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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엽 Sep 07. 2018

휴가 책 이야기 (1)

- 책과 함께 한 뜨거운 여름

매일 매일이 불덩이입니다.


회사에 출근하는 길조차도 온 몸에 땀범벅이 되고,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것조차 주저하게 되는 무더위입니다. 더위를 그리 타지 않은 저였지만, 올해만큼은 예외입니다. 한여름에도 카페에서 주문하는 메뉴는 늘 ‘따뜻한 아메리카노’였고, 커피 만큼은 따스한 것 마셔야 한다, 고 생각했던 저였지만, 올해 그런 저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이제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합니다. 집에서도 잠을 자다가 더위에 벌떡 깨서는 물 한 컵을 들이키고, 멈춰버린 선풍기를 다시 켜거나, 에어컨을 틀어놓고 잠이 드는 경우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휴가를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이번 휴가에는 다른 계획보다는 시원한 곳에서 책을 읽을 계획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어떤 책을 읽을 계획을 세워 놓고 있는지 마음편지 가족 여러분께만 공개하겠습니다.     


먼저, 일본 여류작가인 온다리쿠의 <꿀벌과 천둥>입니다. 이 책은 사실 작년 휴가 기간 동안에 읽으려고 샀는데, 일 년 동안 깨끗하게 제 책장에 꽂혀있었습니다. 약 7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너무 재미있을까봐 아껴놓았다’는 표현이 맞을 듯합니다.


사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번역되기 전, 미국에 있을 때 같이 공부했던 일본인 친구가 저에게 이메일을 보낸 일이 있습니다.      


재엽! 네가 좋아 할 책 일본에서 출간.
혹시 한국에 이 책이 번역되면 꼭 읽어보세!      


라며 추천을 해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한국어로 바로 번역이 되었고,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당장 구매를 하였습니다. 왜 이 책이 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느냐고요? 그 이유는 이 소설의 배경이 바로, ‘국제 피아노 콩쿠르’이기 때문입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등을 한 뒤로, 저는 줄곧 조성진의 CD를 차에서도 틀어놓고 제 핸드폰에도 저장해서 들으면서 다닙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소설의 배경인 콩쿠르에서 연주를 한 곡들을 실제로 CD와 함께 패키지로 판매를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CD와 함께 책을 구입했는데, 사실 CD는 먼저 뜯어서 들었습니다. 과연 어떤 내용일지 상상해 보면서 말이죠.      


두 번째는 제가 좋아하는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빨강 머리 여인>입니다. 2006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한 이 작가는 제가 처음 접했던 <내 이름은 빨강>을 비롯해서 <검은 책>, <순수 박물관>, <햐안 성>, <눈> 그리고 <고요한 집><새로운 인생>등 한국어로 번역된 모든 작품은 읽었습니다. 그의 순수한 마음을 볼 수 있는 그의 수필집, <이스탄불><아버지의 여행가방>도 커다란 울림을 주었습니다. 올 여름에 출간된 이 책도 저에게 읽는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르한 파묵은 혹시나 제가 상처받을까봐 아무에게도 권하지 않는 ‘저만 알고 꼭꼭 숨겨두고 싶은 작가’ 1위입니다. 늘 동양과 서양 사이에서 ‘터키인’도 아닌, ‘이스탄불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그의 굳은 정체성에 늘 자극을 받습니다.        


세 번째 책은 최인훈의 <광장>과 <회색인>입니다. 그저께 최인훈 작가님은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작년 겨울, 우연히 일간지 음악 담당 기자님과 배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최인훈 작가의 <광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당장에 집에 있는 책을 ‘숙제하듯이’ 꼼꼼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별 감흥이 없다가, 지난 남북정상회담 때, 문득 이 책의 여러 장면들이 상상 속에서 제 머릿속을 지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 책을 다시 한번 읽는 것이 아직 하지 못한 숙제 마냥 제 머릿속을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문학인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작품을 읽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읽고는 작년 겨울에 책을 읽으며 먹었던 따스한 고구마의 향기를 다시 불러 오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딸과 함께 읽기로 한 조지 오웰의 <1984>도 ‘읽을 책 리스트’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은 오디오북을 틀어 놓고 함께 읽어나갈 듯 합니다.  


그 밖에 히가시노 게이치로의 <용의자 X의 헌신>도 리스트에 있습니다. 이 책은 읽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이 책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는 더위를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이렇게 책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저의 마음은 벌써 시원한 바람을 쐬는 듯합니다. 이 책들을 휴가기간에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몇 권은 또 저의 즉흥적인 마음으로 인해 바뀔지도 모르고, 함께 놀아달라는 아이들이 칭얼대기라도 하면, 우선적으로 놀아줄 것입니다. 책을 읽는 것이 가족들과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우선이 될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몇 권을 읽을 계획을 하는 것만으로도 흥미가 솟아납니다. 자- 여러분들은 휴가 때 어떤 책을 읽을 계획을 세우고 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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