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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가벼운 수필을 씁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인사 올리는 것 또한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그간 글을 꾸준히 올린다고는 하였으나 그마저도 드문드문 뭉터기로 쓴 것이었고, 썼다고는 하나 아주 오래된 글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 수준이었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저는 우선 신혼 생활을 무탈히 하는 중입니다. 때때로 다투기는 하지만, 뭐, 다투는 게 무서워 속에 꽁꽁 묻어두고 지내지는 않고 있습니다.
다행이죠. 다투고 화해하여 돈독해지는 부부지교를 배워가는 중인 듯합니다. 물론 다투기 전에 다툼을 피할 수 있는 조용한 지혜(눈치)도 늘어가는 중입니다.
부끄럽지만 글에는 소홀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소홀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이런저런 일이 동시에 닥쳐 그에 맞춰 변화를 꾀하다 보니 이전과는 글의 결이 달라졌음을 인정해야겠습니다.
작년 가을즈음 '마누스 출판사'에 투고한 저의 글이, 새 가을을 맞아 곧 세상에 나오게 되니 이만저만 할 일이 많더군요. 글을 보낸 가을과, 글이 돌아온 가을 사이에 저 자신이 달라진 탓이겠지요. 오랜만에 만난 이 녀석이 어찌나 낯설어 보이는지.
당시 최선으로 쓴다고 썼다는 글이 지금 보니 허술하고 엉성하고 남루해서는, 여기저기 고치느라 진이 빠졌지 뭡니까.
'퇴고'라는 것이 단순 윤문이 아니고, 어쩌면 글을 쓰던 시절의 나를 글을 쓴 후의 내가 직면해야 하는 부끄러움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허허. 부끄러움임과 동시에, 앞으로 또 다가올 다음 가을엔 다시 부끄러우면 안 될 텐데... 하는 우려이기도 했습니다.
퇴고가 한 번이면 참 좋을 것을. 여러 번 퇴고를 거쳐야 하니 이런 곤혹함이 또 여럿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브런치에서는 '응원하기' + '연재' 시스템 테스터로 감사히 선정해 주셨더랬죠. 이에 저의 욕심으로 덜컥 '연재'를 하겠다 응답하였는데...
제가 올해 또다시 고3 담임을 맡으며 꾸준히 특정 요일에 특정 주제로 특정한 글을 쓰는 것이, 게다가 5월, 6월 즈음은 괜찮겠으나 7월, 8월 즈음엔 입시철이라 한창 바쁠 것을 생각 못했지 뭡니까. 하...
저는 어쩜 이렇게도 아둔한지.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일. 이전에 쓰지 못한 글을 다시 꺼내보자. 하여 "쓸모 없는 수학"을 들고 나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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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의 "응원" + "연재" 참여 후기를 짧게 말하자면... 저는 이제 참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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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안면몰수하고 "쓸모 없는 수학"에 대해 좀 더 얘기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이러쿵저러쿵 하고픈 말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이야기들은 저의 "쓸모 없는 수학" 브런치 북을 읽어보아 달라 권하는 말로 대신하며...
제가 이 불운의 "쓸모 없는 수학"에 대해 꼭 하고픈 얘기면서도 책에서 충분히 풀지 못한 얘기가 있으니, 바로 제목에 대한 생각이지요. 왜 하필 쓸모 "없는"이라 지었는가.
요즘 "쓸모" 시리즈가 꽤나 많이 나옵니다. 최근에도 "역사의 쓸모"니, "미적분의 쓸모"니 하는 "~의 쓸모" 시리즈가 줄을 잇고 있지요. 우선 조금 억울하기도 한 것이, 제가 "쓸모 없는 수학"이라 제목을 지은 것은 이러한 책들이 세상에 출판되기 이전이라는 겁니다.
"~의 쓸모"에 반대급부를 노린 것이 아니라, 제가 그저 한 발 늦었달까요. 하. 참 아쉽습니다... 한 발 늦음이 아쉽고, 저의 글솜씨가 모자라 당최 저의 글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던 일이 아쉽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의 쓸모"를 읽고 쓸 때 저는 왜 "~의 쓸모 없음"을 이야기했나... 는 속마음은 다음의 일화로 대신하려 합니다.
최근에 '이세돌'씨를 만난 날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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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제가 사는 지역의 커다란 컨벤션 센터에 '과학대전'이라 하여, 과학/기술 체험전이 크게 열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마실 겸 저의 아내와 함께 갔더랬지요.
이런저런 볼거리를 본 뒤 집으로 돌아가려던 차에 우연히 '이세돌 특강'이라 써진 입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딱, 제가 입간판을 본 시간에 강연이 시작되겠더라고요.
제가 언제 이세돌 씨를 직접 볼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내를 꼬드겨 강연장으로 호다닥 올라갔고, 보았지요. 그분을. 이세돌 씨를.
이세돌 씨는 은퇴 후에 '보드게임'을 만드셨다고 합니다. 강연장에서는 본인이 제작한 보드게임을 선보이셨어요. "보드게임과 전략 그리고 생각하는 힘"을 주제로 강연을 하셨죠.
강연이라고는 하였지만, 두 시간 예정된 강연시간 중에 대부분은 보드게임의 규칙을 듣고 체험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세돌 씨 본인이 생각하는 바둑과 보드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20분 남짓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야기라고는 하였지만, 20분 정도의 강연 중에서도 15분 정도는 질의응답이었고 5분 정도가 이세돌 씨 본인의 강연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 5분이 어찌나 강렬했던지요. 제가 누군가의 팬을 자처한 사람이 여태껏 없었는데, 이세돌 씨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팬이 되기로 했습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세돌 씨의 말을 저의 말로 옮겨보자면 이렇습니다. 이세돌 씨 본인은 어릴 적 바둑을 예술로 배웠다고 합니다. 하나의 문화고, 예술이고, 어떤 경지로써 바둑울 배웠다는 것이겠지요.
그랬던 바둑이었는데. 요즘은 바둑을-추상 전략을 '창의성'이니 '사고력 개발'이니 하는, 어떤 수단을 위해 바둑을 배운다는 걸 안다고 합니다.
거기에 덧붙여 말씀하시기로 바둑이 예술인 이유는 창의성과 사고력, 기억력 같은 지적 기능의 극한에 바둑이 있기 때문이 아니며, 그러한 지적 수준의 궁극점에 '배려'와 '존중'이 있음을 알게 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상대를 이기려 갖은 수를 생각해 내고, 그렇게 끝끝내 승리했을 때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와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이 전략이 다 무슨 소용이겠냐고요.
참으로 맞는 말이죠. 상대를 '이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습니까. 나의 적수를 깔아뭉개고, 짓밟고, 그 위에 군림하듯 서서 "내가 너보다 낫다"는 식의 생각이 '이긴다'는 말의 결론이라면, 다음 판은 누구랑 두겠습니까? 상대가 없는 전략이란 무슨 쓸모겠습니까?
이긴다는 마음에 배려와 존중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그런 식의 승리를 위해 창의성이니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면, 이에 일조하기 위해 바둑을 가르치려 한다면, 그런 바둑은 차라리 안 가르치느니만 못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자신은 자신의 아이들이 바둑을 통해 상대를 품는 이김을 가르치고 싶었고, 그런데 바둑이 너무 어려우니 조금 접근하기 쉬운, 그런데도 여전히 심오한 보드게임을 만들고 싶었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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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쿠팡에서 "그 보드게임"을 곧장 질러버렸다는 것을 알립니다. 아, 참 재밌더라고요.
아무쪼록, 이런 연유로 "쓸모 없는 수학"이란 제목을 달았고, 연재를 했고, 완결을 다시 내었고, 이제야 다시 인사 올리는 글을 쓰게 된 것이죠.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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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다가오면서 잠시 학교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 좀 쉬어볼까 했더니, 이제 기다리던 책이 세상에 나온다고 하니 두 근 반 세 근 반 설레는 일이 생겼네요.
책 한 권에 이렇게 (저 자신을 제외한) 많은 분들에게 의탁하고, 감사해하고, 그 노력에 감탄하게 되다니. 감독과 배우만 보고 영화를 감상했던 저를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앞으론 되도록 크레디트를 꼭 끝까지 챙겨보려고요.
아쉬운 것은, 영화 한 편에도 노력하여 촬영하였으나 다 담지 못한 비하인드 컷이 있듯 이번 책에도 그런 에피소드들이 더럿 있다는 것입니다. 이름 붙이길 "분량 조절 실패 에디션". 우리말로 하면 "분량 조절 실패분".
하여 출간 예정일까지 "분량 조절 실패분"을 게시하려 합니다. 기존에 브런치에 게시되었던 글도 있고, 이번 책을 위해 새로 쓴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보셨던 글은 조금 달라진 모습을 기쁘게 읽어주시기 바라고, 새로 보시는 글은 새롭기에 즐겁게 읽어주시기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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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출간 예정일은 11월 22일입니다. 숫자가 참 이쁘죠? 11, 22라니. 귀엽습니다. 하하.
일부러 맞춘 건 아니고, 또 어떻게 하다 보니 숫자가 이쁘게 만들어졌네요. 하하하.
여러분 덕분에 제가 '작가'라 불려도 보고, 참 기분 좋은 시절입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