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기에서 바싹 말려진 따끈한 빨래를 꺼내어 바구니에 옮겨 담았다. 포근한 향이 나서 기분이 좋았다. 건조까지 끝내고 나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처음 왔을 때처럼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카페 문 밖을 나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정류장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빨래 카페 맞은편 길에 카페와 마찬가지로 벽이 새하얀 페인트로 칠해져 있는 작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주택가라서 더욱 돋보이는 색깔이다. 무더운 날의 열기를 식혀줄 것 같은 인디고 블루 색깔 대문의 가게는 마카롱 전문 디저트 가게였다.
가게 이름은 프랑스어로 버터버터였다. 마카롱 필링을 만들때 버터를 많이 쓰는걸까? 간판의 이름이 외국어 전공자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가게 안이 다 보였는데 사장님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가게가 마카롱 가게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고민에 빠져 들었다. 마카롱을 먹을지 말지. 맛있기는 한데 너무 비싸지 않나 싶어 그냥 지나치려다가 마을버스가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핑계로 결국 그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때 내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근처에서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던 외국인 여성분이 함께 들어왔다. 우리는 말이 다르고 서로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지만 디저트를 향한 마음은 같았다.
매장 내부는 아주 협소했지만 마카롱을 사 먹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그날 내가 가게에 방문한 시간은 오후 5시쯤이었는데 마카롱이 거의 다 팔리고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가게의 위치도 그렇고 마카롱을 먹어보겠다고 굳이 찾아오기에는 불편한 곳인데 없어서 못 팔 정도이니 아주 인기가 많은 듯했다.
지나가다가 기습 방문한 것 치고는 운이 좋았던 셈이다. 어차피 기분 전환을 하자고 이 멀리까지 온 김에 마카롱 6개 세트를 먹어보자고 매대에 남아있던 것들을 종류별로 하나씩 담아 왔다. 지갑은 울었지만 내 마음은 행복했다.
행여나 걷는 사이에 녹을까 보냉팩까지 끼워 넣은 마카롱 박스를 들고서 나는 마을버스를 탔다. 언덕을 내려와서 열심히 걸어 집에 도착한 나는 마카롱 박스부터 황급히 개봉했다. 이 마카롱은 색소가 없고 마다가스카르산 천연 바닐라가 들어있다고 한다.
바닐라빈 (출처: 위키피디아)
천연 바닐라는 원래 이렇게 생긴 것인데 가운데를 가르면 까만 점 같은 것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그게 바닐라다. 나는 이 진짜 바닐라를 프랑스에서 난생처음으로 먹어보고 내 인생 20여 년 동안 먹었던 바닐라가 가짜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찐 바닐라'에 집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뚱뚱한 필링 속에 까만 점처럼 콕콕 박혀있는 이것을 보아하니 과연 '찐 바닐라'가 맞구나. 만족스러웠다. 얼그레이 맛을 제일 먼저 먹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