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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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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나라 Jul 26. 2020

혼자 사는 나는 많은 걸 죽인다, 혹은 그럴 수 있거나

#4 독립은 무관심이 무섭다는 걸 알게 되는 일

혼자 사는 나는 식물을 죽인다. 처음 집에 데려올 때 잎이 12개 나있던,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는 고무나무가 이제는 잎이 3개밖에 남지 않았다. 그마저도 수분이 거의 없는 상태다.


책장을 안으로 옮기면서 같이 창문으로부터 멀어진 게 원인이다. 힘 없이 죽어가고 있는 걸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실내에서 이미 죽어가고 있는 아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엄마는 말했다. 이제와서 창가 쪽으로 옮겨도 마찬가지다. 새 잎이 날 둥 말 둥 한 게 한 달 정도였는데 밑에 잎이 힘을 잃고 우수수 떨어지자 자기도 힘을 못쓰겠는지 이내 줄기와 함께 말라가고 있다.

매일 이 아이를 보는 게 힘이 든다. 병실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매일 아침 이 아이를 확인한다. 이제야.

혼자 사는 사람의 무관심은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사람의 무관심보다 무섭다. 나쁘다. 힘이 세다? 아무도 무관심을 타일러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까먹으면 다른 사람이 챙겨줄 수 있는 구석이 없다. 혼자 사는 사람의 무관심은 오래도록 고여서 소중한 것을 말라비뜨려버려야만 그 존재감을 알린다. 무관심하다는 사실에 무관심하지 않기가 어렵다.

고양이를 키워볼까 해서 유기묘 입양 공고를 인터넷으로 확인한 적이 있다. 혼자 사는 직장인은 입양이 어렵다는 조건이 거의 모든 게시물에 붙어 있었다. 오래전 TV에서 혼자 대형견을 키우는 직장인이 나왔던 게 생각난다. 사람은 개를 입양하고 나서 우울증이 훨씬 나아졌다고. 하지만 대형견은 사람이 집은 비운 12시간 동안 문 앞에서 하울링한다. 집을 어지럽힌다. 슬퍼한다. 혼자 사는 사람의 무관심은 무섭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무관심도 마찬가지다. 쉽게 자신에 대해 무관심해진다. 아무도 알아채 주지 않기 때문이다 - 나의 우울, 분노, 심술, 작은 기분 나쁨, 지친 마음 혹은 기쁜 마음까지도.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과 함께 있는다 해서 더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서로를 너무 괴롭게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혼자 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 사는 나는 많은 걸 죽인다. 혹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함께 있어도 마찬가지일 수도. 어찌 됐든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죽이지 않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적어도 무관심으로 죽이는 일은 앞으로 더 이상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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