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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niciel Jun 13. 2021

62. 핫플레이스 주민의 빨래 원정기

세탁기 너까지 나를 힘들게 하지 마

해방촌에 처음 가보게 된 이유는 빨래 때문이었다. 이태원으로 처음 이사하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혼자 생활하니 빨래 거리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빨래를 하고는 했다. 또 저녁에는 퇴근하고 돌아오면 시간이 늦기도 해서 세탁기를 사용하는 일이 꽤 신경 쓰였다. 건물의 벽이 얇아서 밤에 옆집에서 수도를 사용하거나 세탁기를 돌리는 소음이 작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는 나에게 정말 최악의 날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일을 해주던 세탁기가 갑자기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세탁 버튼을 누르면 물이 차오르기는 하는데 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넘치기만 하면서 아예 세탁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빨래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주말뿐인데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집어넣어 놨던 빨래는 이미 물을 먹어버린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서 손으로 세탁을 하기도 어려웠다. 이전에 살던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에 기계를 새로 바꿔주었다고 해서 기계 노후로 고장이 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새 제품에 붙어 있던 비닐도 그대로 붙어 있었다. 기계 겉에 쓰여있는 브랜드 이름을 검색해보며 A/S센터를 찾아보았지만 고쳐주는 사람도 쉬는 날이 있어야 하니 주말에는 가능하지 않았다.


하필이면 세탁기가 고장 난 시기가 집에서 한창 바 선생들과 사투를 벌이던 시기일 때여서 나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해버린다. 혹시 약을 먹은 바들이 세탁기 어딘가로 들어가서 고장 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같은 것들 말이다. 당시 화장실이 유력한 출몰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세탁기는 화장실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미 벌레들 때문에 정신상태가 만신창이가 된 나는 왜 세탁기 너까지 나를 힘들게 하냐며 세탁기를 미워했다. 그때 나는 경리단길에 살고 있는 Y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나는 빨래 바구니를 들고 가서 그 집에서 세탁기를 사용해 급한 대로 그날의 빨래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세탁기 소동은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다.


주말이 지나고 나서 어찌어찌 세탁기 수리 기사님과 일정을 겨우 맞추어서 고장 난 세탁기를 점검했다. 물을 받는 통에 달려있는 센서가 고장 난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기사님이 부품을 바꾸어서 끼워 보아도 세탁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기사님은 원인을 모르겠다며 아예 기계를 교체를 받으라며 접수를 해주셨다. 이렇게 한 번에 해결될 줄 알았던 세탁기 수리가 2주 넘게 진전이 되지 않았다.


수건은 수건만 분리해서, 또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의 빨래를 분리해서 세탁을 하는 나는 이 상황이 몹시 답답했다.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이번에는 빨래방을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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