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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나라 Nov 11. 2020

퇴근하고 뭐해? - 자괴감 편

#5 독립은 자유 시간을 책임지는 일

퇴근하고 집에 와서 밥만 먹어도 9시다. 그래도 비교적 늦게 잠자리에 드는 나에게는 약 4-5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이 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특별히 일이 많지 않은 날이면 2-3시간은 보장될 것이다. 잠을 줄여서라도 자유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핸드폰도 충전기에 꽂고 나면 드는 허무한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각자의 일과에 - 그것이 회사를 가는 것이든, 공부를 하는 것이든 -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아마도 그 감정은 자신의 루틴한 일상에서 오는 것이겠지만 적지 않은 경우로 그 자유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뿌듯함과 자괴감을 오가기도 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나는 무얼 했지? 오늘 나에게 남는 건 무엇이지? 하면서 말이다.

나는 퇴근하고 일정하게 무얼 했던 적은 없는데 뭔가를 하긴 했다. 자괴감 드는 하루부터 뿌듯한 하루까지 지극히 주관적인 레벨에 따라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번은 자괴감 편! (쓰면서도 왜 이런 걸 정리하고 있지 자괴감이 드네)

유튜브 - 자괴감 상
나는 밥 먹고 바로 눕는 습관이 있다. 근 몇 달 간은 저녁을 먹자마자 바로 누워서 유튜브를 몇 시간씩 본 날이 많은 것 같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먹은 거 치우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너무 피곤하고 힘든 하루였을 수록 이런 경우가 많았는데 이러면 문제가 옷도 안 갈아입고 누워버려서 이대로 잠들 수도 없고, 알고리즘의 축복을 받아 추천되는 온갖 유튜브 채널을 오가다 보면 잠도 깨버려서 결국 새벽 1시 넘어서 씻고 늦게 잠에 든다는 점이다.

사람들 사는 얘기는 즐겁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그 어디보다 유튜브에서 가장 잘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남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남의 얘기고 세상은 바삐 돌아가고 있는데 나만 할일없이 남들 잘 사는 거나 보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적어도 나에게는 유튜브가 가끔 그런 공간이다. 재밌는데 그만 보고 싶다. 근데 그게 잘 안된다. 중독이려나? 물론 순기능도 정말 많다. 마케터로서 없어서는 안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확증 편향이나 아예 생각을 멈추게 하는 부작용도 생긴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다.

넷플릭스(드라마) - 자괴감 중
이것도 사실 최악인데, 아무 의미 없게 느껴져서는 아니고 자칫 한 편만 볼까 했다가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어서다. 드라마를 시작하면 꼭 끝까지 보고 싶어서 날밤을 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주말 말고는 안 하기도 한다. 올해 한 번 켰다가 끝까지 보게 된 드라마는 보보경심 려와 보건교사 안은영. 정말 명작이다. 드라마 얘기를 사족으로 여기에 왕창 써놓고 싶어 질 정도다. 이렇듯 시간을 잡아먹긴 하지만 한 번 애정이 간 드라마는 쉽게 이야기도 까먹지 않고 나중에 언젠가 허구의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괴감은 뭐, 해 뜨는 거 보면 좀 많이 들긴 하지만 나름 괜찮은 수준이다. 한두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하루이기도 하고.

영화 - 자괴감 하 (?)
제한된 시간에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감독, 작가, 배우, 기술자, 아트 디렉터, 사운드 디렉터 등의 협업은 얼마나 고귀한가! 반복되는 하루의 끝에서 어떤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사랑의 감정이 피어오르기도 하고,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고 영상과 이야기의 힘을 또 새롭게 깨닫기도 한다. 근데도 나는 왜 퇴근 후 일과 중 영화 보는 날을 자괴감 카테고리에 넣었을까? 시간도 딱 한 편 보면 자야 될 시간이어서 딱 좋은데. 그냥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다. 이 사람들인 이렇게 걸작을 만들어내는데 나는 왜 못하나.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그저 창작 예술의 영역 중 현재 대중이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분야에서 잘되는 사람들을 보면 멋있고 나 자신과 비교가 된다. 단지 그 이유다. 뭐라도 하고 부러워해라. 이런 생각이 들면서 더 자괴감이 든다고 해야 하나? 아 그리고 별로인 영화를 보면 그거는 그거 나름대로 시간 낭비 같다.


오늘 이 글도 자괴감 레벨 상인 유튜브를 주구장창 2시간 정도 보다가 자괴감이 만땅 찬 상태에서 쓴 글이다. 그래서인지 깊이도 없고 의미도 없을 수도. 근데 신기한 건 쓰고 나면 뭔가 부끄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놀랐다. 막상 쓰고 보니 나의 자괴감이 어디서 오는지 잘 보여서 오히려 좋다. 뿌듯함 레벨에 따라서도 생각해보는 중인데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을 거 같은 생각도 든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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