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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엽 Sep 06. 2018

초콜렛 한 개의 행복

 - 장재용, <딴 짓해도 괜찮아>


“9월2일 토요일 9시30분. 불광역 2번 출구 앞에서 뵈어요.”      


문득 전달 받은 문자 한 통. 교수님께서 토요일에 산행을 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등산이라 봤자 집 근처의 우면산이 전부였던 저에게 북한산을 가자는 교수님의 제안에 저는 어쩌해야 할지, 그만 당황했습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하시고 문자를 주셨을 텐데, 내가 혹시라도 안 간다고 하면 아마도 심기가 불편하시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문자를 송부했습니다.      


“네. 그날 뵙겠습니다.”     


산에 가기로 한 전날, 전 10년 전에 샀던 등산복을 다시 꺼냈습니다. 당시 최신 브랜드로 무장을 했건만, 10년 동안 한 번도 꺼내 입지 않은 탓에 이 곳 저 곳이 해졌습니다. 아내는 웬일로 등산을 다 가느냐며 저에게 방울토마토와 오이, 그리고 초콜렛 몇 개를 챙겨 줍니다. 사이다 하나를 냉장고에 얼려서 가져가라는 말에 저는 ‘짐만 되니까 무거워.’ 라며 다시 뺐습니다.      


이윽고 시작된 산행. 장미공원에서 시작된 북한산은 처음부터 올라가기가 벅찼습니다. 한 10분정도 올라가자 벌써부터 다리가 저릿저릿해지고, 땀이 비 오듯 합니다. 등산은 첫 15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15분만 버티면 그 다음부터는 따라가면 된다고요. 하지만, 그것도 등산을 조금 해본 분들의 말씀인 듯합니다. 저는 매 순간 순간이 왜 이리 힘들고 벅찼던 것일까요. 산의 중간정도 올라가자, 한 참을 뒤쳐져 있는 저의 모습을 보시며 안되겠다 싶으셨던지,      


“혹시 등산복 속에 런닝셔츠 입고 오셨죠?”     


하시더니,      


“런닝셔츠를 벗으시고, 바지를 걷으세요.”      


라고 말씀하시며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라고 조언하십니다. 저는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있는 런닝셔츠를 훌러덩 벗어서 가방 안에 넣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저에게 사이다를 건네십니다.      


“아이고. 정박사. 얼굴이 창백한 것이 말이 아니네. 이거 드시게나.”     


이거 받아도 되나, 싶었지만, 그래도 마시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아 벌컥 들이켰더니, 온 몸 안으로 단 물이 쫘악- 하고 흡수되는 것이 에너지나 파릇하고 피어납니다. 또 얼마 가서 교수님께서는 저에게,


“이것 드쇼.”      


하시며 초콜렛바를 건네십니다. 초콜렛 속에 전달되는 당분이 돌산을 더 힘차게 오르게 합니다. 참 신기한 것은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께서도 전혀 힘들지 않으신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산에 오르신다는 점입니다. 저는 옆에서 헉헉대면서 올라가지만요. 산 정상에서 저희는 자리를 잡고 한 박사님께서 가져오신 막걸리에 홍어회를 먹습니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벌컥벌컥 들어가는 느낌이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저는 주말에 몇몇 산행을 다녀오신 어르신들께서 지하철을 타면 땀 냄새에 젖어 있는 막걸리 냄새가 그렇게 지독할 수 없었는데, 아- 제가 바로 그 입장이니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산 정상에서 마시는 막걸리에 홍어회의 유혹은 그 누구도 벗어나기 힘 들 것이라는 것을요. 신발을 벗으니 양쪽 발뒤꿈치 껍질이 벗겨져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험난했는지 알려주는 훈장 같습니다.      


온 몸이 녹초가 된 저는 집에 오자마자 뜨거운 물에 푹 담가봅니다. 두 권의 책을 옆에 둔 채로요. 제 옆에 자리잡고 있는 책들은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와 저희 변경연 8기 연구원이 쓴 <딴 짓해도 괜찮아>입니다. 둘 다 ‘북한산’과 비교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산을 등반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딴 짓해도 괜찮아>는 한 평범한 직장인이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하기까지의 짠내 나는 과정이 세심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자기 관리와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에베레스트산’을 정복 할 수 있는지를 덤덤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저자는 아마추어 산악인으로서 감내해야 할 수많은 생존의 문제들은 피하지 않고, ‘왜 산에 오르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북한산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정상에서의 멋진 하늘도 아니고, 매번 내딛었던 돌들도 아닙니다. 고은 시인이 말했던 ‘내려갈 때 보았던 꽃’들은 더더군다나 아닙니다. 이 순간 저의 머릿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시뻘개진 얼굴을 보시고 선뜻 건네주신 ‘사이다 한 모금의 단 맛과 초콜렛 한 개’입니다. 그들은 제대로 된 등산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벅찬 저에게 한 줄기 빛으로 무사히 5시간의 산행을 마칠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면서 저의 에너지가 되어준 도와준 고마운 친구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빠, 산 다녀오신다음에 몇 키로 빠지셨어요?”      


라고 묻는 딸아이의 질문에 저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스니커즈 초콜렛 바를 한입 베어 뭅니다.      


정재엽 (j.chung@hanmail.net)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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