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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나라 Dec 03. 2021

슬프고 멋지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하미나

슬프고 멋지다.  책을 덮고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가끔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불 꺼진 방 안에서 혼자 꺼이꺼이 숨이 가빠질 때까지 울 때, 열의에 가득 차 있다가 다음날은 또 모든 다짐을 잊고 무기력하게 살 때, 자존감을 채우려고 여러 남자와 만날 때가 그렇다. 이럴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같고 더 이상 살기 싫어진다. 주기를 기록해보니 대략 반년에 한 번 정도 이런 시기가 찾아온다. 그러다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간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런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늘 주변 환경 덕분이었다. 친구, 가족, 애인, 나쁘지 않은 경제적, 정서적 상황... 그래서 난 감사하다. 나를 끌어당기는 어둠 속에서 늘 손을 뻗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물론 나를 계속해서 살게 하는 무언가 - 나에게는 글쓰기와 그림이었던 것 같다. 힘들 때마다 일기장을 펼치거나 그림을 그리다 보면 차분하고 온전한 상태가 됐으니까 - 를 능동적으로 찾으려고 했던 나 자신에게도 감사하다.


이제는 정신 질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 듯하다. 기성세대에게는 정신 질환이란 대처할 수 없는, 그래서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괴롭게 하는 병이었다. 하지만 내 또래들의 경우 스스로 정신과를 찾거나 가족의 손을 잡고 정신과를 데려가는 등 치유의 가능성을 믿고 능동적으로 길을 찾고 있다. 언젠가 나도 아무도 손 내밀어주지 않거나 나도 내 자신을 포기하게 된다면 병원을 찾아가면 될 거라는 생각이 날 편안하게 한다.


감기에 걸렸으면 내과를 찾듯이 정신병에 걸리면 정신을 치료하는 병원에 가면 된다. 물론 평생의 트라우마나 일상적인 활동을 불가능하게 하는 오래된 병을 일시적인 감기에 비유하기는 어렵다. 병원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다. (의사가 이상한 말을 해 더 깊은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내 마음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낀다면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받을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 좋은 일이다. 병든 마음을 온전히 내 탓으로만 돌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면 최악의 경우를 막을 수 있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무언가가 나타나 주지 않는다면 누구나 쉽게 미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 질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달라져야 한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꽤나 많은 수식어가 붙은 이 책은 우울증에 대한 책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우울증을 다룬다. 저자가 스스로 조울증을 앓은 젊은 여성인 까닭에 개인적인 경험을 확장시키려는 이유도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을 접했을 때 한 기사가 떠올랐다.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급증한 현상에 관한 기사다.


관련기사: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20185) ​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2000년대부터 꾸준히 들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지만, 20대 여성의 자살률의 증가폭은 주목해야 할 이례적인 지표다. 2019년 20대 여성 자살률은 전년 대비 25.5% 증가했으며 2020년 상반기 여성 자살률은 전년 동기 대비 43% 급증했다. 왜 더 많은 젊은 여성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젊은 여성들의 실업을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는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이들이 타격을 받았지만 20대 여성의 실업률은 7.6%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사회는 조용하다. 우리는 이것을 ‘조용한 학살’이라고 부른다.


저자가 생각하는 원인은 코로나19로 인한 실업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의 당사자이자, 성실한 기록자로 2030의 우울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한다. 그는 1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총 31명의 인터뷰이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당연히 비극적이고 우울하다. 끔찍한 가정폭력과 데이트 폭력의 경험을 담아냈기 때문에 믿고 싶지 않은 실화 바탕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준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우울증에 대한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서사는 그 자체로 모두 소중하지만, 우울증을 둘러싼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터뷰이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사건사고처럼 파편화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이들의 이야기를 엮어 우울증의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1부 <나의 고통에도 이름이 있나요>는 여성의 우울증을 역사적, 의학적 맥락에서 탐구한다. 우리는 흔히 뜬금없이 화를 내는 사람, 특히 여성을 보고 ‘히스테리’ 부린다고 말한다. 이 히스테리가 ‘자궁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의학이 발달하기 이전, 그러니까 기원전 1900년 경에는 여성이 광기를 보이는 이유를 자궁이 몸속을 돌아다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더란다. 이때의 인식보다는 당연히 낫지만 여전히 정신의학 교과서에서 여성의 우울은 생리적인 요인(성호르몬)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정신병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사회문화적 요인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에 대해 알 수 있는 장이었다.


2부 <죽거나 우울하지 않고 살 수 있겠니>는 인터뷰이들의 파편화된 기억들을 모아 가족, 연애, 사회에 우울증의 책임을 묻는다. 2부가 특히 읽기 괴로웠던 건 내가 아는 여성들의 얼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피해자이면서 2차 가해자인 엄마,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끔찍한 폭력 사이를 오가는 애인, 꽃이라고 치켜세우는 동시에 대상화와 착취를 서슴지 않는 사회… 내가 아는 여성들도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힘들어했다. 나도 모르게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무조건 미워하고 끊어낼 수 있다면 애초에 우울증 같은 질병은 없을지도 모른다. 의존과 증오를 반복하다 지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게 우울증이 아닌가 생각했다.


3부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수 있다면>은 구체적인 희망에 대해 얘기한다. 돌봄 공동체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사회가 해야 하는 것들을 풀어나간다. 저자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서 돌봄 공동체를 제안하지만, 나는 이게 어쩌면 더 많은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으로 들리기도 했다. 나를 삼키는 어둠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늘 손 내 미는 이들이 있었기에 빠져나올 수 있었듯이, 사회적으로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공동체를 강화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사는 여성으로서 나는 요즘 1인 가구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한다. 이것은 결국 위험에 대한 얘기기도 하고, 외로움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모두가 겪는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얘기하고, 최악의 경우로 가지 않도록 예방책이 필요하다. 서로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가끔은 괜찮은지 서로 확인할 수 있는 ‘느슨한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피스텔이나 원룸 빌딩에 공동 공간과 생활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등의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신생 아파트나 오피스텔의 경우 이러한 시도들이 많이 보이는데 모두 주거비가 어마어마한 곳들이라 결국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것도 가진 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회는 말한다. 미친 여자는 괴상하다. 똑똑한 여자는 오만하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얼마나 다채로운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시사점을 주는가. 슬프지만 멋지다.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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