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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나라 Oct 03. 2021

우리는 왜 살아남았을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을 오해했다. 사람들은 다윈이 펴낸 진화론 저서인 <종의 기원>을 근거 삼아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며, 약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적자생존이란 말 그대로 ‘가장 적합한 자가 살아남는다(Survival of the fittest)’는 개념이다. 살아남는 자가 살아남는다. 동어반복인 셈이다. 실제로 다윈은 <종의 기원> 5판에서야 이 단어를 도입했고 적자란 ‘국소적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 임을 명확히 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저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이 적자의 개념을 다정함이라고 정의한다. 다정함이란 집단 내 타인에게도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능력,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대중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적자’의 개념을 ‘다정함’이라고 재정의한 것이다.


이 책의 핵심어는 ‘자기 가축화’다.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기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모두 열등했던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사람 자기 가축화 가설을 통해 증명한다. 말 그대로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 ‘가축화’되었다는 뜻인데, 여기서 가축화는 순종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 줄어들고, 협력적으로 행동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 종은 높은 관용을 통해 보상을 얻는 사회를 만들었으며, 신체적으로도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하고 하얀 공막이 생김으로써 서로를 공격의 대상이 아닌 협력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다정함’이 종의 생존에 유리하다는 생각은 흥미로웠고 동의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만나본 적 없는 타인들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기도 하며 경제적, 정서적인 지원을 하기도 한다. 타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적대적으로 대한다면 지금과 같은 평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정함은 신뢰의 범위를 확장해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


하지만 이 ‘다정함’은 저자가 지적하듯 우리가 서로에게 행하는 잔인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집단 내 타인에게는 친절을 베풀지만 외집단에 대해서는 인간 이하의 존재로 바라보거나 그들을 향한 폭력과 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책은 이 경향을 ‘비인간화’라고 설명하는데, 특정 집단에게 위협을 느낄수록 강해진다고 설명한다. 사회심리학자 누어 크테일리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은 무슬림을 가장 비인간화되었다고 여기며, 멕시코 이민자,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유럽인 순으로 가장 인간화되었다고 평가했다. 한국에서 이 조사를 실시해보면 어떨까? 시사인과 한국리서치가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지금 중국 사람에 대한 감정 온도가 가장 낮다.

(관련기사: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821)


나도 한때 중국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적이 있다. 한국에서, 유럽 여행 중에 마주쳤던 중국인들을 통해 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만들었고 그들을 ‘비인간화’했다. 모두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머릿속에 그런 중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없어졌다. ‘접촉’을 통해서였다. 한 명은 내 친구의 친구였고, 한 명은 학교 프로그램 중에 만난 사람이었다. 그들과 우연히 하루를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경계심을 내려놓고 어쨌든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자 나와 별다를 바 없는 20대 여성임을 깊이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 했던 혐오 발언에 대해 깊이 반성했다.


저자는 차별과 폭력을 없애기 위해 ‘접촉’을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 바람직한 도시의 모습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 도시는 다양한 민족, 인종, 성 정체성이 섞인 활기 넘치는 공동체를 이루는 공간이다. 나는 단 두 명의 중국인과 깊게 얘기할 기회가 생김으로써 내 안의 편견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렇다면 더욱 다양한 사람과 협력적으로 살아야 하는 환경이라면 어떨까? 책에서 언급한 도시계획자 마이 응우옌이 말하듯 노출은 관용을 창조한다. 건축가 유현준도 한 방송에서 광장과 벤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공통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강조한 것이다. 내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마주칠 기회가 없는 사회가 아니라 계속해서 접촉과 노출을 통해 내집단을 확장해가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안에는 다정함과 잔인함이 동시에 있지만 어떤 것을 더 우선시할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인간의 본성과 생존,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폭력과 혐오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힐 책이다.


여담)

이 책을 알게 된 건 엄유정 작가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였다. 책 제목과 찰떡인 작가님 그림 애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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