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기로운토닥 Feb 15. 2023

늙으면 원래 이렇게 괴팍해져?(1)

[노인편] 노인 우울증, 그냥 두면 안 되는 이유


나에겐 두 명의 엄마가 있다

어떤 사람이든 자기가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걸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나 같은 경우, 5살 무렵 할머니방 화장대 유리 테이블 안에 꽂혀있던 내 사진을 보던 게 내 인생의 첫 기억이다.


나는 태어나 결혼하기 전까지 28년을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맞벌이인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이집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할머니는 모든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주셨다.


다른 친구들이 떠올리는 할머니의 이미지와는 달리 우리 할머니는 웬만한 젊은 엄마들보다 텐션 높은 열혈 학부모였고, 트렌드에 민감했으며 어디로 이사를 가든 항상 동네에서 '핵인싸'를 자처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본인 인생에서 가장 많은 공을 들여 에너지를 쏟아부은 대상은 바로 '나'였다.

한 겨울, 손녀딸 대학입시 논술시험장마다 다 따라와 시험이 마칠 때까지 꽁꽁 언 손을 하고 바깥에서 기다리던 분이라고 소개하면 나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헌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하루도 할머니와 떨어져 본 적이 없었고, 그녀는 내게 제일 소중한 엄마이자 언니이자 친구였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그래 나도 변했으니까

내가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분리' 되었다.

사랑하는 남자와 행복한 가정을 꾸릴 생각에 난 들떠 있었고 그래서 나의 부재로 인해 그녀가 겪을 '외로움'과 '상실감'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보통 이런 심리상태를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 부른다고 함)



서로 사는 곳도 멀어지면서 할머니와 아침저녁 전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그마저도 소홀해져 언제나 내 휴대폰에는 할머니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처음엔 부재전화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전화를 드렸지만 시간이 지나자 전화도 귀찮고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전화 대신 메시지를 남겨달라고 얘기했다.  


할머니가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내 삶은 이전보다 더 타이트하게 흘러갔다.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 상태로 아이와 남편을 챙겨야 했고, 아이가 잠들면 쓰러져 자기 바빴다. 그나마 여유가 생기는 날이면 한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고, 그것마저 부담스러운 날엔 혼자 소파에 누워 자고만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운동을 하다 요가매트에 미끄러져 고관절이 부러졌다는 전화를 받았고 할머니는 그렇게 두 달이 넘도록 재활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환자 면회나 간병도 불가능했고 그래서 할머니는 그 긴 시간을 가족들 없이 혼자서 견뎌내야 했다.


'병원에서 잘 지내고 계시려나' 마음으로만 걱정하고 있던 찰나, 아빠로부터 할머니가 스스로 병원에 퇴원서를 내고 퇴원하셨다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걱정스런 맘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갑자기 퇴원하면 어떻게 해! 고관절 수술한데 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

"여보세요? 할머니!"

"… 끊어라."


할머니는 내 이야기에 답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순간 할머니의 행동에 너무 화가 나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니 사람 말하고 있는데 대답도 안 하고 전화 끊는 게 어딨어!"

"너희가 언제부터 나한테 그렇게 관심 가졌다고! 내 몸 내가 알아서 챙길 거니까 상관 마라!"


다시 한번 본인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할머니의 행동에 황당하기도 하고, 화도 났던 난 그 날 할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할머니의 SOS

그렇게 일주일쯤 시간이 흘렀을까.

며칠 전 할머니와의 전화통화로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차에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 내다.(나다. 의 경상도 사투리) 니 지금 바쁘나?"

"오늘 재택근무 중인데 이제 곧 점심시간이에요."

먼저 걸려온 할머니의 전화에 꽁해 있던 그녀의 마음이 풀렸나 싶어 내심 안도하던 차였다.


"그러면 내 병원 좀 데리다 줘."

"병원? 갑자기 무슨 병원? 정형외과? 다리 많이 편찮으세요?"

"…."

할머니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다가 갑자기 울먹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OO(내 이름)야. 내 죽을 것 같다. 숨도 잘 안 쉬어지고 잠도 못 자겠다."


그 순간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에게 찾아온 마음의 병

급하게 차를 몰고 할머니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지금 할머니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느낄 수 있었다.

혈색 하나 돌지 않는 잿빛 얼굴에 곧 쓰러질 것 같은 자세. 굳게 얼어버린 표정.

내가 알던 활기 넘치고 긍정 기운 넘치던 할머니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차에 탄 할머니는 퇴원 후 계속해서 이어지는 온몸의 통증과 불면에 동네 병원이라는 병원은 다 다녀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말씀하셨고, 내게 대학병원에라도 데려다 달라고 말씀 하셨다.

하지만 난 할머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건 대학병원에 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 할머니. 나랑 같이 정신과 가보자."


내 말을 듣고도 아무 말씀이 없으신 할머니를 보고서 무언의 긍정이라 받아들이고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심리 검사지>를 나에게 전해줬고, 눈이 어두운 할머니를 대신해 내가 할머니께 질문지를 읽어드리고 할머니가 답하는 방식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존재가 무가치하다고 느껴진다.',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든다.' 등의 질문에 할머니는 "난 이런 거 안 느끼는 사람이다. 다 괜찮다."라고 대답했지만 의사의 답은 달랐다.


할머니와 몇 가지 추가상담을 더 진행한 뒤 할머니가 '약물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고 그 얘기를 들은 난 창피함도 모르고 펑펑 울면서 의사에게 "다 좋으니 우리 할머니 좀 낫게 해 주세요."라고 이야기했다.


정말 미안해 할머니

그날 저녁, 할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할머니의 상황에 대해 설명드렸다. 전화를 끊고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멀리도 아니고 바로 우리 집에 정신과 의사가 있는데 난 그동안 뭘 한 거지?'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그동안 할머니를 대했던 나의 행동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되었다.


부모님 집에 갈 때마다 할머니의 SOS를 노인네 푸념 정도로 여겨 대충 듣고 무시했던 순간.

할머니가 몸이 편찮으시다고 할 때마다 '그만 좀 아프다고 하셨으면...'하고 짜증 났던 순간.

괜한 일로 짜증 내고 신경질 부리는 모습을 보며 '늙으면 원래 저렇게 괴팍해지는건가?'라고 답답해하던 순간.


할머니는 그 모든 순간순간이 진심으로 괴로워 자식들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인데 정작 우리는 그녀의 감정을 들여다보기보단 변해가는 그녀를 보며 지쳐가는 우리의 감정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드니 '알 수 없는 저주'에 걸려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할머니가 떠올랐고, 그날 난 인생에서 가장 많은 후회를 했다.


늙면 원래 이렇게

2편에서 계속.




 

작가의 이전글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