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리고 뜻밖의 결과들

by JS

대학교 시절, 남생이라는 남자가 나오는 소설을 읽었다. 의사는 자식을 의사로 만들고, 독립 운동가 할아버지를 두었지만 막노동을 하던 아버지를 둔 주인공은 결국, 일용직 노동자가 된다는 소재의 단편 소설이다. 많은 해석이 이뤄어질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이다.


과거 이런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서울대 진학한 학생들의 출신 지역을 보면 광주, 부산 같은 지방 도시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이들이 예측하듯 강남 3구 비율이 가장 높고 상대적으로 가구당 소득도 높다. '개천에 용 난다'는 불가능하다. 재물과 권력은 대물림된다. 머 이런 의기소침한 얘기들이 많았다. 부모님의 배경과 대학이 나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래도 어떤 대학을 가느냐가 인생에서 너무 중요한 게이트라서 다들 열심히 하지만 대학이 결정되면 공부를 접었다.


개인적으로 50대인 나는 점점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그 사람을 판단하는데 중요도가 떨어지고 있는 이 사회적 변화가 맘에 든다. 이제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해서 공부하던 시절은 끝났다. 직장에서 30살이 넘어서 공부를 시작해도 그것은 작을 수 있지만 삶에 영향을 가져온다. 그것이 작은 불씨가 돼서 나를 더 공부에 집중하도록 독려해 줄 수 있다.


장정일 작가는 세상에 공부가 휘둘리는 삶을 살지 않게 하면서 가장 평범하고 가장 적극적인 투쟁이라고 했다. 최재천 교수는 공부는 집을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영민 교수는 단테의 신곡으로 <공부란 무엇인가> 책을 끝냈다. "인생을 절반쯤 살았을 무렵, 길을 잃고 어두운 숲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거칠고, 가혹하고, 준엄한 숲이 어떠했는지는 입에 담는 것조차 괴롭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죽음도 그보다는 덜 쓸 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공부 안 하고 반세기를 살면 맞게 되는 세상을 말하나?


나의 공부 정의는 고단한 삶을 사는 직장인들이 일을 통해 회사에서 주는 업무도 수행하지만 나도 성장할 수 있고 그 경쟁력으로 회사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부의 정의가 어떻게 나열되건 상관없다. 공부를 통해 얻어지는 성과들로 나는 성장했고 순간순간 행복했다. 지금 성장은 멈추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항상 나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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