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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토닥 Mar 14. 2023

양가감정의 끝판왕, '부모님'

[부모편] 왜 부모에게는 이렇게 쉽게 화가 날까?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제 밥벌이를 하고, 한 가정을 책임지며 현실적 '어른'이 되는 보편적인 나이 30대.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20대 혈혈단신이던 내가 진짜 어른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현재 '30대의 시절'을 살고 있는 나와 친구들이 만나면 주 나누는 대화 주제 중 하나는

바로 "부모(父母)"다.


친구 A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아 1년에 2-3번 찾아뵐까 말까 하는데 그때마다 아버지와 싸우게 된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제발 술 좀 적당히 드세요."

"아프다고만 하시지 말고 병원 좀 자주 가서 검사받으세요."


나이  부모님을 걱정해 좋은 의도로 시작한 대화는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자식의 끝도 없는 잔소리로 바뀌고 대화의 끝은 "너 때문에 이제 너희 집 안 올란다."가 된다고 한다.


남자사람친구 B는 막 신혼생활을 시작할 때쯤 30년을 함께 살아온 어머니가 보고 싶어 신혼집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친 적이 있다고 한다.

(친구는 부모님 차로 약 30분 거리에서 살고 있다.)


그러다 몇 년 뒤 어렵게 얻은 귀한 아기가 태어났고, 맞벌이 부부였던 친구네는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기 위해 5년 만에 다시 본가로 들어가 함께 살게 되었다.


태어나 장가갈 때까지 함께 살아온 부모님이었기에 되려 편할거라 기대하고 본가로 들어왔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지난 30년 동안 어떻게 같이 살았지?' 싶을 정도로 어머니와의 잦은 육아 다툼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급기야 아이를 둘러업고 집을 나오는 일까지 생겨났다.


(며칠 전에도 "엄마한테 맡길 바엔 차라리 내가 직장을 그만두겠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B의 어머니는 "너도 내가 키웠어 이 새끼야! 그럼 당장 나가!" 라며 되받아치셨다고 한다.)


왜 부모에게는 화가 참아지지 않는가

나 역시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한 번은 이런 마음을 솔직하게 부모님한테 얘기한 적이 있다.

정말 안 그러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자꾸 부모님께 화를 내게 된다고 그래서 마음이 힘들다고.

(지금 생각해 보니 이조차도 내 마음 편하자고 한 것 같다.)


예전의 부모님이었다면

"네가 아무리 그래도 부모한테 버릇없이 그러는 거 아니야!", "우리가 그래도 어른이고 부모인데 네가 그러면 되니?"라고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 나의 고민에 부모님은 의외의 대답을 내놓으셨다.


"네가 지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래. 사는 게 너무 바빠 하루하루 지치는데 우리까지 챙기려니 벅차서 그래."


"네 나이 때 나도 그랬어. 그러다 나이 들고 삶이 편해지니 예전엔 잘도 부르르하던 것들도 다 괜찮아지더라고."


"그러니 괜찮아. 우린 잘 지내니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너는 너랑 네 가족 걱정만 해. 우리는 알아서 잘 살 테니까."


그 말을 듣는데 순간 눈물이 왈칵 나면서 나라는 인간이 진심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식 입장에서 먼저 이해해 주려 노력하는데 자식인 난 세상의 변화에 빠르게 따라오지 못하고 뒤쳐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답답하고 귀찮은 마음에 온갖 짜증이나 내고….


제3자의 시선에서 지난날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니 얼마나 못되고 한심해 보이던지 그저 후회러웠다.


뇌과학으로 이해해 보는 행동의 이유

그러다 우연히 지인추천으로 뇌과학으로 유명한 정재승 교수가 출연한 <집사부일체-화를 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 편을 보게 되었다.


정재승교수는 뇌과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부모(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잘 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뇌의 인지영역은 큰 틀에서 자아(自我)와 타인(他人)으로 나뉘어 있어요."

"근데 신기하게도 나와 가까운 사람 즉 부모나 배우자는 타인이 아닌 자아의 영역 가깝게 저장돼 있는 거죠."

.

.

.

"그래서 우리는 자아에 가까운 그들이 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으면 불 같이 화가 나는 거예요.

이거야말로 <서글픈 사랑>인 거죠."


사랑해서 밉고, 밉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교수의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큰 깨달음을 얻었고 이 주제에 대해 좀 더 고민하다 보니

부모님에 대한 나의 "양가감정" 또한 내가 부모를 생각하는 데 있어 톡톡히 한몫한다는 걸 깨달았다.


남이라면 미워하거나 무시하고 말 일인데도 부모에게는 그게 안 되는 것도 바로 이 '양가감정' 때문이다.


안 그래도 바쁜 삶에 치여 힘든데 점점 더 내 도움이 필요해지는 나이 든 부모님이 부담스럽다가도,

'이 세상 누구도 해주지 않는 조건 없는 사랑을 퍼부어준 유일한 존재' 부모이기 때문에 차마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후회를 덜 남기기 위해

해서 친구들과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적어도 나중에 부모님과 이별한 후 마음속 후회가 최대한 적게 남도록 행동하자."라고 함께 다짐했다.


내가 나이 든 만큼 내 부모가 늙어가는 것처럼 나 역시 언젠간 내 자식에게 그런 부모가 될 것이니

지금의 부모의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지금보단 좀 더 이해심(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부모님을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해도 부모와의 이별 뒤에 후회는 남을 테니 그 후회를 최대한 조금이라도 적게 하기 위해서라도

부모님에게 '따뜻하고', '상냥한' 자식이 되어드리고 싶다.

<집사부일체_정재승교수 편>

[Click!] “나를 인지하는 뇌 영역” 정재승, 화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 - YouTube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가슴 곳곳에 대못질을 했다.
아빠는 내가 못 박을 곳마다 나의 사진을 말없이 걸어놓곤 하셨다.
-사진보관함, 서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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