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편] 너무 쉽게 얻지도 버리지도 않는 삶
좁아터진 우리집
새집에 이사 온 지 벌써 3년째.
이전에 비해 평수도 넓어지고 신축인 데다 수납공간도 많아 '이제는 좀 사람답게 살겠구나.' 한 예상과 달리 집은 여전히 수많은 물건들로 비좁았고, 정리되지 않은 서랍과 팬트리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갑갑함을 느꼈다.
세 가족 32평에 살고 있지만 정리 안 된 집을 볼 때마다 집이 좁아 그런 것이라며 남편에게 다음번 이사 갈 때는 좀 더 넓은 평수로 가자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분명 어릴 적 4인 가족 20평대에서도 잘만 살았던 것 같은데...
집이 좁다 불평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아이 하나 키우는데 30평대 이상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라고 대답했고, 그럴 때마다 난 남편에게 "그럼 당신이 집 관리 하든지!"라며 날을 세웠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그러다 어느 날, 벽장 수납장을 열다 무게가 나가는 물건이 떨어져 발등을 찧었고 순간적인 짜증과 분노가 일었다.
그 길로 나는 집 앞 다이소로 달려가 "수납", "정리", "보관"과 관련된 인기 제품을 죄 쟁여서 집으로 돌아왔다.
드. 디. 어 마음을 먹은 것이다.
하나하나 짐정리를 하다 보니 세상에나 그 좁고 넣을 곳 없던 공간이 텅텅 비는 게 아니겠는가.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쑤셔 넣고 구겨 넣었던 그 공간이 이렇게나 남아돈다고?
보관함 하나 만들어 차곡차곡 정리했을 뿐인데 다른 공간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 들었다.
자꾸 어디서 튀어나오는거니?
정리를 하다 보니 분명 매번 부족하다 느껴 사재기했던 치약, 칫솔, 치실이 수십 개 발견되었고,
AAA, AA, 동그라미 건전지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100개는 나온 것 같다.
이외에도 여성용품, 청소용품 등 수만 가지 물건이 있으면 안 되는 자리에 들어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방서랍에서 열나면 붙이는 쿨시트가 나오고, 신발장에서 5년 전 잃어버린 줄 알았던 주민등록증이 나오고..)
게다가 이미 유통기한 3년은 지난 마스카라, 컵케잌 만들기, 로션샘플은 또 어찌나 많던지.
그때는 분명 아껴 쓴다고 잘 모셔두었는데 시간이 흘러 그 귀한 것들은 타임머신 속 물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20L짜리 쓰레기봉투를 5개씩 써가며 물건을 버리고 비워내니
우리 집에 이렇게 빈 공간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집이 텅텅 비어버렸다.
청소하면서 얻은 인생의 지혜랄까
며칠에 걸쳐 집청소를 다 끝낸 뒤 집을 둘러보니
그동안 내가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물건들이 내 공간뿐 아니라 내 마음까지 눌러왔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미처 버릴 수 없어 모셔두었던 것들
나는 버렸거나 다 썼다 생각했는데 그대로 남아있던 것들
그래서 또 새로 들여와 똑같이 처박아두고 잊어버린 것들
그 수많은 것들이 모여 내 공간을 차지했고 난 그것들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던 것 같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우리 인생과 마음도 청소와 같은 이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털어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쥐고 있었던 과거의 선택과 후회.
그것들이 모여 내 마음속 공간에 들어차있으니 내 마음을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여유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또는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나는 가지지 못했다 생각한 마음들이 들여놓은 욕심과 갈망.
OUT 없이 IN만 계속되다 보니 숨 쉴 틈 없던 마음이 세상을 보는 눈을 좁히고, 관대함마저 잃어버린 건 아닐까.
그러니 지금부터 정리해보자. 내마음
그러니 그런 생각이 떠오른 김에 지금 당장 내 마음속 오래 묵혀둔 것들을 조금씩 꺼내어 정리해 보고,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데 더 가지고 싶다고 욕심내는 건 없는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경제적인 것이든, 인간적인 것이든, 그 무엇이든 되었든 간에...
그렇게 마음속 청소가 다 끝나고 나면 지난 며칠 간의 내 청소처럼 날 더 가볍고 산뜻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너무 쉽게 얻으려고도 버리려고도 하지 말고
지금 내가 가진 것들 먼저 차곡차곡 정리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