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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Apr 19. 2024

나 우울해서 양배추를 샀어

감정소비 줄이기 

한때 "나 우울해서 빵을 샀어"라는 말을 하고 상대방의 반응을 보는 밈이 유행을 했었다. MBTI의 T와 F별 반응을 보는 것이었는데 응답하라 1994에서도 나정이 방 페인트칠 하는 문제와도 비슷하다. 보면서 여러 가지 반응들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MBTI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알게 돼서 좋다고 생각했다. 또한 역시 소비는 감정적이구나 하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YHpcp79Cas

그렇다. 소비는 감정과 너무 연결이 많이 되어 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과 연결이 많이 되어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제니퍼 러너 교수는 기분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피실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슬픈 영화를, 한쪽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었는데요. 영상 시청이 끝난 후 각 그룹의 피실험자에게 형광펜 세트를 판매한 결과, 슬픈 영화를 본 사람들이 다른 그룹보다 30% 더 많은 돈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죠. 러너 교수는 부정적인 감정을 지닌 소비자일수록 자기 인식이 떨어지고, 더 나은 기분을 위한 보상심리가 작용해 돈을 쓰기 쉽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출처: https://www.kca.go.kr/webzine/board/view?menuId=MENU00306&linkId=55&div=kca_1906


쇼핑을 하면 도파민이 나오고 사람들은 그 도파민으로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쇼핑을 하게 된다. 그 도파민이 거의 마약 수준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쇼핑을 하면 왜 도파민이 나오는지에 대해서 그 과정에 대해서 좀 더 공부를 해봐야겠다. 아무튼 내가 소비단식일기 책에도 적었었지만 우울할 때 카드를 긁는 것이 참 엄청난 카드값을 가져왔었다. 


지금도 물론, 일 스트레스가 너무너무 큰 날에는 쇼핑이 마구 하고 싶어 진다. 아마 퇴근길이라면 어디 빵집에 들러서 빵을 잔뜩 샀을지도 모르고 백화점 1층에서 자잘한 립스틱이니 샀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나는 재택근무라 집에 있기 때문에 냉장고에서 무알콜맥주하나 꺼내서 마시고 (알코올은 이제 힘들다...) 침대에 누워 있는 게 최선일 때가 많다. 


그러다가도 너무 힘들면, 정말 자주 먹는 것 중에 감당할 만한 것들을 주문한다. 그게 요즈에는 바로 양배추와 오이다. 지난가을까지는 카메룬에서 돌아온 후유증으로 소비에 제한을 두지 않았었는데, 정신 차리고 나서는 다시 가계부도 쓰고 열심히 소비를 추적한다. 그렇지만 가끔 일하고 힘든 날, 식재료 쇼핑이 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밤에 누워 핸드폰으로 치즈, 바질페스토, 밀키트 등등 꽤나 값이 나가는 식재료들을 턱턱 사버리고는 아침에 쌓여있는 로켓프레쉬 상자들을 보고 후회할 때가 많았다. 밤에는 왜 이리 먹고 싶은 것이 많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정신 차리고 생각한 것이 우울할 때 살 수 있는 물건들을 정해 놓자는 것이었다. 계절별로 품목이 바뀌는데, 겨울에는 주로 알배추를 사서 국도 끓이고 겉절이도 해 먹었다. 이제 봄이 되니 신선한 것들이 먹고 싶어 요즘에는 오이와 양배추를 사고 있다. 다채로운 식재료를 사는 맛은 조금 적지만 그래도 일에 대한 피드백에 괴로워 밤에 누워 쇼핑을 하려고 이리저리 헤매다 오이와 토마토, 양배추라도 사고 나면 그래 나는 현명한 소비자야 라는 생각에 안심하고 잠이 들고 아침에 산더미 같은 택배상자와 마주하지 않아도 좋아 다행이다. 


우울해서 양배추를 사다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 웃기다고 생각했다. 요새는 통양배추 대신 양배추 채와 샐러드도 많이 사는데 다이어트하는 남편과 내가 염소처럼 먹고 있어 금세 없어지곤 한다. 아마 필요한 소비를 통해 알뜰하게 살림을 하는 성취감도 쇼핑의 도파민 못지않을 거라 생각한다. (또 찾아봐야겠다) 


물론 우울할 때마다 양배추를 사서 양배추가 몇십 통 된다면 병원을 꼭 가야 한다. 그건 양배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약을 먹어야 한다. 나는 지난여름 한국에 돌아와 약을 먹기 시작해서 아직까지 약을 먹고 있긴 하다. 하지만 오늘 거의 마지막 단계로 약을 줄였고 이제 1년을 채우면 아마 다시 끊을 수 있을 거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혹시 감정소비로 너무 힘이 든다면 품목을 한번 바꿔보시길 추천드린다. 꼭 양배추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 집 가계부가 순항하고 있는 것은 양배추가 도와준 것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양배추를 좋아하고 잘 먹어서 양배추를 사긴 했지만, 다른 것도 있을 것 같다. 당근이라던가 무라던가... (왜 다 채소인가) 암튼 끊기 힘들 때는 대체 품목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다이어트할 때, 우무 떡볶이 먹듯이 말이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을 나아가게 한다고 믿는다. 


사진: Unsplash의 Eric Prouz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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