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나라 Aug 30. 2021

나를 속이는 세상과 나 자신에게서 자유로워지는 방법

트릭 미러- 지아 톨렌티노

우리는 매일 거울 앞에 선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아를 확인하며,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만든다. 하지만 이 거울이 왜곡되었다면? 움푹 파이고 뒤틀려서 실재의 내가 아니라 전혀 다른 모습을 비추고 있다면? ‘나’라는 사람을 둘러싼 진실은 희미해진다. 그리고 그런 ‘나’가 여럿 모인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각광받는 1988년생 젊은 작가이자 현직 뉴요커 기자인 지아 톨렌티노의 책 <트릭 미러: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이하 트릭 미러)>는 ‘인터넷’, ‘리얼리티 쇼’, ‘자기 관리라는 트렌드’, ‘결혼’ 등 우리 사회의 왜곡된 거울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늘 접하는 것들이지만 이것들을 둘러싼 진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아주 적다고, 어쩌면 진실을 알면서도 스스로 그 ‘트릭(속임수)’에 넘어간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책에 담긴 9편의 에세이는 모두 혼란, 괴로움, 자기모순, 깨달음 등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느꼈던 감정을 기둥 삼아 쓰였다는 점이다. 온라인상의 단순한 해프닝이나 솔직한 감정에서 시작해 어빙 고프먼의 <자아 연출의 사회학>,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 등 굵직한 이론이 담긴 서적을 인용하며 깊이 있는 해석을 더하는 그의 글쓰기는 매력적이었다. (김금희, 김하나, 이슬아 등 내가 사랑하는 여성 작가들이 쓴 추천사만 봐도 읽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트릭 미러>에 담긴 어떤 에세이는 경험담을 듣는 것처럼 술술 읽히고 어떤 에세이는 같은 여성으로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며, 때로는 불편한 진실에 뜨끔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에세이는 무지 어렵기도 하다. 각자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가 다를 테니 처음에 포기하지 말고 재미있을 거 같은 에세이부터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여기서는 내가 인상 깊게 읽은 에세이 두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트릭 미러 추천사



인터넷 속의 ‘나’


책을 여는 1장 인터넷 속의 ‘나’는 인터넷에 관한 다섯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질문은 “인터넷은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팽창시키는가.” 톨렌티노는 모든 상호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관객 앞의 연극배우처럼 연기를 한다는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의 이론을 인용하며 인터넷도 오프라인처럼 하나의 무대로 작동하지만 오프라인과는 다르게 한숨조차 돌릴 수 없는 끔찍한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 정보가 추적되고 기록되며 기업에 판매되는 “거울과 메아리 그리고 팬옵티콘”의 구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소셜 딜레마라는 다큐를 추천한다.) 알고리즘과 맞춤 광고, 내가 팔로우하는 것들에 의해 ‘나라는 우주’가 팽창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나 중심으로 귀결시키며 오히려 그곳에 갇히게 된다. 책의 부제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과도 이어지는 내용이다.


두 번째 질문은 “인터넷이 어떻게 나의 의견을 과대평가하도록 부추기는 가”이다. 사람들은 바쁘다.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정치 참여를 적극적으로 하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톨렌티노는 인터넷이 이런 상황에 “싸구려 대안”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마치 그런 정치적인 참여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논평가들의 행위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한다. 백인 모델만 쓰다가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일환으로 인스타그램에서 블랙아웃 화요일 캠페인에 참여하면 정의로운 기사가 되는 줄 알았던 기업들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인터넷은 어떻게 우리의 적대감을 극대화하는가”라는 세 번째 질문은 공공의 적을 만들면서 증오를 조장하는 인터넷 사회를 조명한다. 한국의 젠더 갈등, 온라인상 남성들의 백래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네 번째 질문은 인터넷과 연대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질문에서 언급한 “모든 일에 나를 적용”하는 인터넷의 특성 때문에 연대가 정치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로 빠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흑인들의 호소에 “그럼 아시아인은?”이라고 말함으로써 연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예가 될 수 있다. 정치적인 것이 반드시 개인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터넷은 이 점을 잊게 한다. 한편 미투 운동처럼 개개인의 피해 경험을 드러내는 행동은 긍정적인 변화를 이룰 수도 있지만 해시태그 같은 방식 때문에 경험의 다양성을 오히려 가린다고도 비판한다. 마지막 질문은 “인터넷은 어떻게 규모의 감각을 망가뜨리는가”이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수많은 희극과 비극을 마주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둔해졌다. 인스타그램에서 나에게 던져주는 코미디, 귀여운 강아지, 슬픈 드라마 영상을 보며 울고 웃고 하다가 자기 전 ‘그래서 내가 뭘 본 거지?’ 하며 멍해지고 마는 내 자신이 떠올랐다.


일어나서부터 잠들기까지, 단 한 순간도 우리와 떨어지기 어려운 인터넷. 우리는 이 무서운 왜곡된 거울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지아 톨렌티노가 1장의 마지막 문단에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잊지 않기 위해 첨부한다.




언제나 최적화 중


‘최적화’라는 단어는 소셜 미디어 광고를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을 거다. 간단히 말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이 상품이나 서비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광고 게시물을 도달하게 하거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을 최적화라고 한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 광고뿐만 아니라 일상의 행동도 늘 최적화하려고 한다. 밥을 사 먹을 때, 운동을 할 때, 사람들과 대화할 때마저도 최소한의 비용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왔는지 따진다.


지아 톨렌티노는 3장 언제나 최적화 중에서 최적화의 개념을 여성의 삶에 빗대 바라본다. 남자친구에게, 남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가꾸는 단순한 개념의 ‘이상적인 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적화된 여성’은 성공적인 커리어가 있고, 가끔 친구들과 호캉스를 즐기며, 멋지고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위해 운동한다. 그녀는 효율적으로 자기 이미지를 가꾼다. 그리고 톨렌티노는 이런 여성들이 페미니즘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 친화적으로 변하고 주류 존재 방식이 된 페미니즘과 쉽게 공존한다”고 말한다. 최적화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여성은 자신의 설계자가 자기 자신이라고 믿기 때문에 자본주의 페미니즘이 만들어낸 굴레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당시 주류 페미니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톨렌티노는 바레(Barre, 필라테스와 발레를 접목한 운동)를 했던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짧은 시간에도 높은 운동량을 자랑하는 바레는, 체력은 물론 외모까지 보장해주는 최적화된 운동이다. 바레는 미국에서 큰 인기가 있다지만 나에게는 생소한 운동이었는데 에세이를 읽다보니 한국에서 말하는 ‘다이어트 필라테스’, ‘다이어트 요가’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헬스, 필라테스, 요가를 모두 해봤지만 건강한 허리라든가 좋은 체력이라는 나의 본래 목적과 다르게 항상 “이번 여름에는 꼭 애플 힙을 만들어야죠!”, “바디 프로필 찍어봐야죠!”라고 말하는 강사들이 생각나는 글이었다. (그런 말은 정말 싫지만 나도 모르게 좀 더 엉덩이를 조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유튜브에도 유독 여성 운동 영상 중 특정 부위 살을 뺄 수 있는 ‘필라테스’ ‘요가’ 동작들 추천 영상이 넘쳐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건강하기 위해 운동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여성들이 자신을 가꾸는 행위에 미용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자기 관리라는 허울 좋은 단어가 생겼다. 톨렌티노가 말하듯, 주류 페미니즘의 ‘몸의 긍정’이라는 운동에도 어두운 면은 있다. 어떤 모습이건 자신은 아름답다는 인식은 중요하지만, “왜 우리 문화는 그 반대 방향은 상상하지 못할까?” 신기하게도, 나오미 울프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에 따르면 여성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외모에 대한 기준은 상승한다. 여전히 미(美)는 여성에게 권력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여성들은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소비하며 미모 관리를 “세 번째 직업”으로 삼고 있다. 탈코르셋 운동은 이런 행위와 사회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선택으로 자기 관리를 하고 있다는 자기기만, 트릭 미러에서 벗어나려면 우리가 정말 최적화해야 하는 대상을 찾아야 한다. 3장 ‘언제나 최적화 중’은 다소 엄격한 페미니즘적 입장으로 읽혔지만 미국의 사례 못지않게 여성을 대상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한국의 운동, 식품, 에슬레저 산업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가 최적화에 상대적으로 노력을 덜 기울이고 있는 대상에 대해서도.



매거진의 이전글 필기구에 관심 없는 사람도 색은 많을 수록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