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만난 얼굴들
우리는 분리된 세상에 살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마주치기 어려운 세상이다. SNS에서 매일 마주치는 지인도 어떤 고민을 하는지 모른다.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을 만든 사람은 어플 속의 별점으로 기억된다. 일주일에 서너 번 받는 택배가 어떻게 오게 되는지 중요하지 않다. 이웃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알지 못하고 몇 년을 살 수 있다. 우리는 많은 걸 알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있다. 우리의 삶에 모르는 얼굴이 들어올 때가 있다.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얼굴을 마주할 때가 있다. 앞만 보고 살다가 문득 뒷 페이지를 봤을 때 놓치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 3월은 내게 그런 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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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나는 A 씨의 이름을 모른다. A 씨의 딸 이름만 안다. 번호를 받을 때부터 ‘하경이(가명) 엄마’로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도 모른다. 일 년 전 입주청소를 부탁하고 감사하다는 짤막한 말과 함께 계좌에 돈을 부쳤을 뿐이다. 그러다 이태원동에 있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 여러 가지 일로 바빴던 터라 새로운 사람을 알아볼 겨를도 없이 A 씨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태원동은 A 씨가 한 번도 입주청소를 해본 적이 없던 지역이다. 자전거에 청소 도구를 싣고 이동할 수 있는 성수동에서만 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A 씨는 내가 의뢰한 일을 받았다. 차가 없는데 어떻게 청소도구를 들고 이태원동으로 올 수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청소를 하기로 한 당일, A 씨는 전화를 걸어왔다. 00 교회 앞인데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었다. 나도 아직 이사 전이고 동네를 잘 몰랐던 터라 지도 어플을 켜고 캡처를 떠서 보내주었다. 한 시간 뒤 다시 전화가 왔다. 헤매다가 이제야 도착했다는 것이다. 지도 어플 상 00 교회와 우리 집은 5분 거리였다. A 씨는 아마도 지도 어플 같은 것은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A 씨는 대문 비밀 번호를 물었다. 나는 미처 대문 비밀 번호까지 파악을 못해 잠시 후 알려드리겠다는 말을 하고 끊었다.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그렇게 10분이 흘렀고 뒤늦게 비밀 번호를 알려주려 전화를 걸었다. A 씨는 화장실이 너무 급해 대문을 넘었다고 했다. A 씨는 그렇게 사는 곳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남짓, 골목을 헤맨 1시간, 그리고 4시간을 일하고 약속한 돈을 받았다. 이틀 뒤 입주한 집은 깨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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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일
사장님 B 씨는 직원 C 씨의 이름을 몰랐다. 함께 일한 지 3년째였다. 응급실에 있는 C 씨를 보러 가려면 코로나 19 때문에 입구에서 환자 이름 대야 했다. 그래서 그때 알게 되었다. 나도, 엄마도 우리의 일을 해주는 사람들의 이름을 그때 알게 되었다.
B 씨의 1톤 트럭에 있던 많고 많던 내 짐들이 어느덧 새로운 2층 집에 거의 다 들어왔을 때였다. 나는 집에서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짐을 느릿느릿 정리하고 있었다. 10만 원을 아끼기 위해 포장 이사가 아닌 반포장 이사를 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갑자기 쿵 소리가 들렸다. 계단 밑을 보니 C 씨가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올라오다 계단의 못에 짐이 걸려 구른 것이다. 내려가 보니 C 씨는 뒤통수에 외상을 입어 피가 눈까지 흐를 만큼 다쳤다. 나는 다시 집으로 올라가서 수건을 찾아 내려왔다. 그새 B 씨가 낡은 천을 쥐어주었다. 천을 뒤통수에 대고 있는 C 직원의 팔이 계속해서 떨렸다. 내가 잡아주겠다고 했지만 자꾸 괜찮다고 했다. 팔을 내리기가 더 힘들어서인 거 같기도 하고, 도움받는 게 익숙지 않아서인 것도 같았다. C 씨는 이건 병원을 가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좁은 골목에 있는 B 씨의 트럭은 앞에 있는 차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B 씨는 C 씨의 상태를 계속 확인하고 운전석에 앉아 담배를 계속 피우다가 앞에 있는 차에 화를 냈다. 마침 엄마의 차가 도착했고 상황을 들은 엄마는 신속하게 자기 차에 C 씨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B 씨는 병원에 C 씨가 일하다가 다쳤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거듭 말했다.
B 씨는 담배를 더 피우더니 남은 짐 정리를 했다.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이런 일도 다 있냐고 했다. 나는 짐은 나중에 정리해도 되니 이제 병원에 가보셔도 된다고 했다. 그는 묵묵히 남아 남은 일을 처리했다. 담배를 많이 피웠던 거 같다. 성수동에서 가격 흥정을 하던 사장님의 포스는 사라지고 회색빛이 된 얼굴만 남았다. C 씨는 값싼 원룸 이사 하루 일당보다 서너 배 많은 돈을 응급실에서 내야 할 것이었다. B 씨는 유일한 파트너 C 씨가 다치면 당장 내일 일에 차질이 생길 것이었다. 이 모든 건 그래도 B 씨가 괜찮을 거라는 전제 하에 일어나는 덜 불행한 불행이었다.
응급실 비용은 그날 B 씨와 C 씨의 일당을 합친 것보다 10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엄마가 반, 내가 반 부담했다. 그날은 돈이 중요했고 돈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C 씨 머리는 외상 외에는 다른 이상이 없었지만 어깨에 금이 갔다. 의사는 한 달은 쉬어야 한다고 했다. C 씨는 응급실에서 보호자를 부르지 않았다. 아들은 알면 걱정해서 안될 거라고 했고 아내도 밤 10시 넘어서 일이 끝나니까 못 부른다고 했다. C 씨 나이는 67세였다. 그는 늦은 밤 퇴원하며 통화로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B씨도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문장 끝 느낌표가 기억에 남는다. 영화배우 같은 외모에 영화 대사 같은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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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
일요일에 친구 D한테 카톡이 와있었다. D는 자살 충동이 너무 심하게 들어 제정신이 아닌 채로 병원을 찾았고, 어찌어찌 진정제를 맞고 집에 와서 주말 내내 잤다고 했다.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D의 전화를 급히 끊었던 다음날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방 한편에 앉아 D와 오랫동안 카톡을 했다. 상태를 묻고 일단 다음 주에 보자, 우리는 서로 봐야 하니 살아야 한다고, 그런 식으로 말했던 거 같다. 나는 그날 밤 자살 충동이 드는 사람 곁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오랫동안 서칭 했다. 괜찮은 정보가 없었다. D를 아프게 한 사람과 사회는 아무렇지 않고 D만 아픈 게 화가 났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나는 C 씨 사고가 났을 때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고 하는데 그날도 그렇게 하얀 얼굴을 하고 아무에게도 아무 일 없게 해달라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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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왜 하경이 엄마는 지도 어플을 모를까. 왜 차가 없는데 여기까지 와서 일을 할까. 왜 사장님은 이 상황에서 짐을 정리하려고 하지. 왜 직원은 일하다가 다쳤다고 말하면 안 되지. 왜 보호자를 부르지 않지, 이런 답답함. 내가 사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에 찬사를 보내는데. 사람들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데. 일단 사람이 다치면 얼른 병원에 같이 가서 왜 다쳤는지 말하고, 이후에 회사에 산재 신청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프면 가족을 부를 텐데. 내가 사는 세상에는 이런 것들이 당연하다. 그 세상에서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근데 이사하면서 마주친 A 씨와 B 씨와 C 씨는 그렇지 않다. 그들의 세상은 그렇지 않다. 개인에게 답답해할 일이 아니라 그런 세상에 화가 날 일인데 나는 왜 답답하다는 감정이 먼저 들었을까. 그만큼 나는 그들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알았지만 잘 몰랐기 때문에 알면서도 알지 못했다. 알면서도 모른 체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쉽게 제공받는 서비스 뒤의 얼굴을 잊어버린다. 거래이고, 나는 돈을 줬기 때문에 몰라도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쉽게 사람을 잊는다. 그리고 분리된 세계에서만 살아간다.
D의 안녕을 비는 마음에는 답답한 마음이 없다. D의 옆에 있었기 때문에 D가 살아온 세상을 이제는 조금 알기 때문이다. D와 나의 분리를 허물기까지도 10년이 걸렸던 거 같다. 이제는 D를 보면 D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세상이 답답하다. ‘왜’라는 질문은 D를 향하지 않고 세상을 향한다. 나는 A 씨와 B 씨와 C 씨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을까. E, F, G…그 외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사 이후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또 내가 마주치는 사람들 하고만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곳은 아늑하고 안전하다. 마음이 답답하지도 않다. 다만 일련의 사건들로 나는 자꾸만 내 삶에 있었다가 없어진 얼굴들이 생각난다. 가끔은 그들의 안녕을 빌고 싶다.
*아래는 3월 중순에 써둔 그림 설명
남산이 아주 잘 보이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삿날 예상치 못한 사고가 생겨서 밤이 무섭기만 했는데, 그때 사진을 찍어두었다.
우연히 올려다본 밤하늘은 이상할 만큼 파랗고, 하늘을 가리고 있는 집들은 서로 엉겨 붙을 듯 말 듯하며 도형을 만들고, 그 사이 남산타워가 놓여 있다. 또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구나 실감하는 순간.
아무 일 없게 해 주세요.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다. 너도 나도, 타인도 자신도 별일 없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은 별일이 일어나고 나서야 생기고 만다.
사진을 보면 그 마음이 자꾸 떠올라 부적처럼 그려두었다. 너도 나도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