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붓한일상 May 01. 2024

수요일에 겪는 월요병

오늘은 근로자의 날이다. 문화재단 직원은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민간인 근로자로 분류되어 출근하지 않는다. 어제의 퇴근 길은 가벼웠다. 좋은 일이 있다기 보다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쉬어서 좋다기 보다 출근하지 않아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서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 가벼운 발걸음을 문득 문득 무겁게 만들었던 사건. 어제 아침은 소소하지만 결코 내 마음을 소소한 상태로 두지 않는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8시 40분쯤 출근을 하니 팀원 하나가 대표이사실에서 면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대표님이 부르셨나, 밤새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해 하던 차에 무거운 표정으로 나오는 팀원에게 메신져로 대표님이 부르신건지? 무슨 일이 있는건지? 했더니 아무일도 없다는 답이왔다. 그냥 뭐 축제 담당자였으니 수고했다고 부르셨나보다 하고 있던 중. 대표님이 나를 부르셨다. 사무실로 들어가니 문을 닫으시고는 “00주임이 팀을 바꿔달라고 하면서 어제 팀장님이 자기한테 정신과를 가보라고 했다던데 무슨 말이예요? 라는 질문…”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잠시 월요일 저녁으로 돌아가보면, 축제하느라 수고했다며 본부장님이 저녁을 사주셨다. 양꼬치에 직접 위스키를 들고오셔서 콜라를 섞은 하이볼까지 마시고 지하철 역으로 가던 길. 나는 술을 마시면 워낙 빨갛게 되기도 해서 별로 마시지 않았고, 취한 사람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중에 00주임이 “저는 어떤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그 일이 해결될 때까지 잡고 있는 성향이다”는 말을 했다. 평소에도 혼자 일하는 스타일에 항상 긴장하고 있는 모습의 팀원이어서 좀더 긴장을 풀고 편하게 일을 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눴었기에 나는 내가 예전에 받았던 직무스트레스 상담을 받아보기를 추천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직장인 대상으로 7회를 무료로 지원하기 때문에 비용이 들지도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다보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도움을 받았었기에 이야기를 꺼낸것이었다. 나 역시 다른 재단 팀장님의 추천으로 경험을 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는 말로 와전되다니. 그 팀원은 밤새 그 말을 얼마나 곱씹고 곱씹었길래 직무스트레스 상담이 정신과 상담까지 간거였을까. 당황스러웠다. 그 뒤에 대표님의 이야기는 평소에도 팀장님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너무 황당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등등의 이야기를 하고 갔다고 하셨다. 대표님도 그 이야기를 그대로 듣진 않으셨지만 앞뒤 상황을 듣고자 하신 것이었고, 그런 뜻이 아니었음을, 추천한 상담이 어떤 것인지 설명을 드리고 그 팀원과 이야기를 나눠보겠다고 하고 나왔다.


마음을 추스리자, 생각을 정리하고 대화를 나누자 나의 뜻이 곡해 되었다는 것에 화가 났지만 화를 낸들 잘 해결될 상황도 아니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회의실로 불렀다. 그런 뜻이 전혀 아니었다고, 나는 정신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상담은 나도 받았었고, 다른 재단 팀장님이 추천해주신거라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무료 상담이라고…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전혀 아닌데 마음이 상했다면 미안하다… 속으로는 이게 왜 내가 사과까지 할 일이지? 참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해를 풀기위한 설명을 했다. “팀장님이 그렇다고 하시니 저는 그럼 그말을 믿을께요. 그런데….” 음…불쾌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 황당했다. 대표님께 들었다며 내가 본인에게 편견을 갖고 있고, 팀원들과 사이가 안좋다고 말했다는….하지도 않은 말들을 한다. 뭐지? 지금 이 상황에 대표는 저런 말을 했다고? 이간질인가?


어찌어찌 대화를 마쳤고, 팀을 정말 옮기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만 복직하고 2달동안 우리가 합을 맞추기도 전에, 서로의 업무 스타일을 이해하기도 전에 당장에 해결해야하는 축제를 겪으면서 바쁘게 흘러왔으니 앞으로 합을 맞추며 잘 해나가자는 생각을 전했다. “생각해볼께요.” … 회의실을 나오며 허탈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뭐지? 나 여기서 왜 애쓰고 있지? 이런 오해나 받으면서 하지도 않은 말들을 대표가 팀원에게 전하고 있는 이 상황을 … 나는 왜 내가 사과하며 잘 해보자는 말을 하고 있는거지? 아니야 그래도 축제 준비하면서 나도 예민하게 군게 있으니 팀원은 더 스트레스를 받았겠지. 힘들었겠지… 내 마음은 널뛰듯 오락가락 했다.


짜증이 났고, 기분이 나빴다. 오후에 있던 출장도 취소하고, 오늘은 조용히 하루를 보내자는 생각에 밀려있던 문서 업무를 보고있었다. 상황을 알고 계셨던 본부장님은 출장에서 들어오시는 길에 카페로 부르시곤 괜찮냐~ 이해해라~ 대표님이 왜 그렇게 말하셨는지는 나도 당황스럽다….하지만 큰 일을 할 사람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오해를 받기도 한다…네? 궂이…? 큰일이요? 전 먼지같이 살고 싶은데요…ㅋ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정도 마음은 가라앉았고 6시 퇴근까지 평소답지 않게 조용히 컴퓨터만 바라보며 문서 검토, 문서 수정, 문서 결재… 6시 땡~하고 휴일 잘 보내고 만나요~ 집으로 출발했다.


퇴근 길, 내일 출근 안하네~ 잠시 마음이 좋았다가. 또 그 일이 생각나 원망이 올라오고, 화가 올라왔다. 자꾸 생각이 나서 생각을 멈추기 위해 유튜브를 틀었다가 넷플릭스를 켜서 눈물의 여왕 정주행을 시작했다. 아침이 되었고, 좋은 아침을 맞이하고 준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조금 한가해지니 또 생각이 나고 화가 났다가 멈췄다가 또 생각이 나고… 지금은 저녁 8시45분.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다.


내일 출근해서 그 팀원을 보겠지. 나는 당분간 팀원들과 점심 식사도, 커피 한잔도, 가까이 웃으며 수다를 떠는 것도 멈출 것이다. 우리는 일하려고 만났으니 일에 대한 이야기만 나눠야지. 일하기 위한 관계만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일하지 않는다. 문화사업은 같이 해야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팀원 누군가가 힘들어하면 그 일을 나누어 담고 서로 채워주는 것을 먼저 생각하며 그렇게 팀을 꾸려왔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평소에도 혼자 힘들지 말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도움을 구하라고까지 말했던 팀원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뒤통수를 맞은 기분으로 다시 출근을 하고 아무렇지 않은듯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 나도 사람인지라 내 마음을 차갑게, 객관적으로 취하지 않으면 감정이 올라올까봐 스스로를 더 닫아버려야겠다고 다짐한다.


누군가 이 일을 듣더니, 상담을 추천하지 말았어야 했고, 아~ 그래 너는 그렇구나~ 하면서 그사람 그대로를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상대가 어찌 받아들일지 모르고, ‘상담’이라는 것은 해석하기 나름이라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그래, 내가 오지랖이었지. 그랬어야 했다. 경솔했다. 마음을 들인 것이 경솔했는지, 그런 말을 한 것이 경솔했는지 헷갈리지만 쓸데없는 말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꼰대 같은 말이었나, 그럴 수도 있지.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다른 시선, 다른 생각, 다른 해석. 나는 마음이었지만 상대는 아니었던 상황. 그래 그럴 수 있지.


너무 가까운 관계는 탈이 난다. 그래, 탈이 난거다. 거리를 두고, 마음을 담지 말고, 생각을 말하지 말도록.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