 돌이키는 아내. 파란 바다가 눈초리를 주는 듯하다. 쯧쯧. 아직 공부가 멀었다고.


『중용(中庸)』의 말씀으로 '군자의 도는 넓고 또 은미 하다(君子之道費而隱)'라 하였다. 멀고 넓은 바다만 보고, 가까이 손잡은 아내는 보지 못하였나 보다.


아내는 그중에 나의 좁은 속을 밝게 해 주었으니. 보살과 군자가 어디 멀리 있던가. 그리하여 이 글은 보살님께 올리는 공양으로, 군자에게 올리는 공경의 마음으로, 그리고 좁은 속의 반성으로 쓴다.


-


우리 부부가 터키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평행세계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설사 있다 하더라도, 제주를 다녀온 현실에 나는 더 기쁘다.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을 모시고 사는지 알게 되었으니. 더없이 기쁘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간예정알림] 이 날이 오고 말았습니다. 두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