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엽 Sep 11. 2018

휴가 책 이야기 (2)

- 책과 함께 한 뜨거운 여름


휴가와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지난번에 휴가 기간 동안 읽을 책 리스트를 보면 그만 웃음이 나옵니다. 이런 책을 읽겠다, 라고 생각해 놓고선 실제 읽은 책은 판이하게 다르니까요.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지 않으신지요?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휴가 기간 동안에 이런 이런 책을 읽겠다, 라고 커다란 포부를 밝혔으나, 막상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경험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책들을 읽은 경험을요. 


저는 <꿀벌과 천둥> <빨강 머리 여인> <광장> <회색인> <1984> 그리고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겠다고 계획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휴가 동안 읽은 책은 <소년이 간다> <오베라는 남자>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 편, 일본편> <여름, 스피드> 그리고 <뻬쩨스부르그 이야기>입니다. 참 <용의자 X의 헌신>도 있네요. 음- 이렇게 다른 책들을 보니 저 자신도 많이 놀라게 됩니다. 특히, <먼나라 이웃나라>라 있다는 것은 참 의외고요. 



 

먼저, <소년이 간다>는 한강 작가의 책입니다. 


사실, <채식주의자>와 <바람이 분다, 가라>, <그대의 차가운 손>, <흰> 그리고 <희랍어 시간>이 집에 있는데, 그중에 <소년이 간다>만 읽지 않았습니다. 한 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하고 난 뒤에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간다>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막상 저만 알고 몰래 사랑했던 대상을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 같아서 한동안 멀리했다고나 할까요? 이 작가의 대중성으로 인해서 혹시나 제가 사랑했던 방식이, 제가 읽고 있던 이 작가에 대한 책읽기의 방식이 잘못된 것이라 밝혀질까 두려웠던 것일까요.


암튼, <소년이 온다>는 사놓고는 읽어보지도 않고 책장 저 밑에 박아두었더랍니다. 그런데, 이 책이 갑자기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거있죠? 웬일인가 싶어서 기사를 검색해 보니, 대통령께서 하계휴가 중에 읽은 책 리스트에 올라 있던 책이었습니다. 이때 아니면 언제 읽으랴, 싶어 휴가와 출장기간 중에 읽어 버려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꿀벌과 천둥>을 끄집어냈습니다. <꿀벌과 천둥>은 워낙에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언제든 맘만 먹으면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때문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책은 좀 놓아두었다 읽으려고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밀도 있게 그려져서 읽는 내내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베라는 남자>는 순전히 충동적으로 집어 든 경우였습니다. 사실 <빨강머리 여인>을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을 했는데, 이 책은 폭염 때문인지 택배가 하루이틀 늦어져서 제가 휴가를 떠나기 전에 수령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 이렇게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생각하면서 다음 기회로 미루었습니다. 오르한 파묵이여, 안녕- 하면서요. 어쩔 수 없이 집어 든 책이 바로 <오베라는 남자>였습니다. 이 더운 여름에 북유럽의 서늘한 정서를 느끼고 싶은 욕망이었을까요? 울퉁불퉁한 오베라는 할아버지의 행동을 따라가다가 한마디로 ‘츤데레’같은 그의 행동에 따스함이 밀려들어왔습니다. 그동안 북유럽 현대 소설들은 잘 읽은 기억이 없는데, 이 책을 계기로 최근 많이 소개되는 북유럽의 현대 소설들을 읽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열’과 ‘정’이 혼합되어있는 우리나라와 정서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 참 뜬금없죠? 하지만 이번 휴가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 바로 이 책이었답니다. 자녀들을 둔 분들이면 모두다 다 이 책 한 두 권쯤은 가지고 계실 것 같아요. 하지만, 막상 읽어보려고 하면 깨알같은 글씨에 툭툭 튀어나오는 전문용어, 그리고 만화이지만 한 페이지가 금방 넘어가지 않는 소위 말하는 ‘고전문학’보다 더 가독성이 없음에 그만 책장을 덥게 되고 맙니다. 저 또한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감과 동시에 16권 전집을 샀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초등학교때 이 만화가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것을 기억하는데, 이쯤되면 세대를 물려주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집게 된 것은 러시아 출장을 앞두고 혹시 <먼나라 이웃나라 -러시아편>이 있나 싶어 봤더니, <러시아편>만은 아직 출간이 되질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집어 든 편이 바로 <먼나라 이웃나라 -대한민국>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책이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소년이 간다>를 읽고 난 뒤, 밀려드는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 한번 간단하게나마 정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으니 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어렸을 적 소년한국일보에 연재 된 만화를 보면서 전 세계를 누비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기억이 새록새록 자라났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