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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토닥 Jan 29. 2024

너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

[인간편]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면서요



당신은 내게 '좋은' 사람이 맞나요?

난 어릴 적부터 '사람'을 참 좋아했다.

운 좋게도 자라는 동안 사람으로부터 씻지 못할 상처를 받은 기억도 거의 없었고, 설령 상처받았다 할지라도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어 금방 치유받고 또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힘을 얻었다.

그래서 시크하게 '전 혼자가 좋아요', '인간만큼 악하고 무서운 존재가 없다고 생각해요'와 같은 뉘앙스의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뭐 저렇게 인생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거야. 저런 사람들 아우라가 참 싫더라.' 하곤 했다.


적어도 20대 초반까지는...


20대 중반에 들어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불운히도 난 PD(Personal Disorder)환자 같은 직장 상사를 만났고 매일 같이 이어지는 가스라이팅과 협박에 난생처음 '인간만큼 악한 존재가 없다'는 말 뜻을 이해했다.


처음엔 어쩌다 보니 악연으로 그런 미친X를 만난 거라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사회에서 레벨업하고 '어른의 세계'에 깊게 빠질수록 그건 '어쩌다가'가 아닌 '언젠가 무조건 맞닥뜨려야 하는' 인생의 법칙 같은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환상 속의 '그대'

그렇게 여기저기서 나를 할퀴고 내 심장에 비수를 꽂는 날이면 난 나를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운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고, 그런 사람들에게 상처받아 무너지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나약하게 느껴져 깊은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다.


심지어 나이 들수록 직장뿐 아니라 친구 심지어는 가족에게서까지 그런 일을 겪게 되자  그 안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나 역시 그들과 똑같이 내면에 스틸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검은 머리 짐승이 되어 버렸다.


어떤 어른들은 이런 과정을 '성숙'이라 불렀고, 또 어떤 이들은 '때 묻었다'라고 표현했다.

뭐라 부르든 그건 상관없었다. 다만 나는 그 과정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사랑하자.'라는 기존 신념을 깨버리고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아야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갖게 된 내 모습이 못내 씁쓸했다.


다른 모두가 그렇듯 기대하지 않으려 한다고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그리 쉽게 가능한 일이던가. 결국 난 내 사람들이 그동안 감춰온 남모를 비밀이나 추악한 뒷모습을 알게 될 때마다 지옥 저 끝으로 추락하곤 했다.


나를 지키기 위한 연습

그렇게 매일 깨지고 흔들리고 상처받으면서 난 나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몇 가지 방법들을 만들어나갔다.


첫 번째,

더 이상 예전처럼 내가 그려놓은 이상적인 모습에 상대를 끼워 맞추고 으레 '상대가 이럴 것이다.' 짐작하지 않기


두 번째,

그렇기에 다른 사람 앞에서 함부로 '난 이런 건 진짜 아니라고 생각해.', '이런 사람과는 상종하고 싶지 않아.' 등의 단정 짓는 말 하지 않기


세 번째,

내 마음의 힘을 사람에게 의존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 의존하기


다행히 이 짓도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전보다 덜 상처받고, 덜 분노하고, 덜 무너져내리는 내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전보다 나아진 건 사실이나 난 여전히 혼란스럽다.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내 마음은 전혀 상처받지 않는 척하며 살아가지만 그 가면 너머의 진짜 내 마음은 여전히  매 사건, 매 순간마다 상처받고 피눈물을 흘리며 산다.

서른이 넘었지만 난 여전히 이 방식에 대한 의문이 들고, 이런 선택들이 나를 위한 최선인지도 혼란스럽다.

.

.

.

그러니 나라도 내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스스로를 경계하는 수밖에...

또다시 상처를 받은 요즘.

난 사람을  좋아하고, 곧잘 믿고, 의지하는 나 자신이 조금은 가엾다.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금방 날아갈 휘발유 같은 말도 믿는다.
그녀는 낯을 가리지 않고 믿는다.
그녀는 못 믿을 남자도 믿는다.
한 남자가 잘라온 다발 꽃을 믿는다.
꽃다발로 묶인 헛소리를 믿는다.
밑동은 딴 데 두고
대궁으로 걸어오는 반토막짜리 사랑도 믿는다.
고장 난 뻐꾸기시계가 네 시에 정오를 알렸다.
그녀는 뻐꾸기를 믿는다.
뻐꾸기 울음과 정오 사이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녀의 믿음은 지푸라기처럼 따스하다.
먹먹하게 가는귀 먹은
그녀의 믿음 끝에 어떤 것도 들여놓지 못한다.

그녀는 못 뽑힌 구멍투성이다.
믿을 때마다 돋아나는 못,
못 들을 껴안아야 돋아나던 믿음.
그녀는 매일 밤 피를 닦으며 잠이 든다.

-믿음에 대하여, 최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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