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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토닥 May 30. 2024

걱정이 많아 걱정입니다.

[생각편]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Over-Thinking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IF A WORRY GOES AWAY BY WORRYING ABOUT IT, THEN THERE WOULD BE NO WORRIES.

유명 랩 가사처럼 뛰어난 라임을 가진 티베트 속담.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하느라 내내 풀가동 중인 내 머리와 가슴에 매일 같이 새겨 넣는 문장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난 생각이 아주 많았다.

'만약에~', '그런데~', '혹시나~' 와 같은 말들이 항상 내가 내뱉는 문장의 앞자리를 차지했고, 그랬기에 내 결정과 행동은 남들보다 조금 더 느리고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나와 같은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가장 비슷한 환경과 조건에서 자라온 언니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그러니까~', '그렇더라도~', '일단~'이란 말을 하며 무엇이든 먼저 저지르고 보는 언니의 행동 패턴에 "아니 도대체 왜 저렇게 무모한 거야?"라며 나무랐지만 실은 그런 언니가 심히 부럽기도 했다.


발작 버튼 말고 걱정 버튼

요즘 말로 극도로 화가 치밀 때 사람들은 "발작 버튼" 눌렸다는 말을 쓰는데 내겐 또 다른 버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걱정 버튼".

그리고 그 걱정 버튼을 장착한 자들의 대표적인 특징.  "Over-Thinking(생각 과잉)"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Over-Thinking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흔히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한다.

두 가지 유형중, 걱정형에 해당하는 나는 어떤 일이 발생하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결국 불행해질 걸 뻔히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걱정 버튼>을 꾹 누르고 만다.


한 번 눌린 걱정 버튼은 내 몸 모든 감각에 경고 알림을 보내고, 극도로 각성된 내 정신과 신체는 어느새 내 '강박' 영역까지 지배해 나의 일상을 마비시켜 버린다. 걱정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극해 달한 날에는 평소 잘 조절해 오던 강박에 대한 욕구가 강해져 나도 모르게 하루에도 번씩 청소를 한다든지, 음식의 양을 극도로 줄인다든지 등의 비이성적인 행동들이 내 일상을 지배해 버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정신이 더욱 피폐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제동장치가 고장 난 롤러코스터에서 뛰어내리는 법

이런 나를 그 누구보다 오래 그리고 자세히 관찰해 온 남편은 과도한 생각과 걱정으로 괴로워하는 나에게 실제로 환자들에게 추천하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해 주었다.


평소의 난 아침에 눈을 뜨면 SNS 메시지 확인과 최신 뉴스 기사 검색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남편은 이를 '자극'의 시작.

즉 잠자는 동안 멈춰있던 생각이 또다시 시동을 걸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반복하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 했다.

그러니 그는 내게 당장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주 짤막하게나마(5~7분) 아침 명상을 하길 권했고, 남편의 말에 반신반의하던 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맘으로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가장 높은 동영상을 찾아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실험결과>>

놀랍게도 아침 명상을 시작하고 난 뒤로부터 나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일이 그 사람이 얼마나 하루를 평안히 보내는데 큰 도움이 되는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눈 뜰 때마다 느끼던 알 수 없는 불쾌함과 혼란스러움이 서서히 정리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나의 아침은 여느 때보다 평화롭고 순조롭게만 느껴졌다.


몸이 피곤하면 정신이 피곤할 일이 없다고 했던가.

밤마다 잠이 잘 안 오고, 늘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살던 내게 남편은 '운동을 해야겠네.'라고 답했다.

처음에는 그 말에 괜스레 서운해져 "내가 직장 다니랴 아이 키우랴 운동할 시간이 어딨냐!"하며 맞받아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나를 헬스장으로 떠미는 남편 때문에 난 정신 건강이 아닌 철저히 '몸관리 차원'에서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실험결과>>

아직 잠에서 덜 깬 몸을 일으켜 헬스장으로 향한 뒤, 유산소를 30분 정도하고 나면 어느새 퉁퉁 부어있던 손가락 붓기가 빠지는 게 느껴지면서 처음 일어났을 때보다 훨씬 정신이 맑아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유산소를 마치고 '아..집에 가고 싶네.'라는 생각이 들 때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무게를 치고, 운동 기계와 씨름을 할 때면 그 순간만큼은 다리가 당기고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에 어젯밤 밤새도록 나를 괴롭히던 그 걱정 악령 따위는 떠오르지 않게 된다.


원래부터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게 남편은 하루 세줄이라도 짧게나마 일기를 써보라고 권했다.

(*실제로 어플 중에 '세줄일기'라는 어플이 있어 현재도 사용 중이다.)

- 오늘 즐거웠던 일과 기분 나빴던 일

- 오늘 만났던 사람들과 그 사람을 만나면서 느꼈던 내 감정

- 오늘 하루 잘 안 풀렸던 일과 그 일을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계획

- 감사 일기


실험결과>>

하나씩 번호를 매겨가며 일기를 쓰다 보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생각했던 그 일들이 생각보다 쉽게 정리할 수 있는 일들이란 걸 금방 깨닫게 된다.


남편이 내게 알려준 네 가지 방법 중,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실험이기도 한데 바로 "현재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걱정과 불안은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에서부터 온다고 한다.

미래에서 온 걱정이 현재의 내 삶을 불행하게 만들고, 그 현재가 시간이 지나 나의 과거가 됨으로써 결국은 과거-현재-미래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은 내게 '현재의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에 웃고, 무엇에 만족감을 느끼는지 가슴속으로 그려보며 지내기를 권했다.


실험결과>>

그날 이후,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에 대해 '한 문장'으로 만들어 표현하기를 실천했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하고 있다면 설거지라는 그 행위에만 집중하면서 '아~ 지금 찬물로 설거지를 하니 손이 참 시원하구나.'라든지 '설거지가 뽀득뽀득 잘 돼서 기분이 좋다."라든지.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 그 자체에만 집중하며 잡생각을 접어두는 것이다.


진흙탕에서 빠져나오는 연습

어떤 글에서 과도한 생각을 "getting bogged down in the mud(진흙탕에 빠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말 식으로 떠올려보자면 '갯벌에 발이 빠져 허우적대는 꼴'이 아닐까 싶다.

내 생각이고, 내 머릿속이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그 상황에 더 이상 매몰되고 싶지 않은 난 가상의 온오프 버튼을 눌러 특정 시간에만 미친 듯이 고민하고 걱정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오프 버튼을 눌러 그 생각을 꺼버리는 연습을 계속해서 해오고 있고, 꽤나 큰 효과를 보고 있다.

그래서 만약 나처럼 Over-Thinking에 삶이 버겁고 지친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루라도 빨리 스스로를 진흙탕에서 건져 올려내라고 응원하고 싶다.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
조그마한 성공도 성공이다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작은 성공을 슬퍼하거나
그것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나무라거나
힘들게 하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많은 일들과 만났고
견딜 수 없는 일들까지 견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히려 칭찬해 주고
보듬어 껴안아줄 일이다
오늘을 믿고 기대한 것처럼
내일을 또 믿고 기대해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너, 너무도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제49시집,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열림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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